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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영화 <여인의 향기>는 1992년에 제작하여 1993년도에 개봉한 미국 영화이다. 제목만 보면 애절하고 달콤한 멜로 영화 같지만, 실제 내용은 그게 아니어서 다소 놀란 작품이기도 하다(사실 필자는 이 영화를 진작 알고 있었지만, <여인의 향기>라는 제목만 보고 선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선입관이 들어 애써 보지 않고 있었던 점도 고백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는 퇴역 장교인 프랭크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모범생 찰리의 우연한 만남과 여정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교훈을 담은 영화로 1993년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하고, 맹인역을 탁월하게 소화한 알 파치노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알 파치노가 최종 수상을 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여인의 향기>를 소개할 때 먼저 주인공 알 파치노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알 파치노’는 194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영화 <대부> 시리즈를 통해 유명해진 배우이지만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프랭크 슬레이드 중령 역으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우로 칭송받게 된 미국의 상징적인 배우이다. 그는 ‘로버트 드 니로’, ‘더스틴 호프만’, ‘잭 니콜슨’, ‘진 헤크만’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본명은 ‘알프레도 제임스 파치노’이다. 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1979년, 1990년도에 각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1992년도에 〈여인의 향기〉로 마침내 오스카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헐리우드의 대배우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사실 <여인의 향기>는 ‘조반니 아르피노’의 소설『어두움과 달콤함』과 1974년 이탈리아에서 개봉한 ‘루제로 마카리’와 ‘디노 리시’의 영화 각본을 보 골드먼이 각색하여 만든 영화로서 알 파치노 외의 출연진은 당시 모두 신인배우였다.

 영화는 가난한 고등학생 찰리(크리스 오도넬)가 다니는 명문사립고에서 시작된다. 찰리는 추수감사절 휴가 중에 괴팍한 퇴역 중령인 시각장애인 프랭크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알바를 시작하자마자 프랭크는 느닷없이 뉴욕 여행을 가자고 고집하는데, 이에 찰리는 난생처음 비행기 일등석에, 뉴욕의 호화로운 호텔 생활을 경험하며 프랭크의 시중을 열심히 들게 된다. 찰리는 큰 부자도 아닌 프랭크가 최고급 호텔에 투숙하면서 값비싼 식사에 술을 마시고, 최고급 리무진을 이용하는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프랭크는 미국 존스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낼 정도로 잘 나가던 육군 중령이었는데, 순간의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되어 군을 떠나게 된다. 불행한 삶에 지친 프랭크의 계획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일등석 탑승, 최고급 호텔 투숙 등-을 하며 돈을 물 쓰듯 쓰다가 연락 없이 살던 친형네를 찾아가 놀래준 다음 아름다운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자살해 버리는 것이었다.

 영화 제목인 〈여인의 향기〉는 프랭크의 여성 편력과도 연결되어 있다. 프랭크는 찰리와 뉴욕 여행을 하면서 들린 고급 레스토랑에서 두리번거리더니 “여인의 좋은 비누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찰리에게 안내를 받은 프랭크는 여성에게 합석을 제의하고, 그녀는 선뜻 허락한다. 프랭크는 자리에 앉자마자 “오길비 시스터즈라는 비누를 쓰시지 않느냐”고 묻는데 여인은 비누 향으로 제품명까지 맞춘 그에게 크게 놀라며 재밌어한다. 프랭크는 그녀에게 탱고를 무료로 강습해 주겠다고 너스레를 떨고, 향기로운 여성과 탱고를 춘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죽음만을 기다리던 그에겐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되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는 정녕 멋진 로맨틱한 사나이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고결하고 해맑으며 우아한 그 여인의 미소, 촉촉하고 라인이 선명한 입술, 바람결을 타고 흐르는 환상적인 여인의 머릿결, 대리석으로 지은 그리스 신전의 기둥같이 쭉 뻗은 다리, 그리고 천국”이라고 상상하면서 황홀감에 취하여 독백하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시 영화 줄거리로 들어가면, 찰리는 자신이 프랭크의 이러한 엄청난 계획에 휘말린 지도 모른 채 알바를 마치고 빨리 학교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되고, 예고 없이 방문한 프랭크 형의 집에서 프랭크의 조카 랜디를 통해 프랭크가 앞을 못 보게 된 원인을 알게 되며 연민의 감정을 싹 틔우게 된다. 뉴욕을 여행하는 동안 찰리는 프랭크에게 자신의 문제도 털어놓게 되며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어느 날은 최신 스포츠카인 페라리를 시승하였는데, 찰리의 도움으로 장님인 프랭크가 직접 페라리를 운전하며 짜릿한 속도감을 맛본다. 경찰을 만나 불심검문도 당하지만 프랭크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후 다시 호텔로 돌아오고, 프랭크는 찰리에게 시가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문득 불안해진 찰리가 호텔 방 안으로 급히 돌아갔을 때 프랭크는 단정하게 군복을 입고 권총으로 자살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고, 찰리가 이를 급하게 제지한다. 찰리는 시각장애인이 되어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된 프랭크의 마음을 이해하였고, 결국 프랭크는 찰리의 끈질긴 설득으로 자살 기도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의 스토리는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에서 징계문제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찰리의 이야기로 돌아가 새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찰리는 학교에서 친구 조지와 함께 학교 교장선생님을 골탕 먹였던 세 명의 동료 학생들의 행동을 목격한 바 있다. 이에 화가 난 교장은 찰리와 조지에게 하버드대 추천을 제시하며 자신을 골탕 먹인 범인이 누군지를 고자질하라고 회유한다. 그러나 친구들을 밀고할 수 없다고 생각한 찰리는 교장의 제안을 거부하고 그 일로 퇴학 위기에 빠진다. 그런 상황에 있던 찰리의 이야기를 듣게 된 프랭크는 장교의 카리스마와 명철한 지혜로서 찰리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전체 교사들과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청중을 압도하는 명연설로 찰리의 입장을 변호해 준다. 

 프랭크의 변론 덕분에 그날 참석한 징계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찰리는 징계 책임에서 면책을 받게 된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사건 사고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 <여인의 향기>가 명화로서의 품격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의 연출과 더불어 알 파치노의 치명적인 명연기, 그리고 음악, 춤, 미술 등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앙상블 있게 조화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3분 남짓 펼쳐지는 영화 속 탱고 장면은 이 영화의 제목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메인 스토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장면이지만 놀랍게도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 제목과 함께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 되었다. 청순하게 다가와 뭇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은 여배우 ‘가브리엔 앤워’는 이 탱고 한 장면에만 등장하는 단역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여배우로서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을 만들었고, 이 영화를 계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며, “Por una cabeza”는 가장 유명한 탱고 음악이 되었다.

 끝으로 영화 속 명대사를 몇 개 소개하고 마무리할까 한다. 먼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탱고 장면에서 프랭크가 한 말이다. “탱고는 스텝이 꼬이는 것이고, 꼬이면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탱고에는 실수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다. 인생은 탱고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The tango dance is originally a twist on the step, and if it is tangled up it dances again. Life is the same. No mistake in the tango, not like life. Life is much more complicated than tango dancing).”

 이 대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필연적으로 꼬이기도 하고 실수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함축한다. 때론 실수하며 넘어지고 아파하며 배우고 성장해 가는 것, 어쩌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은, 영화 결말 부분에서 찰리를 위해 변론한 프랭크의 대사이다. “난 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찰리의 침묵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릅니다만,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찰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남을 팔지 않을 것입니다(I don’t know if Charlie's silence here today is right or wrong; I'm not a judge or jury. But I can tell you this: he won't sell anybody out to buy his future!).”

 이 부분은 도덕적, 윤리적 정의와 현실의 법리 간 충돌과 괴리를 쉽지 않게 경험하는 법조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긴 장마와 무더위가 반복되는 한여름 밤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부디 이번 영화 <여인의 향기>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려보길 권해 본다.

성중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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