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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 견디고 있나요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사실 나이 마흔에는 뭐가 좀 다를 줄 알았다. 불혹(不惑)은 아니더라도 유혹에 조금은 초연하고 나름 열심히 사는 만큼 조금은 행복에 더 가까운 사람일 거라고. 그러나, 지금 누가 나에게 “당신은 행복한가요”라고 물으면 행복은 준비된 운 좋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 같아 대답을 주저하게 된다. 과연 나에게도 행복은 허락되는 것일까. 나보다 훨씬 부자인 유명한 사람들도 다들 힘들다고 외치는데 감히 그래도 되는 것일지 조금은 조심스럽다. 이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저자는 ‘인생은 고통’이라고 보았던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사유를 빌어 현대인의 마음의 위기를 다스릴 수 있는 몇 가지 지혜들을 풀어 놓는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이 결핍에서 충족으로 넘어가는 지극히 ‘짧은 순간’이라고 봤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여러 가지 결핍 때문인데 그 결핍이 충족되면 행복감으로 넘어갈 수 있으나 지속도가 너무 짧고 결국엔 또 다른 결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생은 끝없는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 순례자의 길처럼 보인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은 꿈이지만 고통은 현실이기에, 열 가지의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한 가지의 고통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 행복한지 평가하는 기준은 성공, 부, 성취, 출세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겪는 고통의 정도이므로 쾌락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줄여나가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SNS에서 내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보여주기 경쟁에 몰입하는 우리는 그러나 갈수록 행복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것만 같다. 인생의 무게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바깥’에 있기 때문에 나에게 아무리 소중한 일이나 추억도 친구들의 공감이나 ‘좋아요’를 얻지 못하면 금방 빛이 바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애초에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한 최종 판단조차도 스스로 내릴 수 없게 된 이상 끝없이 업로드되는 행복 경쟁에서 고통은 늘어만 가고 우리가 이길 방법은 없어 보인다.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자신 안에 두어 예술, 문학, 철학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만들어 스스로 사색하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의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우리는 각자의 행복을 전시하며 더 쉽고 빠르게 불행해지는 선택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사형 집행의 순간에도 참관인들에게 멋지게 자신의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한 사형수의 이야기는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걱정에 갈수록 내 진짜 모습보다는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죽는 순간에도 나 자신에게 솔직하기보다는 고통스럽더라도 의연한 사형수가 되어 SNS에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이 우리가 새롭게 찾은 행복이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이다. 정말로 늘 고통과 권태의 양극단의 불행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우리에게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고통을 잘 견딘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스러워 불행하지만, 욕망이 짧은 순간 충족되어도 곧 찾아오는 권태로 인해 불행하게 된다.

 여기에 쇼펜하우어의 잠시나마 삶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몇 가지 실천적인 방법론은 일견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파격적인 내용의 자기계발서를 보는 재미가 있어 몇 가지 살펴볼 만하다. 그는 연애 결혼보다 중매 결혼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연애 결혼을 한 사람은 동물적인 매력에 끌린 후 출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 모든 환상이 깨지고 열정이 바로 사라지지만, 조건을 맞춘 결혼은 현실적이기 때문에 환상이 덜하고 고통이 적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종족 보존에 대한 욕망인 ‘성욕’이 허망한 것임을 깨닫고, 행복의 필수 조건인 ‘교양’을 쌓기 위해 양서를 읽고 사유하는 힘을 길러내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관점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인 ‘고독’을 견디는 법을 배울 때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넘어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타인의 기대와 욕망에 맞춰 사는 법이 아니라 남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말고 개성이 뚜렷한 내 삶의 가치를 긍정할 때에 서야 우리는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말도 담아둘 만한 말이다.

 물론, 나도 쇼펜하우어의 말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부르주아의 자식으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평생 돈 걱정 없이 독신으로 살면서 철학과 저술 활동에 몰두했던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개인의 우울함을 반영한 특성도 있고 어떤 부분은 소극적이며 자신의 생애에 대한 길고 자세한 변명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의 분기점에서 삶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철학자의 고민은 분명 지금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주는 부분이 있다. 나의 일상이 행복의 순간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아도 사실 괜찮다는 것. 행복하기 위해선 먼저 홀로서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들이다.

김승현 변호사
● 법무법인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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