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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마다 찾아오는 차이코프스키의 미스테리: 누가 그를 죽였나

 12월 크리스마스트리에 꼬마전구가 반짝거리기 시작하면, 많은 공연장에 걸리는 현수막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이다. 차이코프스키의 화려하고 격정적인 곡들의 멜로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을 테지만, 그의 죽음에 숨겨진 석연치 않은 미스테리를 아는 사람들은 적다. 

 차이코프스키는 생전에 이미 크게 성공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음악가로, 러시아 황제로부터 연금까지 받고 있었다. 하지만 명성이 높아가고 사회적인 지위가 그를 에워쌀수록 그를 늘 괴롭게 하였던 것은 그의 성정체성이었다.

 19세기 러시아는 성정체성의 다양성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하였고, 심지어 1832년에는 ‘계간(鷄姦·남성들 간의 성행위)을 하는 자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며 4 ~ 5년 동안 시베리아 유형에 처한다’는 형사법 개정까지 하며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1840년에 출생한 차이코프스키는 이미 동성애자를 차별을 넘어 처벌하는 문화 속에서 태어나 평생을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살아가야했던 비운의 성소수자였다. 

 차이코프스키는 ‘공식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식당에서 물을 잘못 마신 탓에 콜레라에 걸려 사망하였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실상 그가 사망하였을 당시부터 그의 죽음에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최근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은 단순한 병사가 아니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주장으로 정설이 되어가는 추세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사망하던 1893년경 그는 러시아의 투르모프 공작의 조카와 비밀리에 동성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공작은 둘의 연애를 알아챘고 격분하여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조카를 유혹하여 타락시켰다고 검찰에 고발하였다. 당시 고발장을 수령한 부검찰총장 야코비는 차이코프스키가 음악가의 길을 걷기 전 법률학교를 다니던 시절 동급생이었는데, 야코비는 친구의 명예를 지켜주고자 이를 황제에게 제출하지 아니하고 차이코프스키에게 이러한 고발이 접수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여기에서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비소를 마시고 자살했다는 설과 이후 대중에게는 비밀로 명예재판이 열려 차이코프스키는 자살하라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에 따라 반강제로 비소를 마시고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설이 대립한다.

 차이코프스키가 콜레라에 걸려 병사한 것이 아니라, 비소를 마시고 자살 또는 타살이나 다름없는 자살을 선택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근거 중 첫 번째는 콜레라의 증상과 비소중독에 의한 증상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쌀뜨물 같은 설사를 하는 등 콜레라의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급성비소중독의 증상 역시 이와 동일하며 그 외의 황달, 기력부족 및 각종 증상 역시 매우 유사하다.

 두 번째로 당시 러시아는 콜레라로 인하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기에, 콜레라로 사망한 환자의 시신은 관을 밀봉하여 바로 매장하고 조문객도 받지 못하게 하는 전염병 관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사망하기 전 친구와 친지들의 문병을 받았고, 사망한 후에는 밀봉되지 않은 관에 넣은 채 이틀이나 공개되어 주변인들이 시신에 입을 맞추는 등 작별인사를 하였음은 물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수천 명(실제로는 6만 명이 몰렸으나 이 중 일부만이 조문이 허락되었다)의 조문객이 그의 시신을 마주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지인들이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이 콜레라라는 공식발표에 대하여 조소를 숨기지 아니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세 번째로 차이코프스키가 사망하기 9일 전 초연된 비창(교향곡 6번)은 B단조(B-minor)로 작곡가들이 종말 또는 죽음을 의미하는 곡을 작곡할 때 많이 사용하던 조성이었다는 점 역시, 이미 차이코프스키가 비창을 작곡하고 초연하던 당시 이미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였던 것이라는 해석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많은 이들을 공연장에서 달콤하고 찬란한 연주와 춤 속에 달디단 꿈을 꾸게 만들어 준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은 성소수자가 마주하여야 했던 차별과 멸시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범죄화하는 법률에 갇혀 비탄,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 속이었음은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올해에도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이 넘쳐나는 공연장들을 바라보며, 현재 우리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내려놓기 위하여 얼마나 더 많은 걸음을 걸어 나가야 또 다른 차이코프스키를 만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박선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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