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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상담 기술

 

 법률지식이야 학교와 책에서 배웠지만, 실제로 변호사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기술들은 첫 사무실의 대표변호사님께 배웠다. 요건사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재판부를 잘 설득할 서면을 쓰는 방법, 변론기일에서 닥친 당황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판결이 나왔을 때 의뢰인에게 결과를 전달하는 방법 등등. 매뉴얼화하거나 교과서로 남겨두긴 어렵지만, 변호사 생활에서는 꼭 알아둬야 할 기술들이다. 도제식으로 배우지 못하면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답을 알았을 거다.

 의뢰인과 상담하는 기술도 그중 하나다. 대표변호사님은 유독 “그럴 수 있죠.”라는 말은 자주 하셨다. 의뢰인이 본인의 억울한 사정을 얘기하는 중간중간 “당연히 그럴 수 있죠.” “그럼요, 그럴 수 있죠” 하는 말이 추임새처럼 섞였다. 평소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분인데, ‘그럴 수 있죠’라고 말씀하실 때는 유독 힘이 들어갔다. 약한 경상도 억양이 섞여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당시의 어투가 생생할 정도다.

 전문자격증이 여러 개 있고, 판사 출신에, 다양한 경험을 하며 보낸 세월만큼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대표변호사님이, 항변하듯 ‘그럴 수 있죠’ 하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내겐 조금 새로웠다. 변호사님만의 영업 방식일까?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일까? 혼자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일하는 동안 느낀 변호사님은, 이제 막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내 의견도 귀담아들어 주시는 너무나 겸손한 분이셨고, 그런 변호사님의 성격을 알면서 ‘그럴 수 있죠’ 하는 답변에도 익숙해졌다.

 로펌을 떠나 사내변호사로 온 후에도 상담은 여전히 나의 업무 중 하나다. 그리고 상담 중에 무의식적으로 “그럴 수 있죠.” 하고 말하는 건, 첫 사무실에서 익힌 기술이자 이제는 나의 습관이기도 하다. 

 단순한 한 문장이지만, 듣는 사람이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면 나를 찾은 의뢰인의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혹시나 법무팀에서 딴지를 걸까봐(감사팀이 아닌데도) 닫혔던 마음이 조금 열리기도 한다. 그러면 의뢰인은 당시 상황과 관련해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꺼내기도 한다. 진실이 가진 힘은 대단해서, 진실한 사정은 어떤 방어논리보다도 설득력을 갖고, 결과적으로는 소송과 같은 절차에서 좋은 결과를 이끄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물론 상담을 하다 보면 아쉬운 부분은 언제나 있다. 변호사의 시각으로 보면 더 그렇다. ‘말 한마디만 더 했다면’,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다면’ 싶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의 영역은, 지금 나에게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로서, 업무를 하다가 분쟁 절차에 휘말린 사람에게, 할 수 있다면 조금의 위안을 주는 것.

 사실 소송으로 가게 되면 재판 절차만 해도 최소 6개월은 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느꼈던 긴장이나 두려움은 저절로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물론 소송의 부담이 전혀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처음만큼은 아닐 거다). 살면서 별로 접해보지 않았을 낯선 상황에 지금 당장 겁부터 나는 것일 텐데, 할 수 있다면 그 낯섦에서 오는 긴장을 빨리 누그러뜨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화 중간중간 “그럴 수 있죠!” 하고 힘주어 말한다.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은, 나도 지금 그 상황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혼자만 겪게 된 낯선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 마음이 좀 풀리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만약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것이고, 그 책임 여부를 결정하는 건 판사와 검사의 역할이다.

 아무리 상담기술을 동원해 보려고 애써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물론 있다.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땐 내가 지금 아는 한도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려고 한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에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몰라’하는 마음이 들어설 여유 공간을 남겨두는 것. 사실 이건 요즘 나의 과제다!

한수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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