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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본인

 올해 초 내 삶에 ‘자식’이라는 존재가 생겼다. 생애 처음 만난 이 아이와 한없이 가까워지는 동안, 일과는 잠시 멀어져 있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지만, 2016년에 변호사가 된 후로 줄곧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가장 주되게 담당하는 것은 이주 인권 분야이다. 새삼스럽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동 인권 이슈는 얼마나 알고 있나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그간 직접 다룬 아동 사건이 적었으니 간단하게 “영 모르겠네” 하고 자답하려다가, 부끄러움이 확 몰려왔다. 돌이켜 보면, 적잖은 사건에 아동이 존재했는데 내가 그 사실을 간과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내 아이를 보며, 그간 지나왔던 수많은 사건 사이에 아이들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내 아이가 나와 눈 맞추며 미소 짓는 모습,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빼앵 울어버리는 모습, 곤하게 잠든 모습, 무언가에 골똘한 모습을 보다 보면, 혼돈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그 어린 모습들이 겹쳐 떠오를 때가 있다. 그걸 이제야 알아챈다. 

 몇 년 전에 다룬 사건 중, 부부가 서로의 흉을 보는 틈바구니에서 눈치가 너무 빨라져 버린 여섯 살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말도 잘했는데, 불안을 감추려던 것인지 일부러 더 밝고 명랑하게 행동했다. 이 아이와의 대화 도중 잊을 수 없는 단어가 나온 날이 있다. 이혼 사건의 변론기일이 있는 날이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아이가 법원에 함께 왔다. 재판 시작 전 판사님께서는 “사건본인은 좀 나가 있는 것이 좋겠는데...”라고 하셨고, 아이는 결국 복도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다. 재판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내게 “근데 있잖아요, 사끔몬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처음에 못 알아들어서 어리둥절했는데 맥락을 살펴보니 ‘사건본인’이었다. 재판 당사자가 아니지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어쩌고를 설명할 연령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엄마아빠의 딸이나 아들을 법원에서는 사건본인이라고 불러. 좀 이상한 말이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이가 해맑게 피식 웃으면서 “나 사끔몬 아닌데, 나 김OO인데, 히히”라고 말했다. 그때 뭔가 가슴에 찌릿함을 느꼈다. 

 이 일보다 훨씬 더 이전에 만났던 중학생 소녀도 있다. 가정폭력을 당한 엄마와 함께 상담을 받으러 왔었다. 엄마는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랐고, 아이는 부모의 언어를 모두 할 줄 알았다. 통역사를 구하지 못해 결국 아이가 엄마의 경험을 모두 통역했다. 한번은 엄마의 진술을 아이가 직접 종이에 옮겨 왔는데, 거기에 본인을 ‘사건본인’이라 지칭해 놓았다. 뭔가 그렇게 써야 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아이가 부모의 갈등과 엄마의 가정폭력 피해 경험을 제3자인 양 통역하는 상황이 부적절하지 않은가, 이대로 괜찮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제 와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때 그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소송이 마무리되었고, 그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기억들이 아이를 낳기 전에도 종종 떠오르곤 했다. 그땐 문득 찾아온 연민 같은 걸로 아이들의 존재를 금세 덮고 잊으려 했던 것 같다. “에휴, 애가 제일 안 됐지 뭐”와 같은 말로 말이다. 하지만 요즘 제일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다. 내가 아이들의 존재를 잊으려 했던 게 아니라, 소송 과정에서 아이들을 놓친 나 스스로를 감추려 했던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무심하게 지나치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시기를 겪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들이 정말 ‘사건의 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 아이를 낳고, 이 아이가 스스로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기대하면서야 비로소 나의 지난날을 반성한다.

 복직 후에도 여러 가지 사건사고를 접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속에 또다시 아이가 존재한다면, 이제는 어떠한 혼돈 속에서라도 아이는 아이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실, 어떤 상황이라도 아이에게 주어야 할 관심과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현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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