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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기간이 30일 남았습니다

“상품의 유효기간이 30일 남았습니다.”

 띵동! 메신저 알람이 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조각 케이크 세트 기프티콘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확인 후 연장하라는 안내였다. 잠시 화면을 들여다본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기간 연장을 선택한다. “유효기간이 정상적으로 연장되었습니다.”

“변호사님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시원하게 한잔하세요.^^”

 선물과 함께 도착했던 작년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누가 보낸 선물인지 떠올리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복잡하지 않은 상담이었고 사건화도 되지 않았던 사안이었기에 나로서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은 마음도 들었었다. 얼마 후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릴 즈음, 그가 갑작스럽게 안부를 물으며 ‘시원하게 한잔하라’고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온 것이다.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꽤나 기뻤던 기억이다. 그래, 그날도 나는 기분이 좋아졌었다.

 같은 일을 하는 아내와 변호사의 일이란, ‘어둠 속에서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사람들은 대개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온다. 변호사를 찾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면 이미 그들의 여정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법이고, ‘법’이라는 글자에서 느껴지는 거리만큼이나 어두운 길이다. 변호사는 작은 빛에 의존하여 의뢰인이 찾고자 했던 출구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그 빛은 성냥불처럼 아주 작은 빛일 수 있다. 어떤 때는 쉽게 초에 불을 붙이기도 하지만, 몇 번이고 성냥을 그어야 간신히 불이 붙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불을 붙였다고 끝이 아니다. 불꽃은 살짝 부는 바람에도 아슬아슬 위태롭다. 꺼트리지 않으려면 쉬이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재판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심지어 의뢰인이 내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없는지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재판이 끝날 때까지 노심초사 전전긍긍이다. 의뢰인이 찾고자 했던 출구까지 제대로 길을 밝혀 그가 어둠 속을 잘 빠져나가는 모습을 본 후에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변호사의 삶이라는 것은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Sisyphe)의 삶 같은 것일지 모른다. 산 아래에서 의뢰인과 함께 바위를 밀다가 정상에 오르면 의뢰인은 후련한 마음으로 다음 길을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변호사는 다음 의뢰인이 짊어지고 온 새 바위를 밀어 올린다. 결국 변호사의 삶이란 늘상 타인의 걱정과 고민을 대신 감당하느라 어두움과 친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렁이는 불을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자못 미안하고 고맙다는 듯 초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출구를 나섰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길을 찾은 그들의 여정은 여전히 어둡고 불안할 텐데도, 흔쾌히 건네는 그 초가 나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된다.

 세상 근심 가득한 얼굴로 들어왔다가 상담을 마치자 ‘이제 속이 시원하네’라며 환한 얼굴로 일어나던 할아버님. 못 받을 줄 알았던 임대차보증금이 계좌에 입금되었다며 기뻐하던 사회초년생. 변호사님 덕분에 몇 달이나 만나지 못한 아이를 만났다며 갑 티슈 한 통을 다 쓸 정도로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 

 판결 선고일에 오타 가득한 문자로 생생히 기쁨을 전해오던 할머님. 그리고 한참 지나 문득 생각났다며 안부를 전해오는 사람들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분들이 전하는 소소한 감사와 안부 인사는 변호사로 일하며 지치고 힘들 때마다 작은 불빛으로 돌아와 내 길을 밝혀준다.

 오만 팔천 가지 이유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눅진한 답답함이 깊은 한숨으로 치환되어 땅을 꺼뜨리려 할 때가 있다. 그때 이런 분들이 보내준 기프티콘은 내가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는 촉매가 되어준다. 그러니 이렇게 받은 기프티콘들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아니, 사용하고 싶지 않다. 아껴둘 셈이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메신저로 받은 기프티콘은 무제한 유효기간 연장이 가능해졌고, 유효기간을 30일 앞두면 알람으로 알려주기까지 한다. 덕분에 나는 오늘처럼 그때 그 기쁨을 반추하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부탁드립니다. 카드 여기에 꽂으면 되나요?”

 일 년은 족히 먹어도 남을 커피 기프티콘이 쌓여도, 아끼다 무엇 된다고 아내가 면박을 주더라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커피를 돈 주고 사 먹을 예정이다. 갈무리 해둔 이 빛나는 조각들은 내 기억의 분신이자 자부심의 일단이 되어 유효기간을 연장할 때마다 나에게 오래된 기쁨을 전달해 줄 테니 말이다. 다만,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의뢰인분들이 절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언가를 바라고 쓴 글은 아니다. 절대로!

 

김유중 변호사
● 법무법인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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