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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상의 오만함『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가 된 지 어느덧 7년이다. 빠삭한 전문 분야는 없지만 지인들이 물어보면 법령을 찾아보고 넌지시 알려줄 정도의 요령은 생겼다. 회사에는 협력관계를 구축한 동료들이, 가정에는 깊은 유대를 나누는 가족들이 있다. 비로소 나도 나만의 작은 기지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그런데 나의 안락한 요새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나 있는가. 내가 고요하고 성실하게, 꾸준하게 일구어낸 나의 일상, 가치관, 삶이 흔들리고 부정당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잘 알려진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뉴욕주에서 들꽃과 별의 이름을 그리고 외치던 소심한 곱슬머리 소년은 메사추세츠 해안의 페니키스 섬에서 루이 아가시 교수의 지도로 물고기를 수집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후 그는 샌디에이고에서, 산타바바라에서 새로운 물고기들을 발견하여 이름을 붙여 주었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 된다. 

 그런데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그가 수집한 물고기 표본들이 훼손되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에탄올 용액에 담가두었던 그의 완모식 표본(해당 종에 대한 최초의 표본)들은 유리 용기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뒹굴었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하나하나 이름 붙였던 물고기들의 이름표가 그 주인들과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 구절을 떠올려 보면, 이름과 대상이 분리되어 더 이상 연결 지을 수 없는 것, 내가 창조한 관계성이 사라졌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혼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이 경이로운 작자는 바늘을 꺼내 우리 지배자의 목구멍을 향해 찔러 넣었다(p.113). 바늘에 실을 꿴 다음 바늘 끝을 파나마 망둥이의 목살에 찔러 넣어 반대쪽으로 뽑아냈을 것이다. 혼돈의 그 작은 덩굴손 하나가 데이비드의 가차 없는 끈기 덕분에 다시 질서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p.118).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파괴의 잔해들은 스나이더 교수와 스타크스 교수가 낮이나 밤이나 호스로 물을 뿌린 덕분에 젖은 상태를 유지했다(p.114). 질서도 형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혼돈을 마주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질서를 부여하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그의 불굴의 의지에 감탄했는가. 데이비드는 생애에 걸쳐 약 2,500종의 물고기를 새로 발견하여 이름(학명)을 붙여주었다. 성게가 열등한 생물이라는 생각에서 나아가 말년에는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론자로서 인디애나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 (사람에 대한) 우생학적 강제 불임화법이 통과되도록 도왔다. 아, 인간의 강한 신념과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은 종국에는 개인의 운명을, 나아가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이러한 그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가 그렇게 집착하던 범주, ‘어류’였다. 조류, 양서류, 포유류는 존재하지만, 하나의 공통 조상을 가지는 ‘어류’란 분류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이 그의 사후에 밝혀졌다. 그가 한평생에 걸쳐 열성적으로 이름을 붙여주었던 개체들이 ‘어류’라는 하나의 종 분류로서 존재하고 그 분류하에 단정하게 나열되어 있다는 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멍게를, 연어를, 인간보다 하등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었던, 그리고 인간 사회의 ‘부적합자’는 격리 또는 제거되어야 한다는 위계의 사다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혼돈에 빠졌을 때 물고기에 이름표를 꿰던 조던의 의지에 탄복하여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지만, 오히려 정적을 끌어내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생학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 그의 탁적(濁跡)을 마주하게 된다. 책의 끄트머리에서 저자는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라고 말한다(p.263). 우생학에 심취한 미국 사회가 수용소에 가두고 불임 시술을 하였던 ‘부적합자’들이 그 혼돈 속에서도 살아남아 서로서로 의지하며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사회의 그물망이 된 것처럼 말이다. 

 마침내 내가 비로소 나만의 작은 일상을 구현함으로써 찾아오는 안락함은 달콤하다. 나의 전초기지가, 내가 부여한 질서가 견고하다는 믿음은 나를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신념과 가치관이 혼돈 속에서 내가 가진 불이 홀로 빛을 내는 유일한 불빛은 아니다. 나의 시야를 가리던 커튼을 걷었을 때, 내가 앞만 보고 달리던 터널 밖에서 바람에 일렁이는 민들레를 발견하는 감격스러운 순간들은 커튼을 걷거나 터널을 나오기 전까지는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잠시 책을 덮고 상상해 본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살아생전에 자신의 질서를 부여하던 ‘어류’가 분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에게 이것은 어느 정도의 혼돈이 되었을까. 나의 눈앞에는 자신이 세운 질서가, 세계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해결 방법을 찾는 오만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질서를 부여하고 범주를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커튼과 터널을 구축해 나가는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2010년까지 캘리포니아주 교도소에서 여성 재소자들에게 불법적으로 불임화 수술을 자행하게 하고, 미국 과학의 사원인 국립과학아카데미 길목에 프랜시스 골턴(우생학의 창시자)의 청동상과 스탠포드 대학의 조던 홀(Jordan Hall)의 모습으로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

유승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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