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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조와 품위를 갖춘 화해


 시비를 가리는 일만 있을 것 같은 법정에서도 품위를 갖춘 아름다운 분쟁 해결이 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다수 법조인들은 민사소송에서의 조정절차를 좋은 예시로 꼽습니다. 조정이란 법정에서 재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 중 하나입니다. 중립적 입장을 지키는 제3자(조정인)가 당사자 동의를 얻어 협상을 도와주는 절차죠. 당사자들이 분쟁 종결 여부를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판과 가장 큰 차이를 갖습니다.

 특히 장기간 시간이 소요되는 재판과 달리 조정을 통할 경우 신속한 분쟁 해결이 가능합니다. 인지대나 송달료 등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도 절감된다는 점에서 장점도 큽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 마주하는 조정절차는 순조롭지만은 않습니다. 법정에 서기 이전부터 지난한 분쟁을 거쳐온 당사자들이 조정안에 되레 반발하는 모습 역시 심심찮게 목격합니다. 

 대중에게 익숙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최근 물의를 빚은 권경애 변호사 사건이 있습니다. 

 자신이 맡은 ‘학교폭력 피해자’ 사건에서 무려 세 차례나 재판에 불출석해 원고 패소라는 결과를 낸 권 변호사에 대해 피해자 유족 측이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요. 법원은 이를 강제조정에 부쳤습니다.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원고 측에게 권 변호사가 5,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통해 화해를 시도한 것이죠.

 유족 측으로서는 권 변호사의 진심 어린 사죄를 촉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송을 택했을 텐데, 법원의 조정에도 권 변호사는 기일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결국 조정은 무산됐습니다. 강제조정은 당사자 간 어느 한쪽이라도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정식 절차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죠. 

 대선을 뒤흔든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통화녹음 사건도 조정을 시도한 사례입니다. 김 여사가 자신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한 인터넷 언론 관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항소심 재판부는 조정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무산됐습니다.

 올해 2월 1심은 김 여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울의소리 대표 등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는데, 2심 재판부는 강제조정을 통해 화해를 시도했지만, 양측 모두 거부해 다시 재판으로 회부됐죠.

 세기의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부동산 인도 청구 소송도 조정절차를 거쳤습니다. 

 이 소송은 최 회장 측이 계약 종료를 이유로 SK그룹 본사에 위치한 아트센터 퇴거를 요청하며 시작됐는데, 노 관장 측에서는 “이혼한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퇴거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죠. 

 이 사건 심리를 맡은 재판부는 양측의 화해를 시도했지만,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이달 22일 한 차례 더 조정기일을 열기로 한 상황입니다.

 이처럼 법정에서 재판부가 조정안을 꺼내 드는 광경은 낯설지 않지만, 실제 화해에 이르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상 속 조정제도의 효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오랜 앙금 끝에 마주한 당사자들이 법원 조정을 통해 원만한 합의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3년간 1억 원 상당의 임금을 받지 못해 회사 사장을 고소한 A씨는 법원 조정절차를 거치며 임금 일부를 단기에 지급받고 지금도 지속해서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나눠 받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창업 초기 회사 원년멤버로 일했던 A씨에게 임금이 지급되지 못한 것은 회사의 경영난 때문이었죠. A씨의 신고로 형사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였던 회사 대표는 재판부에 체불 사실을 인정하고 조정을 통한 해결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이후 서울법원조정센터는 조정회부를 결정했고 두 사람은 소장이 접수된 지 6개월 만에 조정실에서 마주하게 됐습니다. 

 재판부가 내민 해결방안은 현실적이었죠. 사업실패로 당장 1억 원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B씨의 사정을 감안한 재판부는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1년 동안 나눠서 상환하도록 하고, 단 한 번이라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즉시 남은 전액에 대해 연 20%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재판부는 무턱대고 조정을 성립시키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돈을 받지 못한 A씨를 설득하기 위해 회사가 조정성립 한 달 내로 3,000만 원을 마련해올 경우 형사고소를 취하하자고 설득했죠. 결국 조정이 성사되어 B씨는 형사처벌을 면했고, A씨는 다달이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성공 사례도 있습니다. 

 경영난으로 월 300만 원 상당의 임대료를 3개월째 밀린 A사. 임대인으로부터 계약 해지 및 상가 인도 소송을 당하게 됐는데요. 회사가 소장 접수 후에도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하면서 5개월 후 열린 조정기일 당시에는 이 사건 임대차계약 보증금(3,000만 원)은 임대료 2달 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조정을 통해 묘안이 나왔죠. 당사자들은 합의 끝에 앞으로 두 달 안에 3달 치 임대료 900만 원을 지급할 경우 임대차 기간을 세 달간 연장하고, 상가인도 역시 그로부터 석 달 후에 진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단, 만약 두 달 내 임대료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을 경우 보증금이 소멸되는 시점에 상가를 인도하기로 했죠. 

 분쟁으로 시간을 끌게 될 경우 양측의 손해가 불가피했던 이 사건 역시 조정을 통해 당사자 모두 추가 손해를 막을 수 있게 된 좋은 사례로 꼽힙니다. 

 서울법원조정센터에 따르면 매년 조정에 회부된 사건 대비 조정이 성사되는 비율은 25.6% ~ 27.6%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조정이 진행되는 사건 4건 중 1건 이상은 조정 성립에 이르는 것인데요, 일견 수치 자체가 낮아 보일 수 있지만, 분명 누군가는 불필요한 분쟁이 아닌 화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정이 양보와 타협을 유도하는 최선의 분쟁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법정에서 상처뿐인 승리보다는 격조를 갖춘 화해가 늘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김진아 뉴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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