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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양대로 살아가기의 힘

 내 법률사무소가 있는 공유오피스 입구에는 “Do What You Love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4년 전 이곳에 왔을 때 마음을 설레게 했던 말이다. 그 말처럼 살고 싶었다. 지금 나는 그렇게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개업변호사로 살아본 4년간의 소회를 선 · 후배, 동료변호사님들과 나눠보고 싶다.


사내변호사에서 개업변호사로

 2019. 5. 31. 정든 회사를 나왔다. 개업변호사가 되어 보기 위해서. 몸담았던 자리는 금융회사 사내변호사였다. 업무량, 연봉, 팀 동료, 근무지, 모두 나무랄 데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떠나기 아까운 자리였다. 사내변호사만 해본 내가 ‘이직’이 아니라 ‘개업’을 위해 퇴사한다니 의외라고들 했다. 나도 걱정이 많았다. 그럼에도 ‘지금이 실패해 보기 딱 좋은 나이’라는 주문을 되뇌며 퇴사를 감행했다. 나는 39살이었다.


어쩌면 팬데믹 덕분에 나답게 하고 있는 개업변호사  일

 초심자의 운이 따라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런데 몇 달 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세상을 덮쳤다. 코로나19라고 했다. 잠시 우왕좌왕하며 운을 탓할 뻔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활동 제약 안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정도의 업무량이 유지됐다. 어차피 이 시국에 적극적인 영업은 힘들다고 핑계 대며 매출에 욕심내지 않았다.

 덕분에 하고 싶은 방식으로 변호사 일을 해볼 수 있었다. ‘한 가지 사건 깊게 고민하기’와 ‘공들여 글쓰기’를 늘 하고 싶었는데, 내 소규모 사무실은 그렇게 운영하는 것이 가능했다. 사내변호사 시절 가장 아쉬웠던 것은 한 가지 일에 깊이 몰입해 볼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업가, 정치인, 교사, 작가, 임대인, 체육인, 중견 ·중소기업 임직원.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 평생 만나본 것보다 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단기간에 만났다. 단 한 명 예외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개별적이고 고유한 삶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만큼 개별적이고 고유한 문제들이 있었다. 사건 설명을 듣고 증거를 살펴보면서 나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보면 볼수록 사건 내용이 머릿속에 더 선명하게 그려졌다. 내가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건 생각으로 꽉 찬 머리로 서면을 썼다. 당연히 요건사실이 중요하지만 요건사실만 쓰지는 않았다. 왜, 그리고 언제, 어떻게 그 요건사실에 이른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세세하게, 읽기 좋게 포함했다. 서면의 독자가 그 사건과 당사자를 잘 아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소설의 독자가 주인공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듯, 판사, 검사, 경찰 수사관이 한 번쯤은 내 의뢰인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봐 주고 한 번이라도 더 고민해 주기를 바랐다. 먼저 개업한 동료변호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었는데, 나에게도 맞는 방식이었다. 

 의뢰인을 위한 공들인 글쓰기. 해야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어서 다행이었다. 정성을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있어서 일이 재미있어졌고,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의뢰인들도 고마워했다. 이야기하고 싶은 바가 모두 표현되었다고 느끼면 당사자가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수월해진다는 것을 배웠다.

 

개업변호사의 특권: 내 모양대로 살아가기 - 집밥과 피아노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전보다 깊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동시에 ‘나’라는 사람으로도 향했다. 변호사로서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면 편안하고 행복한지 잘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시ㆍ공간 제약이 거의 없는 소규모 법률사무소를 운영한 덕분에 가능했다. 그렇게 4년여가 흘러, ‘사람’으로서의 내 생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요리와 피아노이다. 그 얘기를 짧게 들려 드리고 싶다.

 개업 전까지 집에서 해먹은 요리는 기껏해야 데운 생두부였다. 그 이상의 요리는 힘들었다. 주말에는 외식만 했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지금은 가능한 끼니마다 따뜻한 집밥을 다양하게 지어 먹는다.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뿌듯해지는 이 활동을 멈출 수가 없다.

 요즘 피아노를 열심히 치고 있다. 나는 피아노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린이였는데, 지난 30년 동안 피아노를 잊고 살았다. 뭐가 그렇게 바빠서 그걸 잊었을까. 올해 초부터는 동네 피아노학원에도 다닌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곧 나의 핵심 정체성은 ‘피아노학원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30년 전 그때처럼 나는 피아노 칠 때가 가장 즐겁다.


Do What You Love

 개업변호사 일은 때로 괴롭고 슬프다. 밤, 낮, 주말, 평일 구분 없이 일해야 할 때도 많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내 모양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업변호사 일에서 가장 감사한 점은 내 모양대로 살아가는 힘으로 더 좋은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보살피면서 높아지는 행복감이 의뢰인들에 대한 진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좋아하는 일과 함께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성장하고 싶다.

손유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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