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인문학두드림
그대 기억 속에서의 머무름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죽는다.” (문학평론가 김현)

“그의 파악 불가능성, 도달 불가능성 그리고 오로지 한 번만 나타나는 일회성 등을 설명하기 위해 그의 음악이 천상에서 왔다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K.Pfeiffer, 『신적인 천재 모차르트』 중에서)


 늦가을이라 감상적인 글을 쓰게 된다. 오늘은 하늘에서 찬란히 빛나다 너무 일찍 스러진 별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 별들이 사라진 창공의 쓸쓸함을 절실히 느끼는 가을밤이다. 그들은 떠났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아직 죽지 않았다. 과연 그 별들은 누구인가. 


대체 불가능한 천재들

 필자는 평생 모차르트를 들었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인생이 좀 더 고달팠을 것이다. 남프랑스와 사하라사막 사이의 항로에서 야간비행을 하던 중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비행사 생텍쥐페리. 그도 모차르트를 매우 좋아했던 것 같다. 그의 명저 『인간의 대지』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상처도 추함도 아니다. 그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해당한 모차르트다.” 그가 갈망했던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 속에 흐르는 순수함, 단순함, 밝음, 어머니의 목소리를 닮은 따뜻함 같은 것이었을까. 가난에 시달리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숨을 거둔 모차르트처럼 스물아홉에 삼류극장의 객석에서 소주 한 병을 쥔 채 세상을 떠난 천재 시인 기형도. 그는 ‘엄마 걱정’이란 시에서 모차르트적인 단순한 운율을 보여준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엄마가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는다. 일부러 천천히 숙제를 하며 기다리다 지쳐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어린 시인이 간절히 기다리던 것은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타박타박’, 엄마가 걸어오는 소리다.

 필자는 젊은 시절부터 이런 천재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래서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로서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사랑은 달빛에 젖어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라디오에서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와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Anything that’s part of you)’을 처음 들었다. 당시 필자의 추측으론 배호와 차중락은 대략 40 ~ 50대 정도 초로(初老)의 아저씨로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고 사랑에도 상처를 입어서 깊은 회한과 슬픔에 젖어있는 것 같았다. 배호의 가슴 저미는 저음과 차중락의 심금을 울리는 따뜻한 음색은 1960 ~ 80년대 힘든 시절을 살아내던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이런 노래를 잘 모르실 젊은 독자들께는 미안한 마음이다). 배호는 29세에, 차중락은 26세에 세상을 떠났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40대에 요절한 비운의 여가수 등려군을 아시는가? 덩샤오핑이 집권했을 당시, 중국의 낮은 덩이 지배하고 밤은 등려군이 지배한다는 말이 돌았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간다는 표현을 실감할 정도인 등려군의 노래는 청아한 서정성으로 온 아시아를 매혹시켰다. 젊은 분 중에도 ‘첨밀밀’, ‘야래향’ 등의 곡을 들어본 이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특히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 흘러나올 때는 가슴이 무너진다. “나의 진실한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으니, 그대여 저 고운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는 것을 알아주세요.”라는 고백에 그 누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랴. 달 밝은 가을밤에는 이런 노래들이 필자와 같은 세대의 노장들을 눈물짓게 한다. 이런 천재 가수들은 노장들 가슴 속에 여전히 빛나는 별들로 살아 있다.


지지 않는 별. 그대


 예전에 필자가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는 어떤 모임에서 한 분이 잔을 들고 건배사를 하면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암송하였다. 그 후 그분을 달리 보게 되었다. 필자는 윤동주를 닮은 성직자 한 분을 평생 존경하며 살았다. 필자가 30대 초반의 판사로서 강원도의 법원으로 전근 갔을 때 그 지역 성당에 계시던 고(故) 이병돈 신부님은 마치 구멍가게 주인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이었다. 영월, 정선, 단양 등 산골 오지의 작은 성당만을 골라 다니며 화전민, 탄광 광부 등 가난한 신자들을 가족처럼 사랑하였다. 그분을 바라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봄비가 내리거나 낙엽이 지거나 눈이 쏟아지는 날들이면 어김없이 사제관으로 달려가서 홀로 계시던 신부님과 늦도록 인생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월이 흘러 필자가 서울법원에서 근무할 때 신부님이 강남의 큰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장암이었다. 의사가 수술을 하면 살 수 있다고 했는데, 병상에서 필자의 손을 잡은 신부님은 잔잔히 미소 지으며 “하늘에서 부르시니 이제 그만 가겠다.”고 하였다. 안된다고 울고불고 매달려도 그걸로 끝이었다. 당시 50세였던 신부님은 필자 가슴에 영원히 지지 않는 별이 되었다.


 11월은 만산홍엽(滿山紅葉)도 스러지고 빈 나뭇가지들만 찬바람 속에 흔들리는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계절이다. 일 년 중 가장 쓸쓸한 11월을 가톨릭에서는 위령성월 (慰靈聖月)로 기념한다. 세상 떠난 영혼들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이다. 이미 세상엔 없지만, 여전히 당신 마음속에 살아 있는 그리운 분들이 있다면 인생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당신도 훗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길이 기억될 수 있다면 삶은 결코 짧지 않다. 두 번 살 수 있는 것이다. 겸손한 맘으로 화두를 하나 던져본다. 나는 주변의 타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그들의 기억 속에서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황적화 변호사
● 법무법인 허브

황적화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