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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래치의 윤리학

 우리는 우리의 법이 명할 때 춤을 추고, 우리가 잔치를 원할 때 잔치를 열 것이다. 우리가 백인에게 “인디언들이 하는 대로 하라”라고 하는가? 아니,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당신은 “백인들이 하는 대로 하라”라고 하는 건가? 준엄한 법은 우리에게 춤을 출 것을 명한다. 준엄한 법은 우리에게 우리들의 재산을 친구들과 이웃들과 나누라고 명한다. 이는 좋은 법이다. 백인은 자신들의 법을 따르라, 우리는 우리의 법을 따를 테니.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춤출 것을 금지하러 왔다면, 당장 꺼져라. 그게 아니라면, 당신을 환영한다.

 - 프란츠 보아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인디언들(The Indians of British Columbia, Journal of the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of New York, Vol. 28, No. 3, 1896)』, 중에서

 

 북미 태평양 지역(오늘날 미국 워싱턴주 및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원주민들은 신생아의 출생, 성년식, 결혼, 장례 등 중요한 관혼상제나, 부족 내 혹은 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여야 하는 경우, 포틀래치(potlatch)라 불리는 큰 잔치를 열었다. 콰키우틀족, 하이다족, 틀링깃족, 누트카족 등 다양한 부족은 각자의 전통과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포틀래치를 열었지만, 일반적으로 포틀래치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잔치를 주최하는 사람들은 주로 부족의 추장처럼 부족을 대표할 권위가 있는 자들(주로 귀족들)이며, 축제는 부족 대대로 내려오는 큰 집에서 진행된다. 잔치에는 항상 춤과 노래, 맛있는 음식들, 부족의 전통을 계승하는 구전 설화들이 빠질 수 없다. 그리고 모든 포틀래치에는 필수적인 절차가 있는데, 바로 포틀래치의 주최자가 포틀래치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것이다.

 전통 방식으로 짠 화려한 무늬의 이불, 모피, 구리로 만든 장식, 유럽인들로부터 산 머스킷총, 의류, 삼나무를 깎아서 만든 아름다운 함(函), 신선한 생선, 기름, 카누, 그리고 심지어는 노예들까지 선물의 대상이었다. 포틀래치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값비싼 선물들을 주최자가 참석한 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모두 나눠주는 것이다. 심지어, 선물을 다 주고도 남으면 남은 선물들을 참석자들이 보는 앞에서 모닥불에 불태워 버렸다. 이 과정에서 포틀래치의 주최자는 물질적으로는 빈털터리가 된다.

 얼핏 보면 포틀래치는 주최하는 사람이 손해 보는 장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최자가 잃은 것만은 아니다. 첫째로, 포틀래치의 주최자는 과시적인 소비를 통해 명예와 위신을 얻는다. 주최자는 자신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지 않고 물질적 부를 모조리 나눠주거나 심지어 파괴할 정도의 대인배라는 점을 보여주어, 참석자들의 경외심과 존경심을 사는 것이다. 둘째로, 부족의 문화적 전통은 포틀래치 과정에서의 춤과 노래, 그리고 각종 문화적 활동을 통하여 지속되고 강화된다. 포틀래치의 주최자는 통상 가문 대대로 내려온 가면과 의상을 입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조상들의 전통과 하나가 되고, 동시에 자신이 조상으로부터 부족을 통치할 권리를 계승했음을 보여주어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셋째로, 포틀래치를 통해 부족 간의 갈등과 긴장이 완화된다. 선물을 나눠줌으로써 다양한 부족들 간의 갈등은 자연스럽게 완화되며, 동시에 포틀래치 과정에서 부족의 지도자들은 협의를 통해 각자의 사냥 및 어획, 채집 구역을 정한다. 이 과정에서 부족들은 상호 간 동맹관계를 맺기도 하는 등, 외교적인 행사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포틀래치는 부의 재분배 기능을 수행한다. 포틀래치는 특정인에게 부가 편중되는 것을 막아 부족 내 긴장을 완화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부족원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포틀래치는 부의 축적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시각에서는 자해에 가까운 행위지만, 원주민들의 시각에서는 부를 포기하는 대신 명예와 위신을 얻는 전략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19세기부터 브리티시컬럼비아를 통치하기 시작한 영국인들은, 포틀래치의 순기능을 이해하지 못했고 포틀래치를 의심 어린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개신교를 믿는 백인들이 보기에, 원주민들은 뼈 빠지게 일을 해서 축적한 자본과 자산을 축제라는 이름으로 날려버리는 한심한 짓을 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의 삶을 관찰한 관료들과 선교사들은 포틀래치가 비생산적인 낭비 행위라는 인상을 뿌리치지 못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및 알래스카에서 침샨(Tsimshian)족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하던 성공회 선교사 윌리엄 던컨은, 1875년 포틀래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서술을 남겼다. “포틀래치는 인디언들이 기독교인, 심지어 문명화된 사람이 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원주민들의 전통에 대한 인종차별적 시각은 기존에 ‘영국령 북아메리카(British North America)’라고 불렸던 식민지가 1867년 7월 1일부터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으로 식민지에서 주권 국가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더욱 심해졌다. 캐나다의 초대 총리였던 존 A. 맥도널드는 포틀래치를 비합리적인 관습이라고 보았으며, 빈곤한 상태에 있었던 원주민들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전통문화를 모두 억압하고 원주민들을 백인들의 문화에 동화시켜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캐나다를 통치하는 백인 정치인들은 포틀래치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1884년 4월 19일에 개정된 인디언법(Indian Act) 제149조는 포틀래치에 관여하는 인디언들에게 2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문화적 전통마저 부정당한 원주민들은 포틀래치 금지령에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원주민들은 법을 무시하고 대놓고 포틀래치를 즐기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원주민들은 경찰이나 관료들의 감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지까지 이동하여 몰래 포틀래치를 열었다. 캐나다 관료들은 포틀래치를 급습하여 참여자들을 체포하고 포틀래치에 이용된 선물들과 가면과 의상을 압수하는 등 원주민의 관습을 짓밟기 위해 노력했지만, 포틀래치 단속에 투입된 인원의 수는 적은 반면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영토는 너무나 넓었다. 결국 형법을 동원하여도 국가는 포틀래치라는 전통을 뿌리 뽑지 못했다.

 포틀래치 금지령이 해제된 것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51년이었다. 이때부터 캐나다 원주민들은 체포나 처벌의 두려움 없이 전통에 따라 흥겹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에게 선물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원주민 청년들은 부족의 전통을 이어받고, 원주민 사회는 자신들의 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50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되자, 누트카족 원주민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모여 서로에게 인사말을 나누고 온라인으로 포틀래치를 연 뒤, 선물을 각 부족원들에게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한 부족 가문이 포틀래치를 한 번 주최하는 데 드는 비용은 통상 3만 달러 이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원주민들에게는 절대로 적은 비용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는 대신, 명예와 타자와의 관계를 얻는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빈털터리가 되는 캐나다의 원주민들을 이상하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어쩌면 원주민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관계의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불쌍히 여길지도 모르겠다.
 

윤태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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