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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는 마음

 사건을 접하다 보면 승소 여부를 알 수 없는 소송이 대부분이겠지만, 승소가 희박한 사건도 꽤 있곤 합니다. 초보 변호사의 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승소가 희박한 사건에 대하여 겪은 이야기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소개할 사건은 간단히 얘기하면, 어느 기계의 하자가 심각하여 기계를 고칠 수 없음은 물론 변경도 불가한 수준에서 그 손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하는 전소판결까지 확정되었는데, 전소판결 이후에 발생하는 손해에 대하여 새로운 손해배상청구가 들어온 사안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기판력에 관하여 강한 구속력이 인정되기에 새로운 손해배상소송인 후소를 다투는 것이 승소가 희박하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답이 없다는 편견에서 사안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의뢰인과 상담하고, 그의 속사정과 사실관계를 깊숙이 파악하면서 기계를 하자 있게 만든 자, 즉 의뢰인의 억울함에 공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억울하다는 저의 법감정에 따라 어떻게든 후소를 뒤집어 보고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사안을 비틀어 볼 새로운 관점을 찾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결국 기판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손해(확대)방지의무의 논리를 주장할 수 있었고, 이에 불리한 후소를 비틀어 볼 수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 전소판결의 사실인정을 그대로 채용하기 어려운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를 배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대한민국 민법상 규정을 두고 있지 않지만, 계속적인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영미법에서는 채무자 외에 채권자 또한 추가적인 손해를 방지해야 할 의무(mitigation)를 부담한다는 신의칙상 의무를 두어 규율하고 있는데, 이는 지속적인 손해에 대하여 채무자에게 거의 무한정으로 책임 지우는 것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단서삼아 말씀드린 사안의 전소판결과 달리 후소의 사실인정에서 채권자가 손해방지의무를 미비히 한 점을 파고들었고, 반대로 채무자는 손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온 점들을 구체적으로 밝혀 전소판결과는 다른 결론을 가져오는 성과를 내게 되었습니다.

 말씀드린 케이스가 대법원 판례를 바꾸는 등의 새로운 법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이 가진 법감정을 믿고 그에 대한 논리를 넓히고 형성해 가다 보면 어느새 승산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불리한 사안을 타개하는 것의 시발점은 무엇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돌이켜 보면 제가 가진 그 마음은 초입에서 말씀드린 초보 변호사의 패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 또한 지금은 격한 송무를 지속하면서 그 패기,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약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법조인으로서 발은 들인 저희는 억울할 수 있는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패기든, 꺾이지 않는 마음이든, 이를 잃지 않도록 그리고 까먹지 않도록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이렇게 용기를 내어 제 이야기를 소개해 봅니다.

이윤우 변호사
●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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