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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처음 법원 취재 기자가 되고 법정에 들어갔을 때 법정 경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로 배정받은 출입처였고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살폈습니다. 대개가 의례인 듯 일어서 재판부를 향해 목례했고 저도 눈치껏 따라 했습니다.

 법원 취재 2년 차가 된 지금은 저 대사가 익숙합니다. 재판부 입정 때마다 별다른 의문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섭니다. 재판이 끝날 때도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부 퇴정을 기다리는 일이 몸에 배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법원을 출입하게 된 후배가 갑자기 이 ‘기립’에 관해 물어 왔을 때 짐짓 놀랐습니다. “선배, 왜 판사한테 기립 인사를 해요?”

 궁금한 게 많은 MZ의 질문이라고 일순 여기면서도 저 또한 해소하지 않고 넘어갔던 고민이어서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판결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대답하고 나니 저 역시 기립 인사를 받는 판사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한 부장판사는 “개인을 향해 기립하는 것은 아니겠죠. 사법부 판결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관행이 생긴 게 아닐까요?”라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판사의 답도 비슷했습니다. “재판 방청자만 인사하는 게 아니죠. 법관도 인사합니다. 재판 참석자 모두가 상호 간 예의를 차리는 것입니다.”

 최근 ‘만물박사’로 떠오른 챗지피티(GPT)에게도 물었습니다. ‘재판 시작 전에 일어서서 인사하는 이유 알려줘’라는 질문에 GPT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물리적으로 인사하지 않지만 이유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법원제도와 판사의 심판 권한에 대한 존중, 엄숙한 법정에 대한 예의입니다. 역사적 뿌리와 법적 전통입니다.”

 법관과 인공지능(AI)이 ‘사법부에 대한 존중’이라는 일관된 대답을 하는 것과 달리 변호사들은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족한데 굳이 인사할 이유가 있느냐, 소송 당사자만 인사할 뿐 법관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둥 다양한 의견을 보였습니다.

 실제 법정 풍경도 각양각색입니다. 지난주 한 재판부는 기립한 소송 당사자와 방청객을 보고는 허리를 숙이며 “앉으시죠”라며 소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방청객보다 허리를 더 숙이는 판사도 있었습니다.

 반면 한 부장급 판사는 재판이 끝난 뒤 방청객이 일어서는 와중 헐레벌떡 법정을 빠져나가기도 하더군요. 법정 예절이 없는 게 아니냐고 한 판사에게 토로했더니 의외의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과거에는 개정 때도 목례를 안 했다는 겁니다. 그러다 방청객들의 일방적 인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불합리하다는 문제의식이 퍼졌다고 합니다. 

 “폐정 때도 그런 공감대가 퍼지면 달라지지 않을까요?”라고 되묻더군요.

 유구한 법체계를 가진 선진국들은 어떨까요. 독일에서는 판사가 입정할 때 소송 당사자가 항의의 표시로 기립하지 않고 앉아있다거나, 기립을 요구받고도 응하지 않다가 돌아서서 기립하면 ‘법정모욕’으로 판단합니다. 법정모욕으로 판단되면 법률 질서 유지를 위해 부과하는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고 합니다. 기립 행위를 단순한 ‘예절’로 보는 국내 법정보다 더욱 엄격한 제재를 내리는 겁니다. 이를 두고 2010년대 해외 연수를 다녀온 한 부장판사는 “권위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재판에 참석할 때 판사뿐 아니라 변호사도 하얀 가발을 써야 하는데 18세기 왕이나 귀족이 가지던 위엄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십 수일간의 취재를 발판으로 처음 질문을 던졌던 MZ 후배에게 의기양양하게 ‘기립 인사’ 뒷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머리를 ‘탁’ 치며 깨달을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그래도 기립 인사를 꼭 해야 하는 건가요?”라고 또 물었습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황두현 뉴스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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