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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 변호사 인터뷰

‘매일 글 쓰는 사람’, 정지우는 지금까지 대략 19권의 책을 낸 프로 작가이다. 
그는 부단히 글을 써서 SNS에 공개한다. 구독자들은 자발적으로 그의 글을 공유한다. 
내용의 진실성과 완성도 역시 매력적이었지만, 일정한 분량으로 하루하루 비슷한 시간대에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마치 무언의 약속을 한 것과도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 
일상 속 작은 습관으로 정지우의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그를 또 다른 정체성인 정찬우 변호사로서 회보의 구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Q. ‘정지우’라는 필명으로 살아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12년 첫 번째 책 『청춘인문학』을 낼 때 이름, 나이, 신분 등 모든 것을 감추고 싶어서 중학생 때 PC 통신에서 쓰던 닉네임 ‘지우’를 골라서 필명으로 썼죠. 스물넷의 대학생이 청춘과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하면 아무래도 평가절하당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2014년 『분노사회』를 낼 때는 청춘 담론을 넘어 본격적으로 사회 담론을 이야기하게 됐는데, 제 이야기가 기성세대 지식인 등과 보다 동등한 위치에서 전달될 수 있길 바랐습니다.


Q. 지금 관점에서 ‘청춘’과 ‘분노’를 이야기했던 20대 시절의 글을 보면 어떤가요?

 『청춘인문학』의 결론은 꽤 낭만적입니다. 지금도 공감하고 있지만요. 다만 그 책을 다시 쓴다면 현실적인 부분을 좀 더 상세하게 다룰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현실적인 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 삶에서 자기만의 가치를 쫓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타인에게 휩쓸리는 삶이 아니라, 자기 삶의 중심을 찾고 따라가는 것이요.


Q. 프로 작가로서 대략 19권의 책을 냈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이기도 하고, 한 대학교 수업에서는 100년 뒤에도 읽힐 고전으로 선정되기도 했지요. 글의 소재를 어떻게 찾나요?

 사회 이야기를 하더라도 항상 나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내가 이 사회의 당사자로 살아가니까, 내 이야기가 곧 사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청춘으로 겪었던 문제도 그렇고, 요즘에 자주 쓰는 육아에 관한 이야기도 우리 사회의 문제이죠. 결국 우리가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내 안에 있습니다.


Q. 정지우 작가는 매일 자신의 마음을 글로 진솔하게 써서 SNS에 공유합니다. 글쓰기란 행위 자체를 굉장히 귀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글쓰기는 제 인생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은 얼마 전 이사를 했거든요. 이사하기 전까지는 매우 초조했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이사를 하고 난 다음 도대체 이사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이사를 했을지 1시간 정도 가만히 고민을 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 전까지는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겠고 어떤 마음인지 흐리멍텅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 비로소 마음이 구체화되면서 ‘내가 이런 마음으로 지금 여기에 있구나’라는 걸 느껴요. 누군가가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는 것처럼, 저는 글쓰기를 통해 복잡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죠.


Q. 정지우 작가의 글은 거의 매일 비슷한 시간에 정기적으로 SNS에 업로드 됩니다. 그 글을 좋아하는 팬들도 상당히 많죠. 매일 글 쓰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항상 지금의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금의 마음, 감정, 생각을 글로 써두지 않으면 나중에 다 잊어버리고 못 쓸 것 같아요. 나중에 새로 쓴다고 하더라도 다른 글이 되겠지요. 작가로서 살 때는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소중했고, 이대로 흘러가는 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을 더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을지 매일 고민했습니다.


Q. 사실은 법조인들 중에서는 SNS에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글로 써서 올리는 것 자체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보이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글을 많이 쓰기 때문에 주변인 중에 “너무 많이 글을 쓰면 언젠가 네가 남긴 글이 너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라는 말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매일 쓰는 글을 1년 치로 묶으면 A4 용지 500장 정도는 될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 모든 글을 다 읽고 기억을 할 만큼 남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것 같진 않아요. 사람들이 지금의 나에게 주목을 하고 있으니 내가 한 말도 기억할 거라고, 언젠가는 나의 글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염려하면서 엄청나게 신경 쓰며 살아간다는 것 또한 오만인 것 같습니다. 

 저는 흘러가는 하루하루 글을 남길 뿐입니다. 미래의 언젠가 문제가 될 글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글을 쓸 당시에 제가 진심이 아닌 것을 썼던 것은 니거든요. 그러니 혹시 문제가 있다면 그때 가서 해명할 건 해명하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설득하고 반성하면서 나아가면 되죠. 우리 사회에서 어떤 결벽증적인 요구에 일일이 신경을 쓰게 될 경우 과연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모든 순간에 자기를 억압한다든가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것만이 답은 아닐 거예요.


Q. 이제는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를 통해 다른 사람과 함께 글을 쓰기도 하지요?

 제가 올해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란 책을 냈습니다. 출판사와 계약했을 땐 이 책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로펌에 다니니까 너무 바쁘니 스스로 강제할 수단이 필요했죠. 그래서 글을 연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뉴스레터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혼자서 하려니 콘텐츠도 너무 빈약하고 일정한 주기로 글을 쓰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동생(정유경 변호사)과 주변 작가들을 모아서 1년 동안 해봤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수익도 나지 않았고, 같이 하던 작가들 몇 명은 그만두고 침체기가 왔습니다. 마침 제게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분들이 생각났어요. 그분들과 함께 대략 8주에서 9주 정도 함께 글을 쓰다 보면,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서 정말 글이 좋아지거든요. 그런데 그 기간이 끝나면 그분들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거예요. 그게 아쉬웠습니다. 저렇게 좋은 글을 쓰고, 저마다 독특한 인생을 살아오며, 각자 직업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글을 쓸 수 있게 유도하고 연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함께 데뷔하자고 의기를 투합했고, 좋은 콘텐츠를 보유하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원고료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카카오와 계약을 해서, 올해부터는 다음 메인화면에 매일 콘텐츠가 발행됩니다. 이렇게 발전해 가고 있죠.


Q. 작가의 삶과 변호사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변호사로서 삶은 작가로서의 삶과 본질적으로 달라요. 작가로서는 내가 주체가 되어 365일 계획하고 무슨 작품을 써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죠. 한편, 변호사는 사람들을 굉장히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살아가요. 세상에서 이렇게도 가장 절망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도 드물 거예요. 작가로 살 때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어요. 나 혼자 글을 쓰고 사는 거죠.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좌절한 순간에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들고 변호사를 찾아와요. 타인의 문제에 대해 내가 어디까지 개입해서 도와줄 수 있는지 고민해 보는 것도 귀한 경험이에요.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기회나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렇게 보면 변호사로서 남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권이자 때론 감사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Q. 변호사로서 특히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야는요?

 형사에서 무죄를 받아낼 때 정말 좋았습니다. 민사는 제로섬 게임처럼 사인(私人) 간 대립인데, 형사는 사인과 국가가 대립하죠. 이 사람을 국가로부터 형벌을 받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받게 된다면 얼마만큼의 적절한 수준으로 형벌을 받게 될 것인가 이 문제예요. 이때, 적절한 형벌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굉장히 정의롭다고 봐요. 

 이 사람이 분명히 잘못을 했다고는 하더라도 이 사람의 책임에 맞게 형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측면에서요. 이 사람이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무죄를 받아낼 수 있는 것이고요.


Q. 정지우 작가 입장에서 정찬우 변호사의 직업에 대해 평가를 해본다면요?

 삶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누구나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끼고 싶어 하잖아요. 내가 아무리 남을 돕고 싶다고 하더라도, 정작 아무도 나 같은 사람의 도움은 바라지 않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제가 작가로 다가가서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당신이 날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하고 묻겠지요. 그럼 작가로서는 글을 써서 언론사에 제보하거나 세상에 알리는 방법밖에는 없거든요? 하지만 제가 변호사가 된 순간부터 사람들은 저를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방법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해요. 변호사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근본적인 자격을 갖추었죠.

 삶의 마지막에 외롭게 홀로 남는다고 했을 때 나에게 말을 건네 줄 사람이 가장 절실하겠죠. 그런데 반대로 변호사의 경우 항상 나에게 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요. 사람들은 변호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해요. 때로는 돈도 되지 않고 괴로운 일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그만큼 쓸모 있는 사람인 거죠. 이러한 쓸모를 내 삶에서 보다 이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 갈 것인지는 본인의 몫이겠지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만으로 변호사란 괜찮은 직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서유경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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