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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그리는 눈, 기자는 법정에서 무엇을 볼까

 법정은 통상 실시간 중계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누군가에겐 ‘운명의 날’로 이름 붙여지는 중요 재판일지라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사건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십여 명 안팎, 많아 봐야 몇십 명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방청석에 앉은 이들 대부분이 기자인 경우도 상당합니다. 요즘은 실시간 방송이 많이 발달해 있어 언론을 통하지 않고도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법정만큼은 영상물 녹화와 녹음이 허용되지 않기에 재판 대부분 상황이 취재기자들의 눈을 통해 그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재판에 들어가 내용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 무척이나 긴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날이 결심이나 선고 기일인 경우엔 더 그렇죠. 중요한 내용을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와 함께 어떻게 하면 법정의 공기를, 재판의 풍경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법원에 민사사건이 많은 것과 달리 기자들은 형사사건을 주로 챙기다 보니 재판에 들어가면 분위기를 가장 생생히 드러내 주는 피고인의 표정을 살핍니다. 피고인이 어떤 표정과 손짓을 하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지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지를 보면 피고인이 어떤 마음으로 재판에 임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재판을 직접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가급적 피고인의 표정이나 행동을 묘사하는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느 문장보다 현장의 분위기를 가장 잘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려진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은 법원을 들어올 때 표정과 법정 안에서 짓는 표정이 다른 경우도 상당합니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외부 시선을 의식해 밖에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법정 안으로 들어오면 팔짱을 끼며 초조한 표정을 짓거나 턱을 괴며 한숨을 쉬고, 연신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는 모습도 종종 보이곤 합니다. 혐의나 쟁점이 여러 개인 사건의 경우 특정 부분이 나왔을 때 열심히 메모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통해 피고인이 어느 쟁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하고 싶은지도 유추할 수 있게 됩니다. 또 법정에서 피고인과 증인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뉴스가 되는 상황도 있는데, 그럴 땐 증인의 말과 태도도 중요하지만 때론 증인을 보는 피고인의 표정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아무런 말이 오가지 않더라도, 증인을 바라보는 피고인의 표정만큼 둘 사이의 관계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건 없으니까요. 때로는 구속된 피고인이 또 다른 피고인에게, 혹은 방청석에 앉은 인물에게 손짓을 하거나 목례를 하기도 합니다. 찰나에 지나가는 순간이지만 피고인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거슬러 찾아보면 두 사람의 관계, 그 행동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강력사건이나 사회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사건에서 피고인들 표정과 반응도 제각각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체념한 듯한 피고인도 있지만, 모든 게 귀찮다는 듯 짜증 난 표정의 피고인, 신기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피고인도 있습니다. 선고가 내려지면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듣는 이들도 있지만, 소위 ‘멘탈’이 무너져 좌절하는 피고인도 있었습니다. 주문이 끝나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움직임은 없지만 귀가 빨개지거나 고개에 조금씩 떨림이 보인다면 피고인이 어떤 심리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법정구속일 때 감정 변화가 여실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고인의 태도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재판은 최근 무기징역이 확정된 ‘신당역 살인 사건’의 피고인 전주환이었습니다. 항소심에서 전주환은 검찰의 공소 요지에도, 변호인의 변론에도, 범행 관련 CCTV가 재생될 때도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고 표정 없이 정면만을 응시했습니다. 보통 피고인은 관련 증거가 제시되는 순간만은 화면을 쳐다보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기 어렵더라도 적어도 어떤 감정으로 재판에 임하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은 조금 특별합니다.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하기 때문입니다. 외부와 시공간이 단절돼 바깥 변화를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이 순간 법정 안의 공기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말입니다. 그 안에서 피고인뿐 아니라 재판부의 의구심 섞인 목소리, 검사와 변호인의 논박, 피해자나 유족의 표정, 방청석의 온도까지 접하면 사건은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무언가로 바뀌게 됩니다. 그때부터 법정의 분위기를 전해야 하는 취재기자의 눈과 귀는 분주해집니다. 열 마디 수식어보다 때론 단 한 문장의 묘사가 더 많은 것을 전달해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실시간 중계 재판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되는 주제이고, 해외에선 허용하는 사례 역시 존재합니다. 물론 중계 재판의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있는 만큼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친다면, 가까운 시일에는 법정에 직접 오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재판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미래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최민기 Y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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