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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소외

 하품을 억누르고, 샤워하면서 미처 떼지 못한 눈곱 낀 눈을 부빈다. 사원증을 찍고 회사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한다. 왜 숨만 쉬어도 돈이 들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일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걸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사무실에 들어서자 대걸레와 락스, 청소도구를 끌고 가는 미화원과 눈이 마주친다. 나는 그분을 향해 인사하고, 그분도 나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다. 이 나라 대부분의 청소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내 어머니 나이 또래인 그분은 회사의 하청의 하청을 받은 업체에 고용되어 고된 미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사회에 얼마나 필수적인 존재인지는 대학원생 때 경험했다. 당시 대학 곳곳을 묵묵히, 성실히 청소하던 청소노동자들은 열악한 대우와 낮은 급여를 견디지 못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머지않아 도서관과 강의실은 쓰레기와 먼지로 가득했고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 큰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불편을 겪으면서도 대부분의 학생은 파업을 하게 된 청소노동자들의 처지에 공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학교, 용역업체 그리고 청소노동자들은 처우개선에 대해 합의했고, 다시 교정은 깨끗해졌다.

 자리로 들어가서 노트북을 켠다. 스팸메일, 홍보메일, 계약서 검토를 독촉하는 메일들, 로펌 비용 업데이트를 요청하는 메일. 계약서 검토를 독촉하는 메일을 하나 열었다. 영업팀에서 성실하게 근무하는, 젊은 나이에 명민하고 의욕 충만하지만 깐깐하게 협상하는 고객사들 때문에 자주 골머리를 앓는 사원이 보낸 메일이다. 책임님, 고객사가 수정본을 보내왔습니다.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은 음영처리해 왔어요. 격무 중에 죄송하지만 내일까지는 회신 부탁드려요. 메일에서 다급함, 스트레스 그리고 전자담배 향기가 묻어난다. 첨부된 계약서 파일을 읽어보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지난 몇 달간 협상을 하면서 합의가 됐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다 지워지거나 수정되어 돌아왔다. 그동안의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된 걸까? 이걸 대체 어떻게 보고하지?계약서를 차근차근 수정하다가 갑자기 허탈해졌다. 같은 계약서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것이 어릴 적 내가 생각했던 꿈이었나?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사는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청소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사회에 분명히 드러낸다. 미화원들이 어느 날 파업을 하면, 회사 사무실은 대학교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개판이 될 것이다. 반면, 사무직 노동자는 계속 엑셀파일을 수정하고, 계약서를 고치고, 메일을 쓰고, PPT 보고서를 작성하면서도 자기 노동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 가슴 속 깊은 허무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런던정치경제대학교의 문화인류학 교수였던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2018년 저서 『불쉿 잡 : 어떤 이론(Bullshit Jobs : A Theory)』에서 ‘불쉿 잡’을 “유급 고용직으로 그 업무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로 정의했다. 그레이버의 분석에 의하면 1970년대 금융자본주의의 발전 이후 이런 무의미한 직업은 급격히 증가해서, 실질적인 가치 생산에 기여하는 생산직 근로자보다 이들을 관리하는 사무직 근로자 및 관리직의 수가 더욱 많아졌다. 그레이버가 보기에 선진국의 경제는 사람으로 비유하면 팔과 다리는 그대로인데 머리만 훨씬 커지는 기형적 형태가 된 것이다.

 그레이버는 ‘불쉿 잡’을 총 5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상사나 관리자를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복 입은 하인(리셉셔니스트, 사무보조, 도어맨)’, 타인을 공격하거나 소비자들을 기만하며 누군가가 고용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깡패(영광스럽게도 그는 로비스트, 홍보전문가, 텔레마케터와 더불어 사내변호사를 이 범주에 포함시켰다)’, 영구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때우는 업무만 하는 ‘임시 땜질꾼(소프트웨어 코드를 수정하는 프로그래머, 수화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고객에게 사과하고 안심시키는 항공사 직원)’, 겉으로 보이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실제 목표를 이루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서류를 양산하는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여론조사 전문가, 사보(私報) 작성 직원)’, 이런 불쉿 업무를 만들어 배분하는 중간 관리자 ‘작업반장’ 등이다.

 그레이버와 달리, 나는 사내변호사가 반드시 무의미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불쉿 잡’을 고려함에 있어서 그레이버가 해당 직업군의 경제적 가치보다는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의 주관적 진술에 더 많이 의존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그레이버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문화인류학자였다).

 변호사는 법률가가 검토하지 않은 계약서를 체결하는 경우의 위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변호사는 “...하여야 한다(shall)”와 “...할 수 있다(may)”, “합리적인 노력(reasonable efforts)”과 “최선의 노력(best efforts)” 같은 사소한 단어의 차이가 권리와 의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이 계약서도, 얼핏 보기에는 사소하고 작은 문구지만 당사자들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문구들 때문에 계속 협상이 지연되는 것이다. 또한 변호사는 기업이 영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법률자문을 받지 못하는 경우, 기업 자체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얼마나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수행하면서 깊은 허탈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노동은 나와 무관하고, 노동의 과실 또한 나와 무관하고, 노동을 통해 주변 세상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으며, 나는 회사의 프린터나 책상과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즉, 나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겪고 있는 것일까?

 잡생각 때문에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잠시 라운지에 커피를 마시러 간다. 쓰디쓴 커피가 입 안을 적신다. 카페인이 아직 덜 깬 뇌를 자극한 건지, 나는 이번 달 말까지 내야 할 공과금과 다음 달에 내야 할 신용카드 대금이 있음을 기억한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노트북을 연다. 한숨을 쉬고, 천장을 한번 본 뒤, 메일을 쓴다. 메일 잘 받았습니다. 사원님. 이 계약서는 요청하신 때까지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수고하세요.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건 의미 있는 일이야. 덕분에 굶어 죽지 않고 잘 살잖아. 정신 차려 임마. 빨간 수정선이 곳곳에 죽죽 그어진 계약서가 모니터 화면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태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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