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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피해자를 대하는 자세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피해자에게도 우리 편 피해자인가, 상대편 피해자인가 묻기 시작했다. 예컨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중공군에 의한 피해자는 우파 측 피해자이고, 국군과 미군에 의한 피해자는 좌파 측 피해자처럼 다뤄졌다. 각각의 진영에서 피해자를 가렸고, 상대 진영에서는 애써 무시했다.

 노근리 사건이 터졌을 때 내 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의 본적지 마을 바로 옆 마을인 경북 문경 산북면 석달리의 학살 사건도 새삼 조명되었다. 194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국군은 무장공비에게 음식을 줬다는 이유로 경북 문경 산북면 석달리의 주민 86명을 학살했다. 밀양 박씨 씨족촌이었던 나의 본적지 친척들 중 일부도 이때 그 마을에 놀러 갔다가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돌아가셨다. 국군이 저지른 학살이었기에 60년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묻혀 있었으나 2007년 겨우 진상규명이 결정되었고, 2012년에 대법원 확정판결로 조금이나마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었다.

 히로시마 원폭 한국인 피해자를 윤 대통령이 80년 만에 찾았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득달같이 “세월호는? 이태원은?” 하는 댓글이 달린다.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세월호나 이태원이나 원폭이나 피해자인 사람을 본다면 생각하지 못할 이야기를 서슴없이 해댄다.

 직업 정치꾼도 아닌 사람들이 사람을 위한다면서 누구보다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정치를 하는 이유는 널리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며 피해자를 도와주려는 것이어야 하는 것임에도, 이 땅에서 정치는 일종의 스포츠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콜로세움 같은 경기장에 세워지고 지지자들이라는 자들은 축구나 야구에서 좋아하는 팀을 무지성 응원하듯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무지성 응원하며 훌리건들처럼 싸운다.

 그런 것은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에서나 가서 하면 안 될까?

 올해 초까지 변협에서 일하며 우직하게 밀어붙였지만, 끝까지 조명받지 못해 안타까웠던 일이 코로나 백신 피해자 문제였다. 코로나 백신 피해자의 수는 세월호와 이태원 사건의 피해자 수를 넘어선다. 그러나 대를 위해 소는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정부의 완벽한(?) 방역 업적에 흠이 날까 걱정인 사람들, 백신을 맞고도 괜찮았던 사람들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코로나 백신 피해자 문제는 어느 정치 세력의 지원 하나 받지 못하고 조용히 덮였다. 우리처럼 진영논리가 심하지 않은 국가들에서 당연히 지원하는 수준의 지원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분들은 국가를 믿고 백신을 맞은 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피해를 당했는데, 아직도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시다.

 나는 이들 피해자들이 늘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 내게 충고를 한다. 내년에 정치를 할 생각 없냐고. 그러면 국내 유일의 학교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해맑음센터의 기습적인 폐쇄 문제를 가지고 교육부를 적나라하게 공격하는 것은 그만하는 게 어떠냐고. 아마 나를 아끼는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피해자들 앞에서 그런 정략적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 

 해맑음센터는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분리가 결국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원래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며, 피해자들끼리 존재하는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위탁 교육기관이었다. 본관 건물이 안전진단 D등급을 받고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교육부와 교육청 모두의 무관심 속에 5. 19.(금) 최종적으로 안전진단 E등급을 받으며 10년 만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정순신 변호사 사건에 대한 관심, 권경애 변호사 사건에 대한 관심의 10분의 1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결론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문제를 정쟁의 문제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막상 피해자를 위한 이러한 실효적 대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피해자를 오직 정쟁의 도구로, 진영논리의 근거로 활용하려는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가장 심각한 가해를 저지르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박상수 변호사
● 법률사무소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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