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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님 말고

 파트너가 되고 보니, 사건의 결과가 주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것이 송무변호사의 숙명이라지만, 초보 파트너는 유리멘탈로 일희일비하는 날이 많습니다. 최근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민사는 본안에 앞선 가압류, 가처분 신청이 잘 받아들여지는 편이지만, 행정사건은 집행부정지가 원칙이라 집행정지를 받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본안에 자신이 있었고, 집행정지사건 심문기일 주심의 질문 등 태도에 미루어 보더라도 쉽게 집행정지가 예상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니 글쎄 덜컥 집행정지 기각이 나고 만 것입니다. 너무 당황하고 분개한 나머지 씩씩거리며 같이 사건을 하는 선배 파트너 변호사님의 방에 가서 비보를 전하는데, 의자를 한 바퀴 빙글 돌리며 느긋하게 뒤로 기대 먼 곳을 지긋이 바라보던 그는 “아니 뭐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승패는 병가지상사.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빨리 항고를 하십시다” 하며, 전혀 당황한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수많은 전투를 겪어낸 백전노장의 내공이 느껴지며 그 뒷모습에서 뭔가 후광을 본 듯도 하였습니다. 암튼 선배변호사님의 쿨한 태도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항고를 한 결과 그 사건은 항고심이 인용되고, 본안에서도 승소했으며, 현재 항소심 결론만이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소송의 결과가 내 마음과 다를 때, 특히나 그 예상까지 완전히 빗나가 버릴 때 송무변호사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열심히 공을 들인 사건이 패소하였을 때는 송무변호사로서의 나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건에 10개의 구멍이 있다고 했을 때, 이를 다 막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9개만을 막아 패소한 경우라면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구멍을 전혀 막지 못하고 패소한 경우와 결과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그 유명한 “모래알이든 바위든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라는 올드보이의 명대사가 가슴을 후벼파기도 하고, devil’s in the detail(악마는 작은 곳에 숨어 있다)이라는 서양의 속담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럴 땐 분노의 방향이 스스로를 향합니다. 때로 내 딴에는 구멍 10개를 다 막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 서 있는 자리가 달라 필연적으로 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재판부가 ‘글쎄 아니올시다’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는 자책과 후회는 덜 하지만 외부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르게 되지요.

 한때 송무변호사의 존재의 의의는 사건을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불가능을 꿈꾸는 돈키호테적 망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만사 원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사건이라고 다를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송무변호사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필연적인 질문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읽은 박찬욱 감독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박찬욱 감독의 딸이 어릴 적 초등학교 숙제로 집안의 가훈을 적어오라는 말에 박찬욱 감독이 우리 집 가훈은 “아님 말고”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가훈을 들은 선생님이 아이에게, 장난 치지 말고 진짜 가훈을 적어오라고 하자, 박찬욱 감독이 “아님 말고”에 대한 멋진 주석을 다음과 같이 적어 보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의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오만한 태도. 세상에는 의지만 가지고 이룰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닥쳐오는 좌절감을 어찌할 것이냐.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고 그래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땐 툭툭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경쟁만능의 사회에서 참으로 필요한 건 포기의 철학. 체념의 사상이 아니겠느냐”

 아님 말고는 대충하자는 것이 절대 아닐 것입니다. 더 열심히 하자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의 패소가 있으면 불의의 승소도 있겠거니, 1심에서 지면 2심에서 잘되겠거니, 2심에서 지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되려나?, 대법원에서도 안 되면 이건 의뢰인의 새옹지마로서, 안 되는 것이 더 나았으려니 하는 터무니없는 긍정심으로 정신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계속되고 사건도 계속되며, 우리는 언제나, 어디론가 계속 “move on” 해야 합니다. 그 추진력은 결코 후회와 자책과 분노에 매몰된 마음에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패소에 발목 잡히지 않고 남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 송무변호사가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더욱 드는 요즘입니다. 그러면 또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 분명하니까요.

 

이응교 변호사
● 법무법인(유)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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