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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단계에서의 효율적인 변론

 1년 차 변호사로 형사재판에 참여했을 때 책상 위에 산처럼 수북하게 쌓인 사건 기록을 보면서 무한한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이후 변호사경력경채로 경찰에 입직하여 수사하면서 그 많은 기록 중 대다수가 경찰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찰이 만드는 사건 기록은 100% 핸드 · 풋메이드입니다. 피의자가 특정된 고소 사건도 있지만, 범인이 특정되지 않은 사건, 특히 발생 사건의 경우에는 범죄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현장 조사 또는 검증을 하고,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탐문 수사는 기본이며, 범죄 현장 주변 CCTV를 찾고 각기 다른 CCTV를 관리하는 기관들을 직접 찾아가 눈이 빠지도록 며칠 동안 CCTV관제센터 모니터를 보고 있어야 합니다. CCTV 화면 속 용의자의 모습을 발견하면 그 동선을 따라 계속해서 CCTV를 추적하며, 용의자가 이용한 교통정보와 카드내역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시작인 것입니다. 그렇게 피의자가 특정된 이후 피의자와 참고인을 조사하는 일과 필요한 정보 수집을 위해 각종 영장을 청구하고 집행하는 일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다소 아이러니한 것은 현장 수사에 소요되는 많은 시간들이 수사보고서에는 단 몇 글자와 짧은 문장으로, 많아 봐야 몇 페이지로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직접 수사하는 일들은 짧으면 2 ~ 3시간, 길게는 며칠씩 걸리는 일이지만, 그 긴 시간들이 수사기록에는 단 몇 줄의 문장으로 기록되곤 합니다. 수사를 하는 과정도 시간과의 싸움이지만, 수사를 마친 후 형사사법포털에서 그동안의 수사내용을 전부 출력하여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송곳으로 기록 하나하나 구멍을 뚫어 끈으로 기록을 묶고,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쪽 번호를 쓰는 일까지 모두 직접 손으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경찰 기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과 발로 만들어가는 순도 100%의 핸드 · 풋메이드 작품인 것입니다.

 지역마다, 경찰서마다 차이는 있지만 서울에 소재한 경찰서는 보통 한 명의 수사관이 적게는 30건에서 많게는 50 ~ 60건 이상의 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맡은 사건을 하나하나 수사해 가는 과정은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흔히 비판하는 경찰 수사가 ‘쳐내기 바쁜 수사’가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건 수사에 소요되는 많은 시간에 비해 수사관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경찰 채용시험에서는 2021년 간부후보생 채용시험을 끝으로 주관식 시험이 사라졌습니다. 대한민국 주관식 서술형 시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하여 시험을 치르고, 이후 직업적으로 판례를 만들고 찾아보는 것이 주 업무인 검사 · 판사들과 비교해보면, 경찰은 하는 업무 자체가 다르고, 조직 구성원도 다르고, 전문 업무 분야와 프로세스까지 모두 다릅니다. 이러한 양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법률전문가인 검사, 판사와 수사전문가인 경찰 수사관에게 제출하는 서면은 동일한 형식과 내용으로 작성되는 것 같습니다.

 검사, 판사에게는 익숙한 ‘빼곡하게 잘 작성된’ 변호인의 서면이 혹여 경찰 수사단계에서 수사관에게 관심 밖의 사안이 될 수 있다면 경찰 수사단계에 적합한(필요한?) 변론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고은영 변호사
● 법무법인(유)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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