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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도 억울합니다

 어느 형사사건이든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고인에게도 억울한 사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특별한 증거자료 없이 당사자들의 진술이 전부인 사건에서는 사건 관계인의 진술만으로 범죄사실이 특정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주로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하게 되어서 범죄사실이 실제 사실관계보다도 과장되거나 실제 사실관계와는 다른 내용으로 특정되기도 합니다. 이때 피고인은 억울합니다.

 그러나 범죄사실이 실제 행동보다 과장되었거나 하지 않은 행동이 범죄사실 중 일부로 적시된 경우에 잘못을 인정하면서 억울한 부분만을 벗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유죄 추정의 원칙 아래에서 무죄를 입증해야 하고, 불쌍한 피해자를 공격하면서 나쁜 피고인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교제폭력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의 변호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 역시 폭행은 인정하지만 상해가 아니라는 점, 자해 시늉은 인정하지만 협박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상황이 전부 녹음된 44분 분량의 파일이 있어 이를 증거자료로 제출하였습니다. 녹음된 상황과는 다른 내용으로 공소사실이 적시된 것을 발견하고, 이를 지적하여 녹음의 내용에 따라 공소사실이 일부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녹음파일이 있어 일부 억울한 사정이 소명될 수 있겠다고 기대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법원은 녹음파일이 아닌 ‘피해자의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일관된 진술’을 근거로 사실인정을 하였고, 법원이 인정한 범죄사실에는 녹음파일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피고인의 말이 적시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괴로운 시간을 보냈는데, 녹음파일이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아닌 피해자 진술만을 근거로 범죄사실을 인정한 판결문을 보고 저 역시 억울했습니다. 피고인의 억울한 사정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제 탓도 있겠지만, 유죄 추정 원칙의 높은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피고인이 다투는 범죄사실이 일부에 불과하고, 특히 그 인정 여부가 형량에 큰 차이가 없을 경우에 원칙과 달리 유죄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항소심에서는 피고인의 억울한 사정에 더해서 저의 억울한 사정도 잘 설명드려 봐야겠습니다.

김기훈 변호사
●법무법인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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