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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새로운 명연은 계속된다

음악계에서의 청출어람

 스승에게서 배운 제자의 학문이나 실력이 스승을 능가하는 경우를 표현하는 말로 ‘청출어람’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작곡가뿐 아니라 연주가들은 흔히 ‘사사한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훌륭한 스승 밑에서 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청출어람에 해당하는 유명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제17회 쇼팽 콩쿨에서 우승한 우리나라의 조성진에게도, 드뷔시나 라벨의 피아노곡 연주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구가했던 미셸 베로프라는 유명한 스승이 존재했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로부터 배워서 성장한 장한나처럼 유명한 스승이 직접 연주자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클라이번 콩쿨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임윤찬이 1978년 호로비츠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녹음을 1000번을 들었다고 말한 것처럼 명연의 존재 자체도 연주자들의 연구와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익히 아는 연주자들의 명연이 후배 연주자들의 모범이 되기도 하지만, 뛰어난 연주자들이 새롭게 계속 출현하기 때문에 종전의 명연을 능가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것도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다.


종래의 역사적 명반과 새롭게 인기를 얻는 명반들

 미국에 망명한 라흐마니노프는 1928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를 만났고 이후 평생 음악적 동료로 교류하게 된다. 실제로 호로비츠가 연주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에 대해서 라흐마니노프는 “살아서 이런 연주를 들을 줄은 기대하지도 않았다.”며 극찬했다고 할 정도로, 임윤찬이 1000번을 들었다는 호로비츠와 뉴욕 필하모닉의 명연은 오랜 동안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역사적 명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사진 1). 그런데 최근으로 오면서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위 명연은 녹음의 질이 떨어진다거나 호로비츠가 미스터치를 제법 했다는 등의 의견이 나오기도 하고, 이 곡에 대한 새로운 연주자들의 명연도 속속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중 하나인 아르헤리치의 음반 인기가 더 높아져 버렸다. 아르헤리치의 이 연주에 대해서는 “추진력과 힘을 바탕으로 비단 같은 섬세함과 강철 같은 견고함을 넘나들며 보기 드문 열정을 표출하였다.”는 호평이 붙었고,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커플링되면서 CD 가이드 20세기 명반에 선정되었다(사진 2).

 바이올린 소나타 역사상 불멸의 명작으로 꼽힌다는 크로이체르를 포함한 베토벤의 작품에 있어서는, 종래부터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과 오보린의 피아노 연주가 최고의 명연으로 다루어져 왔다(사진 3, 수크와 파넹카의 연주도 이와 쌍벽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우리나라에서 그 음반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오이스트라흐와 오보린의 연주도 1960년대에 녹음된 것이다 보니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고, 슬슬 요즘의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위 연주도 경직된 올드함이 느껴진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후배 연주자들 중에도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나오다 보니 새로운 명연도 자꾸 나올 수밖에 없는데, 가뜩이나 유명한 아르헤리치가 반주를 맡고 기돈 크레머가 바이올린을 연주한 소나타 음반이 나오면서 여기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사진 4). 

 필자도 두 음반 모두 소장하고 있는데, 처음 크레머와 아르헤리치의 음반을 듣는 순간 “정말 산뜻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굳이 음료를 마실 때의 느낌에 비유를 하자면, 오이스트라흐와 오보린의 연주가 구수한 숭늉 같은 익숙하고 따뜻한 느낌이라면 크레머와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스파클링 음료 같은 화사하고 짜릿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클래식 전공자도 아닌 입장에서 단언하기 어렵지만, 위의 음반들은 이전에 들었던 표준적 해석과 혁명적 해석의 구분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세월이 흐르면서 곡에 대한 시각도 변화하고 녹음의 질이 좀 더 우수해진 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되는데, 특히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7번에 대한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연주도 그래서 더욱 유명해진 측면이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2차대전 전후라는 시기에 히틀러를 옹호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오랜 동안 최고의 연주를 해내었던 푸르트벵글러에 비해, 1976년이라는 더 좋은 상황에서 지휘의 천재라는 클라이버가 베토벤 교향곡 7번의 낙관적 환희의 분위기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 최고의 걸작이라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경우에도, 푸르트벵글러가 1951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남긴 녹음이 역사상 최고의 명연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평론가는 거의 없다 (사진 5). 그러나 일반 애호가들이 1980년대에 녹음된 카라얀의 명연을 더 많이 듣는다는 사실은, 카라얀의 연주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과 별론으로 기술 발전에 따라 향상된 녹음의 질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 할 수 있다(사진 6).


모차르트의 피아노곡들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들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모차르트 음악을 들은 학생들의 뇌의 활동이 촉진되어 지능이 향상되었다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그때 사용되었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K. 448이 매우 유명해진 일이 있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 때문에 실제로 이 곡에 있어 가장 명연으로 꼽히는 페라이어와 루푸의 음반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필자도 지인들이 출산한 경우에 아기를 위한 선물로 주기도 했다),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까지 함께 들어가 있는 이 음반은 펭귄가이드와 러프가이드 등에도 등재된 명반이기도 하다(사진 7).

 그런데 작곡가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그의 피아노 소타나 작품들이 오랫동안 평가절하되어 온 사람이 정작 모차르트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베토벤의 소나타와 달리 한 세트로 묶여 있지 않았기도 하고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도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을 쉽게 여긴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하는데, 다행히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노력해서 지금은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 릴리 크라우스나 알프레드 브렌델처럼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을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연주자들의 많은 음반이 나와 있고, 특히 소나타 중에 가장 걸작이라는 8번에 대해서는 요절한 비운의 피아니스트 리파티가 연주한 음반이 녹음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더 특이한 사실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사람도 아닌 일본인이 평생을 바쳐 모차르트를 연구하여 업적을 냈다는 것이다. 우치다 미츠코가 1991년에 필립스에서 녹음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8곡은 일본인인 그녀를 모차르트 전문가로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사진 8).


결어 : 세계를 주름잡는 우리 연주자들 

 종래 모차르트 전문가로 인정받았던 잉그리드 헤블러나 릴리 크라우스 같은 분들은 이미 활동하지 않거나 고인이 되었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는 점에서, 1990년대에 우치다의 연주가 새롭고 신선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음반이 나온 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정경화 등 선구자 이후에도,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세계 음악계에서 활약하면서 새로운 명연을 내놓는 연주자들 중에 우리 음악가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고 자랑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피아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 된 백건우를 들 수 있는데, 1998년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음반은 음악적으로도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많은 인기를 누렸다(사진 9). 특히 앞서 언급한 협주곡 3번은 높은 테크닉과 초인적인 지구력을 요구하는 난곡임에 불구하고 위 명연들에 못지않은 연주를 하였고, 최근에는 베토벤의 소나타까지 음반으로 내서 성공하는 등 한국의 역량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 다음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라면 베토벤의 의사에 반해 출간된 2곡을 제외한 30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2012년 EMI에서 출반한 임현정 피아니스트가 되겠다. 이때 출반된 음반이 가져온 충격은 지금도 온라인에서 검색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인데, 종래의 연주들과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 인기를 끌면서 지금은 전집 음반 자체가 구할 수도 없는 고가의 상품이 되어 버렸다(사진 10).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우리 음악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고, 세계 3대 콩쿨에서 우승하여 익히 알려진 조성진과 임윤찬 등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는 자체가 불필요할 정도이다.

 대중음악의 시대에 클래식 애호가는 줄어들고 온라인 다운로드의 여파로 음반시장이 축소되는 등의 현실에 비추어, 시간이 흐른다 해서 클래식 음악이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종래에 존재했던 훌륭한 음악가들 못지않게 걸출한 신예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의 수준이 결코 퇴보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세계 음악계의 청출어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우리 연주자들의 활약을 보면서, 언젠가는 다시 클래식 음악이 대중에게 자리 잡는 그날이 오리라고 기대해 본다.
 

허중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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