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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대중음악] 미생에서 완생으로
미생(未生) --> 바둑에서 대마가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바둑용어 

2014년도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미생”이었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 “미생”은 바둑만을 세상의 전부로 생각한 주인공 장그래가 프로바둑 입단에 실패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비정규직으로서 겪는 희로애락을 그려내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또한 2014년 프로야구 MVP를 차지한 넥센 히어로즈의 서건창도 무척 불안한 상태의 연습생 출신이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면서 미생 신화를 써내려갔기 때문에 좌절하고 방황하는 젊은 이들에게 찬란한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와 같이, “미생”은 바둑에서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死石)과는 달리 나중에 완생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사라지지 아니한다. 직장, 스포츠 분야 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수많은 미생들은 그 언젠가 완생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오늘도 피, 땀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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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음악계에서 그 누구든지 처음부터 신데렐라처럼 화려하게 주연으로 성공을 거머쥐기는 무척 힘들다. 화려한 그 누군가를 위하여 백보컬, 백밴드의 역할을 하면서 내일의 기약도 없는 인고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 1980년대 초부터 시대를 대표하는 디바로 꼽혔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도 여지없이 미생의 시절을 겪어야 했다.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지만, 휘트니 휴스턴은 1970년대 디스코 열풍을 누렸던 샤카 칸(Chaka Khan)의 뒤에서 백보컬로서 경력을 쌓아야 했다. 머라이어 캐리도 1988년 히트곡 ‘I still believe’의 주인공 브렌다 K. 스타(Brenda K. Starr)에서 출발하여 당시 ‘소니 뮤직’ 음반사 대표 토미 모톨라에게 발탁된 덕분에 톱스타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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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와 머라이어는 비교적 짧게 미생을 경험했지만, 대부분 청춘 시절 대부분을 미생으로 지내는 경우가 더 많다. 사이클선수 렌스 암스트롱과의 파혼으로도 타블로이드를 장식했던 셰릴 크로우(Sheryl Crow)도 오랫동안 마이클 잭슨, 조지 해리슨의 백보컬 활동을 통하여 음악계에서 인지도를 올린 후, 1994년 대망의 데뷔앨범 ‘Tuesday Night Music Club’으로서 31세의 나이에 비로소 완생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1980년대 빌보드 차트의 정상을 수차례 정복했던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와 로라 브래니건(Laura Branigan)도 우리에게는 ‘I'm your man’으로 너무 잘 알려진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백보컬리스트 출신으로서 다소 암울한 1970년대를 보내야만 했었다. 1990년대 ‘Piano in the dark’, ‘Le restaurant’로 사랑받던 흑인 여가수 브렌다 러셀(Brenda Russell)도 엘튼 존(Elton John), 베트 미들러(Bette Midler) 같은 톱클래스 주연들을 빛나게 만들어야 하는 조연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쳤다. 1980년대 말부터 ‘Right here waiting’과 ‘Now and forever’ 같은 주옥같은 발라드로 국내 여성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냈던 리차드 막스(Richard Marx)도 1980년대 초반에는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의 백보컬 활동을 하면서 완생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쿠바 출신의 존 세카다(Jon Secada)도 1세대 라틴팝 여왕인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백보컬리스트 출신이었는데, 스포트라이트가 비치지 아니하는 백보컬용 보조마이크 앞에 설 때마다 이를 악물고 갈고닦은 실력, 그리고 동향(同鄕) 출신의 글로리아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미생을 벗어나 늦깍이 솔로데뷔를 할 수 있었다. 백보컬뿐만 아니라 백밴드 출신으로서 미생의 아픔을 겪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970년대 ‘Hotel California’라는 불후의 명곡을 남긴 전설적 록밴드 이글스(Eagles)도 1960년대 후반부터 인기 여가수 린다 론스태드의 백밴드로서 무명 생활을 거친 후에야 값진 열매를 맛볼 수 있었다. 

이제는 국내 디바 대열에서 항상 회자될 정도로 정상급 가수로 자리잡은 장혜진도 MBC 합창단 출신으로서 긴 세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백보컬의 미생 시절을 보낸 후 ‘1994년 어느 늦은 밤’에 완생으로 갈 수 있었다. 유희열의 프로젝트 앨범에 ‘내가 잠시 너의 곁에 살았다는 걸’의 객원가수로서 우리 곁에서 미약하게나마 잠시 알려졌던 김연우도 마치 얼굴없는 가수로서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는 순간순간을 꽤 길게 지내야 했다. 수려한 외모의 발라드가수들과 아이돌이 판치는 험한 바닥에서 단순히 노래실력만으로는 인기와 명예를 얻을 수 없다는 자괴감 속에 방황하기도 했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에서 비로소 대중들로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아 오늘날 발라드 종결자로서의 박수를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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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의 인기 열풍을 전후하여, 국내에서도 코러스 출신 가수들이 연이어 데뷔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케세라세라’로 사랑받은 여성 3인조 베이비는 소녀시대 4집 ‘아이 갓 어 보이’에 코러스로 참여한 경력이 이채롭다. 백보컬리스트 출신으로 이루어진 여성그룹 ‘러쉬’ 멤버 제이미는 이승환, 김연우, 박진영 등의 코러스였으며, 또다른 멤버 사라는 MBC <나는 가수다>, Mnet <슈퍼스타K> 등 프로그램과 빅뱅, 지드래곤, 브라운아이드걸스 등의 코러스를 담당하였다. 남성 듀오 ‘길구봉구’의 봉구는 이적의 코러스로 참여하면서 미생에서 완생으로서 현재 진행형이다. 이와 같이 코러스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의 뒤에서 묵묵히 활동하지만, 자기 파트의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 한 곡 전체를 파악하여 주연 가수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본인의 음색, 음량을 조절하는 테크닉이 발휘되어야 한다. 코러스 시절에 닦은 실력이 결국 주연급 가수로서 요구되는 실력의 밑바탕인 것이다. 

이와 같이, 미생은 완생으로 가는 길목에서 필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아닐까? ‘미생’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인 ‘양띠해의 탄생’을 맞이하여, 우리 법조계의 미생들도 완생을 향하여 양털같이 환하고 촘촘한 계기를 마련하는 2015년을 기원한다.

변호사 이재경
사법시험 제35회(연수원 25기)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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