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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의 효율

 마트에서 쇼핑을 하던 나는 2,800원짜리 우유를 카트에 넣었다가 남편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바로 근처에 3,200원짜리 우유를 1+1로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세심하게 제조 일자를 확인하더니 가장 유통기한이 긴 우유를 집어 들었다. 내가 그런 남편을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마트에서 이 정도까지 가격표 눈치를 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 부부는 한 달 예산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 직장 상사보다도 가격표에 더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되어있었다.

 짠돌이가 되어가는 건 우리 부부만이 아닌 것 같다. ‘날씨가 더워서 4,000원짜리 커피를 사 먹었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오자, ‘더우면 찬물을 마셨어야죠.’라는 답글이 올라온다. 일명 ‘거지방’이라고 불리는 채팅방에 올라오는 글들이다. 고물가·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지출 내역을 공유하고 절약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은 높아진 외식 물가로 인해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기 시작했고, 만 보를 걸으면 소액의 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는 앱을 깔고 자발적 뚜벅이가 되어 도심을 돌아다니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파이어족을 외치며 코인과 주식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를 거지라 칭하며 절약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2020년 2분기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시기,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은행 대출자 수와 대출액도 증가하였는데, 그중 빚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계층은 20 · 30대였다. 2019년 4분기 20 · 30대 1인당 은행 대출액은 약 980만 원이었는데, 2022년 4분기 20 · 30대 1인당 은행 대출액은 약 7천만 원을 돌파했다. 20 · 30대는 오르는 물가와 매달 나가는 대출 이자에 대처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관점에서는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게 되면 경제활동을 저하해 사회 전체의 소득을 감소시킬 수 있다. 총수요가 감소하면 기업은 생산량을 줄이게 되고 이에 따라 고용도 줄어들게 된다. 저축의 역설이다. 

 혹시 짠돌이들이 사회 경제를 불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무색하게도 우리 경제는 꽤 괜찮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1분기 국내 총생산과 실질 국내 총소득은 각각 전기 대비 0.3%, 0.8% 증가했다. 2023년 1월부터 3월까지 고용률과 취업률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15세 이상 고용률은 1월 60.3%, 2월 61.1%, 3월 62.2%의 수치를 보이며 증가하고 있고, 취업자 역시 1월 41만 1천 명, 2월 31만 2천 명, 3월 46만 9천 명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경제 성장세는 의외로 투자가 아닌 소비에서 비롯되었다. 2023년 1분기 설비 투자는 4.0% 감소한 반면, 민간 소비는 서비스 소비를 중심으로 0.5% 증가하였다. 이때 서비스 소비는 20 · 30대를 중심으로 증가했다. 20 · 30대의 해외항공권과 해외여행 상품의 판매는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골프와 호텔·리조트 수요 역시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2022년 4분기 기준 주식투자자 수는 5년 연속 증가하였는데, 그중 20 · 30대의 주식투자자 수만 감소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20 · 30대 짠돌이들의 저축은 투자가 아닌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혹자는 20 · 30대의 극단적인 절약과 과도한 사치성 소비를 보며 ‘소비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20 · 30대의 소비를 소득이 정체되고, 물가가 오르자 ‘가성비’와 ‘플렉스’를 모두 쟁취하려 하는 효율적인 소비라고 정의하고 싶다. 저축의 역설이 우려한 짠돌이와 달리, 요즘의 짠돌이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돈을 아껴두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대신, 현재를 즐기기 위해 절약을 수단으로 삼는다. 가난해서 저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절약을 하는 사람들, ‘효율’과 ‘행복’을 모두 챙겨가는 이들이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경제주체이지 않을까.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온 우리 부부는 1+1 행사로 가져온 우유를 냉장고에 정리했다. 가격이 비싼 다듬어진 쪽파 대신 흙이 잔뜩 묻어 있는 저렴한 쪽파도 사 왔다. 우리는 흙이 묻은 쪽파를 다듬기 위해 식탁에 둘러앉아 다음 달에 놀러 갈 만한 여행지가 없는지 고민하며 웃었다. 행복한 웃음이었다.

최지영 변호사
● 한국은행


※ 본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한국은행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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