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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광장 한양석 변호사 인터뷰

Q.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의 간단한 약력 및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보다 훨씬 오랜 세월 훌륭한 법조경력을 쌓아오신 분들이 많으신데 제가 〈선배법조인의 조언〉이라는 코너에서 조언을 하게 되니 조금 민망합니다. 변호사로서는 이제 10년 남짓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변호사를 시작하는 후배변호사님들에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대담을 하겠습니다. 

 저는 사법연수원 17기를 수료하고 광주지방법원에서 처음 판사를 시작하였으며 그 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을 마치고 2013년에 법무법인 광장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Q. 1988년에 판사로 법조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으셨습니다. 법관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처음 법대를 가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판사, 검사, 변호사가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해 본 것은 아니었고, 세 직역 모두 기본적으로 사회정의에 이바지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법연수생 시절 세 직역에서 실무수습을 하면서 각 직역의 차이점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검사나 변호사라는 직업이 다소 활동적인 사람에게 적합하다면, 판사라는 직업은 분석하고 사고하는 부분이 더 많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판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큰 고민 없이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Q. 2007년에 배심원단이 참여한 첫 재판을 이끄신 판사로 알려져 계신데요. 이에 대한 소감이 있으실지요?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에 처음 시작되었는데요, 참여재판을 준비하기 위하여 2007년 당시 제가 있던 재판부가 참여재판 전담재판부로 지정되면서, 2주간 미국 법원에 출장도 가고 몇 차례 모의재판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되는 재판이었고 법률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모의재판 등을 거치면서 모범재판 진행절차라고 할까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끼고 즐기면서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참여재판제도가 실시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참여재판이 활성화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배심원으로 선정되는 경우 재판 기간 동안 생업을 제쳐두고 참여해야 해서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힘든 점이 있겠고요, 심도 있는 심리가 필요한 재판, 예를 들어 증인이 수십 명에 달해 2주, 3주간 심리가 예상되는 재판과 같은 경우에는 재판부 입장에서는 배심원들에게 오랜 기간 생업을 포기하고 재판에 참여하도록 요구하기가 어려워 부득이 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 부적절한 사건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일반인들의 의견을 재판에 반영한다는 좋은 취지에서 마련된 참여재판제도인 만큼 법령의 재정비나 국민들의 인식변화 등을 통해 활성화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Q. 약 25년간의 판사직을 역임하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끔 기억이 나는 사건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사건이 있기는 합니다.

 형사항소심재판을 맡고 있을 때였는데, 피고인이 1심에서 재판을 받던 도중 해외로 몇 년간 도피하였고 돌아와서 결국 실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한 사건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말씀드릴 순 없지만 피고인의 변소에 비추어 피고인이 유죄라는데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피고인이 재판 도중 도주하였다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오랜 기간 재판부 판사님들과 재판 진행 등에 관해 협의를 하면서 재판을 피하고자 도피한 잘못이 분명 있긴 하지만 도피에 관한 부분은 배제한 채 온전히 공소사실에 집중하여 심리해 보자고 결정하였습니다. 타조가 위험에 처하면 몸은 노출되더라도 머리만 숨기는 회피본능에 지배당하여 행동하는 것처럼 사람도 위험이 닥치면 추후 발생할 결과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회피를 도모하는 것이 본능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무죄판결을 선고하게 되었는데, 선고 직후 피고인과 가족들이 대성통곡을 하였고, 선고를 마치고 나오면서 재판부 판사님들과 우리의 판단에 대하여 안도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 혹시라도 제가 선입견이나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건을 대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경계하여 오고 있습니다.

 후배변호사님들께서도 어떤 사건을 대할 때 자신이 가진 기준 위에 놓고 사건을 판단하지 마시고 의뢰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Q. 약 25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치시고 2013년에 광장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셨는데요, 광장을 선택하신 남다른 이유가 있으시다면? 

 법원에 근무하는 중 이따금 정년까지 계속 근무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만둔다면 그 후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직을 했는데 광장에 오게 되었습니다.

 각 로펌들이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과연 차이점은 있는지 명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광장에 오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면 광장에 가까운 동료와 후배변호사들이 있다는 점도 일부 영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광장이 정도와 신뢰를 모토로 하고 인화를 강조하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Q. 길었던 법원 생활을 자평하면 어떤 법관이셨습니까?

 25년이라는 기간이 숫자로 보면 정말 긴 시간이라고 느껴지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습니다. 너무 짧게 느껴져서 평가하기도 조금 이상합니다만, 굳이 표현을 해야 한다면, 적어도 일하는 동안에는 매 사건 사건마다, 매 순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법관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하고 나니 조금 부끄럽네요.


Q. 현재 광장에서는 주로 어떠한 업무를 담당하고 계실까요?

 헬스케어와 방위산업 송무 부분 팀장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법원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사건을 담당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 1년마다 사무분담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를 접할 기회는 많지만 어느 한 분야에 천착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기본적으로 스페셜리스트라기보다는 제너럴리스트라고 할까요. 

 어느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면서 법률문화에 이바지하는 판사님들을 보면 제가 그렇게 못해서 그런지 지금도 존경심이 생기곤 합니다.

 광장에 처음 입사하고 나서 하나의 특화된 분야보다는 전반적인 송무 업무를 맡아서 처리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헬스케어 사건이나 방위산업 사건을 한 건, 두 건 처리하게 되면서 관심이 생겨 좀 더 깊게 연구하게 되고 의뢰인들도 다시 사건을 맡기게 되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전문분야가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후배 여러분들도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를 하여 특화시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만, 또한 자신이 맡는 다양한 사건을 열심히 하다 보면 우연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레드오션, 블루오션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한 분야에 한 사람의 전문가만 필요한 것이 아니니 어떤 일을 맡게 되시더라도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Q. 법조인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덕목이나 명제가 있으신지요? 

 법률전문가가 깊이 있는 법률 지식을 갖추는 것은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므로 이 부분을 제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법률은 사회의 변화를 바로바로 반영하여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변화에 발맞춘 해석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사회의 변화, 문화나 문물의 발전에 관심을 갖고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법조인이 아닌 ‘인간 한양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굳이 표현해 본다면 주위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변호사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 선생님의 영향으로 커왔음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법조인이 되어서 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조무제 대법관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법원에서 조무제 대법관님의 전속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었습니다. 대법관님은 청빈으로 워낙 유명하시지만, 또한 본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시면서도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신 분이셨습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제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대법관님의 발끝에라도 따라가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후배변호사들에게 특히 하시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금 실용적인 말씀을 드리자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변호사 업무가 모든 단계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가장 큰 스트레스는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후회가 남지 않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고 자위할 수 있을 정도로 사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후의 결과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이니 빨리 잊어버리시고요. 최선을 다해야 잊기도 쉽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업무 외 시간에는 업무를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도록 집중할 수 있는 취미 한, 두 가지를 꼭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Q. 끝으로 앞으로 변호사님께서 꼭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있다면?

 제가 실무변호사로서 일할 수 있는 날이 길게 남아 있다고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은퇴 이전에라도 작은 곳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저의 법률 지식이 활용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그동안 사회에서 받은 것을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이윤우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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