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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칼> 세계의 역사와 이념

재패니메이션 문화유전자(meme)와의 재회

 아이는 <귀멸의 칼날>에 푹 빠졌다. ‘해의 호흡’인가를 하더니 검도를 배운다. 만화책을 내주며 아비도 어서 <귀칼> 세계에 동참하길 바란다. 손을 잡아끌며 극장판도 보자 한다. 차츰 <귀칼>의 신물(神物)들이 쌓여간다. 신문 읽다 싸한 기분에 돌아보면 ‘일륜도(日輪刀)’를 쳐든 아이가 씩 웃는다. 기겁했다. 대체 누가 ‘오니(鬼)’인가?

 역사를 붉게 물들인 폭력에 질린 이에게 달가울 리 없다. 역설적이나, <귀칼>은 폭력과 지배에 저항을 외친다. 통속적이게도, 한층 집요하고 무참한 폭력으로 저항한다. 극한의 폭력에 으스러질 순간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튀어나오고 격돌을 이어간다. <아톰>에서 <마징가Z>, <드래곤볼>, <에반게리온> 등으로 이어지는 재패니메이션의 그 문화유전자(meme)와 이리 재회할 줄이야.

 만화로 시작한 <귀칼>은 애니 · 굿즈로 뻗어 나가 국경 넘고 대양 건너 영어 제목 ‘Demon Slayer’로 통한다. 인기가 돈인 세상에 조(兆) 단위 매출을 올리며 세계 문화시장을 가로지른다. 대체 무엇이 이 허구에 그토록 탐닉하도록 만드는지? 진심, 그것이 알고 싶다!


We don’t ask why, we just do or die!

 소년 ‘탄지로’는 절대폭력에 죽자사자 대항한다. 그 설정과 태도로부터 모종의 ‘힘’이 분출된다. 기꺼이 지갑을 열고, 검도장으로 이끄는 이 ‘힘’은 무엇일까? ‘웃자는 만화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나, 대결의식이 생겨나니 어쩔 수 없다. 성룡의 모토인 “We don’t ask why, we just do or die!”를 외치며 복판으로 뛰어들자. 단, ‘허구(영화)’를 위해 ‘실재(목숨)’를 걸었던 그 의식과는 반대 방향으로! 어쩌면 <귀칼>에 몰두하는 정신들에게 진지한 응답이 되리라.

 <귀칼>은 허구이다. 과학과 거리 먼 신화적 힘이 난무한다. ‘무한열차’편 ‘탄지로’는 ‘거부할 수 없는 꿈’을 유도하는 혈귀(血鬼)와 마주한다. 하릴없이 깊은 잠에 빠지는 ‘탄지로’는 각성을 위해 자신의 목을 베어야 함을 깨닫는다. 혈귀는 더 강한 ‘혈귀술’로 깊은 잠을 유도하고, 꿈/깸을 반복하던 ‘탄지로’는 깬 순간 자신의 목을 치려 한다. 바로 지금, 깬 순간인가? 잠든 순간인가?


‘실재/현실’을 대체하고 은폐하는 ‘가상’

 사피엔스는 일찍이 가상에 친숙했고, 어떤 가상(이데올로기)은 목숨(실재)을 좌우할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글에 사용된 말도 가상(상징)이고, 자본주의 매체인 돈도 가상이다. 가상/실재의 관계는 기술 · 사회발전에 따라 동일하지 않다. 디지털 정보매체가 일상 속 자리 잡고 VR, AI 첨단기술도 횡행하는 오늘날 그 관계는 한층 오묘하다.

 이 지점을 정밀히 사유해 독특한 관점을 제공한 철학자가 장 보드리야르이다. 가상이 실재 · 현실을 대체 · 지배함을 논한다. 본래 이미지(환상)는 실재의 모사(mimesis) 차원이었으나, ‘힘’을 얻어,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있는 것처럼 만들고 현실을 규정하기도 한다. 즉, 초실재(超實在, hyper reality) 차원으로 이행했다. 그는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미국 전체(all of “real” America)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에 있다”는 선문답을 던졌다.

 대중은 디즈니랜드가 가상임을 알지만 출구를 나오며 이제 현실로 복귀한다 착각한다. 이는 미국이 또 하나의 ‘환상’이라는 점을 은폐한다. 미국을 ‘환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는, 일례로, 미국 문화비평가 커트 앤더슨의 『판타지랜드』에 잘 나타난다. 이미 우리는 장자의 호접몽, 영화 <매트릭스>, 붓다의 색즉시공, 그리고 뇌과학과 양자물리학 등을 통해 위 선문답의 맥락을 직감한다.


<귀칼> 세계의 익숙함, 그리고 위화감

 그런 맥락에서 <귀칼>도 초실재이다. 대응되는 실재 · 현실이 없다. 그러함에도 현실을 제법 규정하려 든다. 이에 맞서, <귀칼>이 사피엔스 고질(痼疾)의 이분도식을 강화시키고, 일본 사회와 역사의 허구를 감추고, ‘탄지로(허구)’의 고통에는 이입하나 ‘이웃(실재)’의 고통을 외면하는 역설을 유발할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귀칼>에는 선/악, 죽음/삶의 극단 대립만 있다. 적을 박멸할 때까지 칼을 놓을 수 없다. 평화는 오지 않는다. 독자가 이입할 곳은 분명하다. 이분법을 맹렬히 가동해 정동(情動)의 ‘힘’을 드높인다. 이를 위해 인간과 다른 진화체인 혈귀에 인간의 도덕을 개입시킨다. 적개심을 증폭시키며 박멸의 명분이 확보된다. 가족을 잃은 소년이 복수심에 떤다. 칼을 들고 무(武)를 숭상하며 성장한다. 대를 위해 소를 바쳐야 한다. 그 와중에도 인간미를 잃지 않은 소년에게 보답하듯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제공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베고 써는 장면을 보다 편안히 즐기게 할 설정이라면?

 거칠게 말해, <귀칼>은 그런 목적의 작위적 기획물이다. 휴머니즘의 제스쳐를 양념격으로 뿌려 놓았으나, 정작 휴머니즘이 실현되어야 할 무대인 사회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쓸모없는 무기력한 존재들이다. 그저 ‘혈귀’들의 밥이다. 자연히 사회도 법률도 역사도 보이지 않는다. 괴력난신의 잔치일 뿐이다. 그런데도 왜 굳이 일본 다이쇼(大正)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을까? 


<귀칼> 세계의 역사와 이념

 안중근 장군은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장군이 순국한 1910년 일제는 조선의 국권을 완전 박탈했고, 곧 다이쇼 시대(1912 ~ 1926)를 맞이하며, ‘다이쇼 데모크라시’(민주주의, 자유주의적 사조 · 운동)를 구가한다. 일제의 폭력지배를 참다못한 조선인은 1919년 만세운동을 벌였다. 죽은 조선인은 약 1천(국사편찬위원회)에서 7,500여 명(박은식)이다. 유관순 열사도 그중 한 명이다.

 다이쇼 시대, 제국 본토로 들이닥친 ‘혈귀’들, 그에 맞서는 ‘귀살대’의 정체는 무엇인가? 시대 특징인 데모크라시 운동의 주체(시민)와 사회상을 소거해 버리는 심리와 의도는 또 무엇인가? 당시 사회주의, 좌파정당이 출현했고, 40여 년 후 극좌파 연합적군이 벌인 만행으로 일본열도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는 점, ‘귀살대’의 현실 모델인 사무라이야말로 임진년 조선을 침략해 무자비한 만행을 벌인 ‘혈귀’들이었다는 점, 메이지유신에 공헌한 사무라이 무리 역시 특권이 사라지자 조선 정벌로 욕구불만을 해소하려 획책했다는 점만 지적해 둔다. 누가 ‘혈귀’이고 누가 ‘귀살대’인가?

 <귀칼> 세계와 논리는 전쟁으로 일관한다. 일상도, 사회도, 헌법도 정지시킨다. 칼 슈미트가 말하는 ‘예외 상태’이다. 군경은 즉결 처분하고, ‘인간 존엄’은 간단히 부정된다. 트라우마는 뿌리내리고 인격은 파괴된다. <귀칼>은 이 구도와 공포를 적극 활용한다. 쟁투는 선명하되, 삶과 사회의 실재가 물러서는 이유이다. 이제 ‘예외 상태’를 종식시킬 비상대권자의 출현이 강력히 요구된다.


<귀칼> 세계의 정치ㆍ사회심리학

 <귀칼>은 전쟁이 만화 속 환상일 뿐이라 속삭인다. 그러면서도 전쟁 논리(선/악, 피/아의 이분)를 뇌새김한다. 현실 속,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다수가 전쟁 · 내전을 겪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가짜 평화’ 세력과의 전쟁, ‘건폭’과의 전쟁, ‘노조기득권’과의 전쟁, ‘사교육카르텔’과의 전쟁, 미디어와의 전쟁 등. 전쟁을 성찰ㆍ종식시킬 기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소년이 분골하며 찾으려는 것은 ‘고향(가족)’, ‘순수’ 세계이다. 이를 위해 소년은 천지를 울리며 폭주한다. 불행히, 소년 ‘귀살대’의 ‘실사판’은 중세의 소년십자군, Nazi의 히틀러 유겐트, 일제의 육군소년비행병, 그리고 AK소총을 거머쥔 아프리카 소년병들의 눈망울에 서린 지옥도이다. 낭만극(가상)의 막을 제치면 비극(현실)이 폭로된다. 소년이여, 변치 않는 ‘고향’, ‘순수’란 없다.

 이런 우격다짐식 ‘허구’에 근대 일본의 대중심리가 깃들어 있다. 욱일기를 앞세워 동학농민군을 도륙했고, 청일 ·러일전쟁, 진주만까지 연전연승을 이어갔다. 제국의 의식은 욱일승천했고 ‘탈아입구’의 꿈은 이루어진다! 앞서 맛본 서양흑선(黑船)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도 남았다 싶었는데, 곧 원자폭탄의 공포, 패전의 열등감이 고개 내밀었다. 일제 패망은 조선 해방이었다. 우열(優劣)의 분열감은 ‘소년’/‘과거’로의 퇴행을 촉발했고 ‘현실’ 속 불발된 ‘종국승리의 판타지’에 몰두한다. 그래서 ‘무한열차’편 흑색철마는 혈귀와 합체하고, ‘탄지로’의 작은 귀걸이는 불안하게 요동친다.


<귀칼> 세계와 이념의 시사점

 ‘귀살대’와 유사세계관을 공유할 집단을 대라면, 검찰이 떠오른다. 임무 속성상 선/악 도식으로 추동할 측면이 있을 터이나, 적/동지 의식으로 특권화해, 법과 민주적 통제 밖에 머무르겠다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민주공화국에 왕(王)의 자리는 없다. 그런데 검찰총장 출신으로 권력 정점에 오른 윤석열 정부가 칼 슈미트의 적/동지 이분도식에 빠져드는 조짐을 보인다. 요직에 검찰 출신들을 포진시킨 뒤, 만만한 대상을 지목해 ‘가짜’, ‘위법’, ‘비정상’의 흑백논리를 덧씌우고 이를 해결할 ‘최종 결정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사회 분열과 역사 퇴행을 중단해야 한다.

 정치력을 발휘하여야 할 시대 과제는 차고 넘친다. 빈곤위기, 전쟁위기, 기후위기, 지방위기, 인구위기, 식량과 자원위기, 교육과 노동 위기의 극복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길을 제시해야 한다. 공적 신념으로 대의기관을 맡았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이분도식을 극복해야 한다.

 솔직히 아이에게 이 글을 내밀 자신이 없다. 유년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고 있을 그 ‘힘’을 이 세 치 혀로 해소시킬 자신이 없다. 다만, 현상의 겉을 훑는 실증주의의 눈을 극복하고, 이면의 복잡함과 다채로움, 그러나 중심(구조)을 직시하고, 진정 추구할 만한 것을 끝내 찾게 되기를 간절히 빌 뿐이다.
 

양동운 변호사
● 법무법인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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