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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율촌 윤세리 명예 대표변호사 인터뷰

Q. 회보의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980년부터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로 약 1년간 근무 후 미국 하버드 로스쿨, 캘리포니아대학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한 다음, 미국로펌 베이커앤드맥킨지 뉴욕 · 시카고 사무소에서 일했습니다. 1989년 귀국하여 윤호일, 정영철 변호사님과 우방종합법무법인을 설립하여 일하다가, 1997년 우창록 변호사님을 비롯한 다섯 분의 창립파트너들과 법무법인 율촌을 설립하였습니다. 

 2019년 1월, 65세 정년을 맞이하여 율촌 창립 1세대 파트너로서의 생활을 마치고 현재 율촌 명예 대표변호사, 사단법인 온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주로 공익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Q. 1980년 사법연수원을 10기로 수료하신 후 부산지검 검사로 법조 커리어를 시작하셨습니다. 검찰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당시에는 사법연수원을 졸업하면 임관 결격사유가 없는 한 모두 판사나 검사로 임관하는 게 법적의무이자 관행이었는데 실무교육을 받을 때 검찰이 법원보다 훨씬 역동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저는 유학 후 교수나 변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검사가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당시 검찰 교수님이나 검찰실무를 지도해 주셨던 정해창 차장검사님(전 법무부장관), 김두희 특수1부장님(전 법무부장관), 강재섭 검사님(전 한나라당 대표) 등 부산지검 선배검사님이 모두 훌륭한 분이었다는 점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Q. 검사 생활 1년 만에 유학을 결심하셨는데, 당시 상황 및 계기가 궁금합니다.

 부친께서 육군에서 통역장교 및 영어 교수로 근무하시면서 미국 군사영어교육기관에 두 번이나 유학을 다녀오신 다음 제게도 권하셔서 고등학생 때부터 유학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법대 졸업 후 사법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하여 대안을 모색하던 1977년 여름 어느 날, 신문에서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해외유학 후보장학생 선발시험 공고를 보고 응시해 합격했는데 1978년 봄 제20회 사법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사법연수원 수료 이후로 유학을 연기하였으나, 실무수습과 함께 서울대 법학석사 논문까지 준비하느라 유학 준비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무부에 유학가도 좋다는 양해를 받은 다음, 아내가 부산에서 근무하던 관계로 부산지검을 희망하여 검사로 임관하였고 1년 뒤에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산지검의 정치근 검사장님, 오혁진 부장검사님, 황선태, 이철 검사님 등 여러 선배 검사님도 모두 훌륭한 분이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Q. 1983년에 서울회에서 변호사로 개업하고, 한미(현 광장)에서 1984년까지 변호사로 활동하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사건이 있습니까?

 1983년 여름에 캘리포니아대학교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서 J.D. 1학년을 마치고 summer job으로 한미합동법률사무소(Lee & Ko)에 와서 일을 시작했는데, 재미도 있고 학비도 마련해야 해서 1년 휴학하고 1984년 8월까지 일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 5월 제가 입사했을 때는 한미의 변호사 수가 7 ~ 8명에 불과했는데 떠날 때쯤에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그 뒤에도 급격히 증가한 걸로 압니다. 오용석 변호사님이 수출입은행 업무로 뉴욕 출장을 가실 때 몇 주 전부터 환송 회식을 하고 많은 분이 “축 장도” 부조금도 드렸는데 다녀와서는 부조한 분들은 물론 거의 모든 직원에게 선물을 돌리신 게 기억에 남아요. 제가 미국으로 복학할 때도 많은 분이 “축 장도” 부조금을 주셨어요.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지요.


Q.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 Baker & McKenzie(뉴욕ㆍ시카고 사무소) 변호사로 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커리어 플랜, 또는 계획이 있으셨나요?

 제가 미국 유학을 간 1980년대 초에는 우리나라에 요즘같이 조직화, 전문화된 큰 로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로펌에서 업무를 배워 한국에서도 국제업무를 개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국제업무를 전문으로 하던 Baker & McKenzie에 들어가서 그런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Q. 1997년 7월 율촌을 설립하셨습니다. 그전에 우창록 대표님과 인연이 있으셨나요?

 우창록 대표님과는 대학 시절부터 기독학생회 활동을 같이하면서 각별한 선후배 사이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귀국 후에는 우 대표님께서 같이 일하자는 권유도 하셨지요. 그러던 차 1997년에 같은 세대의 젊은 변호사들과 새로운 로펌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 대표님 및 우 대표님과 함께 일하던 강희철, 한만수, 한봉희 변호사님과도 의기투합하여 민주적 파트너십으로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로펌을 지향하는 율촌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 로펌 경영은 변호사 생활과 전혀 다를 것 같습니다. 회사를 성장시키신 부분이 진심으로 경이롭고 존경스러운데, 경영 철학이 있습니까?

 법률서비스의 질은 결국 사람의 경쟁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판단하여 설립 초기부터 훌륭한 인재의 확보와 양성을 경영의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급여는 국내 최고 수준을 항상 유지하였고 실제로 초기부터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창업정신은 여러 전문 분야의 변호사들이 조직적으로 협업하여 고객을 위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율촌은 다른 어떤 로펌보다 협업을 잘하는 로펌으로 알려졌고, 이러한 협업은 서비스 수준도 높여 주었기 때문에 초기부터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의 부당내부거래 사건, SK증권과 JP Morgan 사이의 초대형 파생금융소송사건,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Microsoft, Intel 등의 독점적 지위 남용에 대한 사건 등을 성공적으로 처리하면서 급격히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소속 변호사가 내실 있는 발전과 성장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교육 투자가 가장 많고 IT를 비롯한 업무시스템이 가장 잘 정비된 로펌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로펌의 경쟁력은 성장 속도나 규모보다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조직문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율촌의 구성원들은 digital transformation과 같은 시대적 패러다임 변화의 추세를 먼저 읽고 이에 따른 산업전문성(industry expertise) 확보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창조적, 혁신적 대안과 전략을 제공하고자 수년 전부터 인공지능(AI), 모빌리티, 핀테크, 가상자산(virtual asset) 등 4차 산업 관련 업무를 개발하고 투자해 왔습니다. 그 결과 2017년에는 한국 로펌 최초로 Financial Times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가장 혁신적 로펌(Most Innovative Law Firm in Asia)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Q. 후배변호사들에게 아쉬운 점이나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저는 법조인으로서 성공하려면 수동적으로 따라가지 말고, 먼저 자기가 원하는 일과 목표를 선택한 다음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꾸준히 기회를 만들어 가면서 장기적으로 추진하라고 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과 같이, 뜻을 정한 다음 그 뜻을 이루기 위한 길을 만들어 가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요. 요즈음 젊은 법조인들을 만나서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많은 분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가 그중에서 적당한 분야를 선택하여 그 길을 가겠다는 다소 막연한 희망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수동적으로 장래에 접근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접근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미 법조 커리어를 걸어 온 선배들의 조언도 듣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 산업 분야별 전망을 조사해 보는 등 커리어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이뤄나가는 게 좋을 것입니다.


Q. 평소 하시는 운동이나, 취미가 있으신가요?

저는 걷는 걸 좋아해서 매일 만 보를 목표로 꾸준히 걷고 있습니다. 달리기나 등산도 좋아하지만, 무릎이 약해서 할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Q. 변호사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그 이유가 있습니까?

 기독교인으로서 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유는 그의 역설적 삶에 있습니다.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의 한 분으로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이걸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기 생명을 희생한 것은 정말 역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생전에는 별 존재감도 없었던 그의 가르침이 사후에 비로소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되었다는 것도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하겠습니다.


Q. 지금까지 어떠한 좌우명 혹은 가치관으로 살아오셨나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黃金律)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합니다. 황금률은 동서양의 모든 종교나 윤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류 공통의 가치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Q. 프로필상 취미가 영화감상인데, 최근 감명 깊게 본 영화 혹은 ‘인생영화’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 있습니까?

 사실 요즘은 옛날처럼 극영화를 많이 보지 않고 다큐멘터리를 많이 봅니다. 인생영화라면 역시 〈닥터 지바고〉와 같은 대작을 꼽을 수 있겠지요. 


Q. 앞으로 꼭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요즈음 여러 공익법인의 대표자나 임원을 맡아 일하면서 국내 비영리법인의 법제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어서 공익사업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비영리법인 법제 개선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Q. 지난 9월 ‘명덕상’을 수상하시면서 “남은 인생을 사회 공익과 법조 후배들을 위해 봉사하며 ‘명덕상(明德賞)’의 이름에 걸맞은 밝은 덕을 쌓아 나가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가요?

 사단법인 온율의 이사장으로서 따뜻한 법률이라는 ‘온율’의 이름처럼 우리 사회 모든 곳에 법의 빛이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법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약자들도 법의 지원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한국의 법률문화의 발전에도 미력이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특히 율촌과 온율이 다른 공익단체에 법적 전문성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자원이 승수효과(乘數效果)를 내길 바랍니다. 국내 공익분야의 실정을 살펴보니 법률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여 생긴 여러 비효율과 문제가 있어서 여러 공익단체와 협력사업을 하고 있거나 추진 중에 있습니다.


Q. 변호사님께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요즘은 후배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걸 보면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Q. 살아오면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꼽자면?

 제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어려운 질문이군요. 사회적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사법시험을 합격한 것과 미국 유학을 가게 된 것이 아닐까요?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건가요?

 네, 저는 법조인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경영학도 공부해 보고 싶기는 합니다. 로펌과 비영리법인의 경영을 하면서 경영의 중요성을 실감했거든요.


Q. 슬하에 2남을 두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녀분들에게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권하셨나요?

 제 아이들에게 법조인을 직업으로 권한 일은 없었습니다만 큰 아들은 한국 변호사가 되었고 둘째는 미국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부산지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윤세리 검사를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까요?

 참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역사를 연구하여 시대의 큰 흐름을 읽고 미래를 준비하는 법조인이 되라고 하고 싶습니다. 요즈음 제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3년의 후배변호사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현대는 심층전문화(Deep Specialization)와 융합의 시대입니다. 이 둘은 상반되는 개념인 것 같지만, 산업의 고도화에 따라 각 분야의 전문성이 심화되면서도 다른 분야와의 교류와 응용이 창의와 혁신의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어떻게 소화할지가 후배변호사들의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걸 조화하는 방안은, 전공 인접 분야는 물론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까지도 기초적으로 넓게 이해하면서, 전공 분야에서는 정말 파고드는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법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나 공학까지도 기초적인 것은 이해해야 하고, 전공 분야 관련 산업과 시장을 깊이 있게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상반되는 것 같지만 실제 해 보면 서로 상승작용을 통하여 매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성과를 내는 지름길입니다. 마치 여행할 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더 잘 이해하면 여행이 그만큼 더 재미있고 즐거워지는 것처럼요.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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