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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유욱 변호사 인터뷰

Q. 회보의 인기 코너인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에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저는 1993년에 개업하면서 태평양에 입사를 하고 지금까지 31년째 근무를 하고 있고요, 태평양에 있으면서 북한팀과 공익활동위원회를 22년 전에 만들고 지속적으로 활동해 온 것이 주된 경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1993년에 태평양에서 개업을 하셨습니다. 태평양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제가 태평양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변호사가 30명도 안 되었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편이었고, 저 또한 태평양이라는 곳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노동 쪽에 관심도 많았지만 제가 연수원을 마쳤을 때인 1990년대에 세계사적 전환이 크게 있었는데요, 노동영역도 중요하지만 한국경제와 사회를 함께 다룰 수 있는 넓은 영역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로펌이라는 곳에 조금 더 의미를 두고 태평양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Q. 1997년에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셨는데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어떤 마음가짐이셨을까요?

 당시 태평양에서는 인재양성 측면에서 인센티브로 해외연수를 보내줬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어쏘변호사로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요, 해외연수가 저에게 넓은 세상도 경험하는 한편, 개인적으로는 업무에서 벗어나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하버드에서 저를 받아주어서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Q. 유학 생활이 어떠셨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도 송무에만 매진하던 변호사여서 영어 때문에 조금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생활을 보고 느낀다는 것 자체가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미국 로스쿨 경험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버드 로스쿨 학생 중 절반이 여학생일 정도로 여학생 비율이 높았다는 점과 수업 전반의 프로페셔널리즘이 탁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Q. 통일부 개성공단포럼, 개성법률자문회의 등 남북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높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태평양의 창립 변호사이신 김인섭 변호사님께서는 ‘겟 투게더’라는 가족적인 분위기 조성을 강조하시는 한편, 무엇보다 가치집단의 형성과 책임에 무게중심을 두셨고, 그러한 점이 저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해외연수를 마치고 10년 차에 처음 파트너변호사가 되었는데요, 로펌변호사로서의 아이덴티를 어떻게 세울지에 대하여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끝에 제가 가치집단으로서 우리 사회의 과제 중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분야는 북한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분야는 변호사로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북한 경제특구법제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80개 넘는 용역보고서, 20편 이상의 논문, 토론회, 학술대회, 약 20년의 정부자문위원 등을 수행하면서 나름대로 큰 성과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2016년 개성공단이 중단되고 북미관계가 난항을 겪으면서 남북 관계가 현재로서는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인 것도 맞지만,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필생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현재는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의 재단법인 동천의 이사를 맡고 계신데요, 재단법인 동천에서는 어떠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나요? 그리고 앞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싶으신 부분은 무엇일까요?

 제가 태평양에서 공익활동위원회를 2001년도에 만들었는데요, 로펌 중에서는 최초가 아닐까 합니다. 이 위원회는 태평양의 창립변호사인 김인섭 변호사님의 말씀과 같이 가치집단으로서의 실천을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변호사로서의 공익활동은 전문성을 살리는 측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장애인팀, 난민팀, 탈북민팀 등 각 공익활동 분야에 관여하던 변호사들로 구성하여 체계적인 공익활동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태평양의 신입변호사 중 70% 이상이 공익활동위원회에 가입하고 있기도 하고요, 실제로 공익활동이 목적인 변호사들이 다수 태평양에 입사를 하고 있어 공익사건의 전문적, 체계적 수행이 가능한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변호사시험에 수석합격을 하신 변호사도 공익활동을 위하여 태평양에 입사를 하였고, 시각장애인으로서 이번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신 김진영 변호사도 같은 목적으로 동천에 입사하였습니다. 저희가 공익활동위원회와 동천을 시작한 이후 다른 대형로펌에서도 공익활동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분들이 공익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익법 수요자와 매치업하는 역할을 동천이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가 공익재단과 공익신탁인데요, 과거에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탈법적 도구로 공익재단이 악용되기도 하였지만, 자본주의가 성숙해지려면 공익재단의 통제와 규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공익재단이 주축이 되어 공익적 사회환원이 가능하도록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 지배구조보다는 민간재단을 통한 사회환원이 창의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동천은 NPO법센터와 주거공익법센터를 설립하여 현 사회의 문제들에 관하여 책임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익재단의 선한 영향과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20년 가까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저 또한 이 분야에 오랜 관심을 가져온 만큼 앞으로도 헌신을 다할 생각입니다. 


Q. 변호사로서 공익활동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으시는 사건이나 사연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을 느꼈던 사건을 꼽자면 군산에 있는 복지원 사건입니다. 이 복지원은 한국전쟁 직후에 선교사님이 만든 곳으로 그 건물이 수용되고 보상금을 받으면서 새로 복지원을 지어야 했는데요, 행정청과의 다툼이 생겨 보상금이 예치된 계좌에서 건축을 위한 자금 인출을 할 수 없게 된 사안인데 1심과 2심을 모두 패소한 상황에서 사건을 맡아 대법원에서 2심 법원의 판결을 뒤집어 복지원이 존폐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는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공익법인의 기부금 전용계좌 사건인데요, 법률상 국세청에서 소득공제받는 공익법인들은 기부금을 받을 때 전용계좌를 개설하여 받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규모가 작은 곳은 절반 이상이 개설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당시 한 소규모 공익법인이 사적 유용이 전혀 없었음에도 전용계좌를 개설하지 않고 기부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거액의 가산세를 부과받은 사안이었는데요, 행정편의주의적으로 과도한 가산세를 부과한 것의 부당성을 강력히 주장하여 관련 법개정 및 가산세부과 유예 등 결과를 이끌어내었는데, 전국에 있는 수많은 소규모 공익법인의 권익을 보호하였다는 데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Q. 최근 태평양이 압수수색까지 이어지는 고초를 겪기도 했는데, 변호사의 비밀유지권(ACP)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변호사의 의뢰인 간의 비밀이 유지가 안 된다고 한다면, 무엇보다 국민인 의뢰인의 변호권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입법적인 보완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미국법의 ACP법안과 유사한 형태로 수정 및 보완되어 마련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즉, 중대한 공익이라는 예외사유를 두더라도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하여는 이의신청 규정을 두는 등의 대안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Q. 법조인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변호사는 무엇보다 정직함을 갖춰야 하고 기본적으로 정의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의뢰인의 정의도 추구해야 하지만, 객관적인 정의 또한 함께 고려하는 것이 가치집단이라 할 수 있는 법조인이 사회에서의 기본적인 책임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법조인이 아닌 ‘인간 유욱’은 어떤 분일까요?

 저는 재미는 별로 없지만,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로펌변호사로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북한, 탈북민의 문제와 공익활동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온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변호사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기독교인이라 예수님이 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크고자 하면 남을 섬기라는 제 모교의 교훈에 기독교의 진리가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성경 맨 앞장에 ‘섬김의 명령 가운데서 나는 하나님을 발견한다’라고 적은 적이 있는데요, 섬김의 명령을 누가 누구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 가난한 자, 병든 자, 지극히 작은 자의 문구가 많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후배변호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저는 후배변호사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꿈과 뜻!

 제가 5년 전까지만 해도 『꿈이 나에게 묻는 열가지 질문』 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태평양 신입변호사들에게 이러한 내용의 강의를 하곤 했는데요, 꿈이라고 하는 것이 변호사로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덕목임은 말할 나위 없고, 그러한 꿈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 뜻이 반드시 함께해야 합니다. 여기서 뜻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어려울 때 나를 일어서게 만들고 버팀목이 되어 주며, 지속할 수 있게 해주고, 이룰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지금까지 저를 버티게 해주고 있고, 은퇴 후 공익변호사의 꿈을 꾸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정리 : 이윤우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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