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법률판례 나의 소송이야기
대신 빌어주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20일에는 제1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지인들과 합격의 기쁨을 나누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저는 3년 차의 변호사가 되어있었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나는 잘하고 있는지, 좋은 변호사가 되었는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게 됩니다.

 소송업무의 핵심은 역시 서면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좋은 서면이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서면이 좋은 서면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요건사실의 유혹은 참 강하게 다가옵니다. 요건사실 위주로 간결하고 분명하게 작성된 서면은 참 멋있어 보입니다. 

 저에게는 수습변호사 시절 알게 된 아주 지적이고 멋진 동료 변호사님이 계십니다. 심지어 이 변호사님은 이성적이고 업무능력도 뛰어나신 분입니다.

 변호사님과는 수습변호사 시절부터 사건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어떤 서면이 좋은 서면일지 자주 함께 고민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는 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서 의뢰인의 정당한 몫을 찾아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쟁점과 주장을 명확하게 정리한 서면이 좋지 않을까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고민하시던 변호사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변호사님 그런데요. 저는 변호사가 (의뢰인) 대신 빌어줘도 괜찮은 것 같아요. 구구절절해지더라도 그렇게 해서 의뢰인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대신 빌어줘야지요.”

 소송의 목적을 통찰하는 멋진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이쯤 하면 되었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이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분명하게 요건들을 정리하면서도, 사안을 풍부하게 포섭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서면이 되겠지만, 선후를 정한다면 의뢰인의 사연을 풍부하게 풀어내어 재판부에 전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들어 저에게 사실을 숨기는 의뢰인을 부쩍 접하게 됩니다. 본인의 대리인인 변호사를 속여서 어떤 유익이 있으실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가끔은 의심의 눈초리로 의뢰인들을 바라보게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이혼을 원하는 의뢰인을 만났는데, 유책사유도 의뢰인에게 있었고, 이미 수차례 그 사실을 인정하셨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습니다. 상대방이 이를 녹취까지 해둔 상황이었고, 더불어 제 안의 편견 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던 의뢰인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통상적이라 할만한 대화를 원활히 하지 못했고,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태도를 보이고는 했습니다. 저를 속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고 보기에도 너무 허술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불쾌할 수 있는 권유이기에 조심스레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실 것을 권하였습니다. 진료결과 오랜 시간 계속된 가스라이팅으로 언어능력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100명의 사람에게는 100가지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익숙함의 가벼움으로 사건들을 대하려다가도, 처음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의뢰인의 세부사항들을 듣다 보면 각 이야기가 모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이 경우도 그냥 유책배우자의 이야기로 흘려들었다면 저는 의뢰인에게 부정적인 답변을 하였을 것이고 사건은 불리하게 전개되었겠지요.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요건사실 여부에 따라 경중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무겁기도, 무섭기도 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멋없을 수 있지만, 변호사가 구구절절하더라도 구체적인 서면을 통하여, 의뢰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로 판단 받을 수 있게 대신 빌어주는 것도, 역설적으로 멋진 변호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3년 차가 되면서 저는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제법 태연한 척 연기할 수 있는 연기력 출중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다만 이 원고를 쓰며, 조금 익숙해졌다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계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열심히 쓰고 열심히 빌어야겠다고 다시 다짐했습니다.

 때때로 멋진 서면의 유혹에 흔들리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는 것을 보면 저는 제법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두서없는 글을 이쯤하여 줄이겠습니다. 

 여러 멋진 변호사님들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나길호 변호사
● 법무법인 지원피앤피

나길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