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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변호사의조언] 나승철 변호사 인터뷰
나승철 변호사 인터뷰

인터뷰/정리 : 김형준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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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전 서울변호사회회장이었던 나승철 변호사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나승철 변호사는 회장 임기를 마치고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의 집에 찾아가 서재에서 2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였는데, 2년 동안 여러 모습을 보여 줬던 서울지방변호사회와 앞으로의 변호사에 대하여 주로 질문하였다. 변호사란 좋은 직업 아닌가. 그 누구를 만나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임기가 끝났습니다. 회장의 지위에서 바라보셨을 때 현재 변호사 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근본적으로 ‘변호사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의 혼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변호사법은 변호사의 공공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변호사 업계의 현실은 빠르게 상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가 공공성을 지키려 해도 지킬 수 없고, 또 경쟁을 하려고 해도 여러 규제들 때문에 경쟁을 할 수가 없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부도 변호사 제도에 대한 철학이 없다 보니 변호사만 많이 뽑아 놓으면 법률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온다고 농사가 잘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비가 많이 와도 빗물을 이용할 수 있는 관개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농사가 잘 될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 상황은 변호사는 많은데 변호사를 활용할 수 있는 제도들의 도입은 상당히 미흡합니다. 한 가지 예로 ACP(Attorney-Client Privilege) 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ACP 제도는 의뢰인이 변호사와의 의사소통을 보호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지금은 의뢰인이 변호사와 의견을 교환한 자료가 법률적으로 보호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오히려 의뢰인의 약점이 노출될 우려가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러한 경우 의뢰인에게 비밀보호를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와의 의사소통이 철저하게 보호됩니다. 따라서 변호사와 상담하면 비밀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으므로, 국민들은 변호사를 더 많이 찾게 되고, 그만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더 잘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제도가 아직 도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프로야구 에이전트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메이저리그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는 아시다시피 변호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프로야구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2001년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KBO가 에이전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는데, 14년이 지난 아직도 KBO는 에이전트를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임기 동안에는 ACP와 관련한 연구도 진행하고 관계 기관에 필요성을 설명하며 도입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프로야구 에이전트와 관련하여서도 재차 공정거래위원회에 KBO를 신고했습니다. 당시 변호사들 직역확대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변호사들의 업무가 확대되어 우리 사회 곳곳에 변호사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결국 우리나라의 법치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변호사 시장에서의 정보비대칭 문제입니다. 현재 의뢰인들은 누가 좋은 변호사인지 알 수 없으며, 변호사들은 또 의뢰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법조 브로커가 발생하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브로커에 대한 단속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변호사단체가 변호사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잠재적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는 Legal Referral Service라고 하여 변호사단체 등에 의한 정보제공 서비스가 많이 발달했습니다. 저도 회장 재임시절에 미국의 Legal Referral Service를 참고하여 온라인 변호사 안내사업을 시행했는데, 앞으로 쓰임새가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서울회 회장 선거 출마 후 낙마한 다음 다시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 출마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그 때의 문제의식과 현재의 문제의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처음 출마 당시에는 청년 변호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청년 변호사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회무에 대해 전혀 몰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용감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그런데 낙선 후 회무에 대해 공부도 하고 변호사 업계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지금 청년 변호사들의 문제가 사실은 변호사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출마할 때에는 이제 청년 변호사만이 아닌 전체 변호사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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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로스쿨 졸업자에 대한 대립각을 세운다고 비판을 받은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지면을 빌어 그런 오해를 푼다면요. 

저는 로스쿨 졸업자에 대한 대립각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사법시험 폐지론자에 대하여 대립각을 세웠을 뿐입니다. 현재의 로스쿨은 너무나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등록금 문제는 상당히 심각합니다. 장학금을 주니까 괜찮다고 하지만 장학금을 확실히 줄 수 있을 것 같으면 애시당초 장학금만큼 등록금을 낮추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사법시험을 존치하면 오히려 로스쿨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근본적으로 고비용일 수밖에 없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저비용으로 운영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서민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놓고, 로스쿨은 ‘제값’을 받으면 서민의 법조계 진입도 보장되고, 로스쿨도 지금처럼 재정난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사법시험을 폐지하자는 사람들은 사시가 존치되면 로스쿨이 흔들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시존치 하나로 흔들릴 정도면 그런 부실한 로스쿨은 오히려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서울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2년 동안 하신 일 중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있어서 어떤 걸 꼽아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됩니다. 5층에 강의실을 만들었던 게 기억이 많이 납니다. 지하에 강의실이 있었지만 지하인 데다가 책상이 작아서 회원들이 많이 불편해했습니다. 그래서 마침 대한변협이 나간 자리에 고급스런 강의실을 만들려고 했는데, 반대가 좀 있었습니다. 5층을 변호사 사무실로 임대해서 수익을 올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변호사회관의 시설로는 늘어나는 회원 수와 교육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장기적으로 강의실을 외부에 대관하면 임대 수익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강의실 두 개를 만들었는데 현재 교육시설로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강의실 사정이 넉넉하게 되자 그 뒤로 회사법연수원, 공정거래법연수원, 노동법연수원 등을 개설할 수 있었고, 아침에는 영어와 중국어 강의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집무실에서 야근을 하다가 가끔 강의실에 올라가 보기도 했는데, 한번은 회원 한 분이 쉬는 시간에 책상 위에 편하게 엎드려 자는 것을 보고 마음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 회장님의 회무 참여 이후 회무가 젊어졌다는 평도 있습니다. 회무 참여를 잘 몰라 주저하는 후배 변호사들을 위해 도움이 될 조언 부탁드립니다. 

아마 회장이 젊어지다 보니 저를 아는 사람들이 회무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거나 혹은 저를 보고 자신감을 얻은 젊은 회원들이 용기를 내어 회무에 참여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사실 회무에 참여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바쁜 시간을 쪼개서 회무를 하는 것이 금전적으로는 더 손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회원들이 처음에 잠시 회무에 참여했다가 그 뒤로 더 이상 회무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회무를 하다 보면 일반적인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 볼 수가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회보에 글을 꾸준히 연재하여 나중에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내시는 분도 계셨고, 또 회무를 하는 과정에서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지금은 학교폭력 전문가로 인정받는 분도 계십니다. 다만 현재는 서울회의 재정적인 여건상 금전적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데, 앞으로 재정상황이 좋아지면 회무에 참여하는 회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의 공공성과 변호사의 사익추구는 늘 대립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 후배 변호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정확하게는 공공성과 상업성의 대립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변호사의 공공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 광고를 규제하는 일은 대표적으로 변호사의 공공성을 반영하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변호사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변호사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지고 그러다 보니 상업성이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미국 역시 변호사의 공공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1975년 Goldfarb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변호사의 상업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변호사의 품격을 저하시키지는 않는다’고 하여 변호사의 공공성과 상업성의 병존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미국 연방대법원은 1997년 Bates 판결에서 “변호사의 업무가 상거래보다 고차원적이라는 믿음은 시대착오적이고 위선적”이라고 하여 변호사의 상업성을 전면적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현재 변호사 서비스에 상업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변호사는 상법상 상인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미국으로 치자면 Goldfarb 사건 정도의 입장인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 시장은 독일보다는 미국과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변호사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명백합니다. 제가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상당수의 변호사가 자신을 ‘상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고 상인처럼 영업을 하는 것이 이미 현실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나라 대법원도 변호사의 상인성을 전면적으로 인정할 날이 오겠지요.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변호사의 공공성이 완전히 폐기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 변호사 시장은 변호사의 상업성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그래도 이혼사건이나 형사사건, 그리고 입법로비의 영역에서는 성공보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는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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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오히려 변호사 윤리가 더욱 강조 되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2년 동안 징계 사안도 보셨을 텐데 변호사 윤리가 자꾸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지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사뿐만이 아니라 언론, 금융에서도 직업윤리 교육이 경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윤리는 시험만으로 해결될 수 없고 반복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변호사 윤리에 대한 연구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과거에는 변호사 숫자가 적고 그래서 다들 알아서 윤리를 잘 지켜왔기 때문에 굳이 변호사 윤리를 연구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변호사 윤리에 대한 연구 및 교육이 발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가사, 형사, 입법로비의 경우 성공보수 수령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영역들에서 성공보수를 인정할 경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무런 예외 없이 성공보수 수령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나라 변호사 시장이 미국보다 더 상업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그만큼 변호사 윤리에 대한 고민이나 연구가 부족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변호사단체가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물의를 일으켰던 분들의 변호사 등록을 거부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기존에는 그런 일들이 거의 없다가 이제 자리를 잡혀 가는 것 같은데 변호사 등록 거부에 대한 철학은 무엇이었는지요. 

저는 물의를 일으킨 공직자들이 공직을 떠나 곧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판사나 검사를 하기에 부적절한 사람이 과연 변호사는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변호사가 비위공직자들의 인생 2막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회장이 되고 나서부터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회규에 있는 입회거부 규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물의를 일으킨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등록심사위원회에 회부하여 입회의 적절성 여부를 엄격히 심사했고,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신청 철회를 권고하였습니다. 간혹 권고를 거부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에 대해서는 회규에 따라 단호하게 입회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변호사의 공공성에 대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변호사 시장이 아무리 상업화되어도 변호사의 공공성이 완전히 폐기될 수는 없습니다. 저의 그러한 태도가 회원들로부터 박수를 많이 받았고, 또 언론에서도 서울지방변호사회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법령상 근거 없는 등록거부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서울회가 계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심사를 엄격히 하자 나중에는 오히려 변호사법이 개정되어 변호사 등록거부 사유가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변호사 업계도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과 대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만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변호사 숫자의 증가에 따라 변호사의 구성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는 변호사라고 하면 특정 고등학교, 특정 대학교 출신들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내 변호사와 송무 변호사, 청년 변호사와 원로 변호사,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와 변호사시험 출신 변호사, 대형로펌과 소형로펌 등등 업무, 출신, 규모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고 그러다 보니 갈등과 대립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는 것이 바로 변호사단체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러나 몇 년 후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나 대한변호사협회가 이해관계가 다른 모든 회원들을 대변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결국에는 임의단체로서의 다양한 변호사단체들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도 사내변호사회, 여성변호사회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후행 집행부와 회원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요? 

김한규 회장님이 정말 어려운 시기에 회무를 맡게 되어서 어깨가 많이 무거우실 것입니다. 취임 초기라 의욕이 많으실 텐데 먼저 회원들을 두루두루 많이 만나시길 권해 드립니다. 많은 회원들을 만나 보면 개선할 문제점들이 보이고, 또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또 회원 여러분들도 회장을 어려운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이메일이든 전화든 아니면 직접 면담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회장에게 적극적으로 건의하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우리 서울지방변호사회를 발전시키는 길이고, 결국 우리 회원 모두가 발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오며

인터뷰가 끝나고 식사와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대 가장 젊은 서울회 회장이자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 전 서울회 회장이기 전에, 변호사로서 여러 고민이 있는 나승철 변호사의 여러 모습들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면 할수록 즐겁고 재미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치고 힘든 사람이 있는데, 나승철 변호사는 전형적으로 전자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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