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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 줌파 라히리

 처음으로 읽게 된 줌파 라히리의 책은 단편소설집 『축복받은 집』이었다. 평소 소설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줌파 라히리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입체적인 스토리텔링에 금세 빠져들었다. 특히, 책 속의 이야기들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외로움’의 정서가 좋았다. 쉽사리 사랑을 말하지 않는,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들이 와닿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그래서 타인을 필요로 하는데, 정작 타인의 외로움에는 무관심하다. 그래서 희망은 쉽사리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아주 작은 애정이라도 품을 수 있다면,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거기에서 희망은 자라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들의 또 다른 특징은 모든 이야기에 인도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인도 여인들의 전통 의상인 사리와 인도 요리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읽으며,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작가가 인도계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작가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 대한 글을 쓴 것일 뿐 ‘인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작가는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본인의 정체성에서 심리적 방황을 겪었고, 인도인의 외모를 한 그녀는 미국에서 자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인도’와 ‘미국’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글을 썼고, 작가가 되었다. 

 그러다 엉뚱하게도, 작가는 1994년 피렌체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제3의 언어인 ‘이탈리아어’에 스스로를 뿌리내린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마음산책, 2015)는 작가가 2015년에 발간한 이탈리아어로 써진 그녀의 수필집이며, 이탈리아어를 향한 그녀의 숙명과도 같은 사랑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사랑’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작가는 마침내 이탈리아어를 조우하게 된 심경을 기술하기 위해 ‘나는 베아트리체와 대화를 나누는 데 9년이나 걸렸던 단테를 생각했다(24p)’는 문장을 쓸 정도이다. 피렌체의 호텔 청소부가 건넨 인사말, 길에서 마주친 남자가 건넨 ‘실례해도 될까요?’라는 말을 들으며 작가는 이탈리아어에 대한 ‘무분별하고 말도 안 되는 열망(21p)’을 느낀다. 그렇게 작가는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이탈리아어를 익히면서 자신과 자신의 글, 그리고 언어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며 새로운 존재가 된다. 모국어인 영어를 두고 서툰 이탈리아어로 일기를 써 내려갈 때, 그녀는 본인의 ‘가장 순수하고 연약한 부분(53p)’을 알아챈다.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강렬한 자유를 느끼기도 한다. 작가는 ‘부서지기 쉬운 피난처에서 노숙자나 다름없이 살기 위해 훌륭한 저택을 포기(73p)’한 심정으로, 불완전한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또, 작가는 때때로 배움의 순수한 희열에 사로잡힌다. 하나씩 외워진 단어들은 그녀에게 태어난 아이의 ‘늘어난 몸무게(48p)’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런 열정과 노력으로 작가는 이탈리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전형적인 인도인의 외모 때문에 또 다른 벽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옷 가게에 들러 점원과 오랫동안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점원은 서툰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작가의 미국인 남편을 보고 이탈리아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며 칭찬한다. ‘May I help you’라는 상냥한 네 단어가 때때로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지만(117p), 어쨌든 작가는 이탈리아어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것이 작가에게 그토록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언어는 그녀에게 ‘변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비디우스의 서사시 ‘변신 이야기’ 중 아폴론을 피해 달아난 다프네가 나무로 변하는 장면을 인용한다. 다프네는 그녀에게 반해 그녀를 쫓아오는 아폴론을 피하기 위해 달아나다가, 아폴론이 그녀를 붙잡을 수 없도록 자신을 나무로 변하게 해달라 애원한다. 그녀의 아버지인 페네이오스가 그녀의 애원을 듣고 그녀를 월계수로 변하게 하여, 그녀의 하얗고 보드라웠던 살갗이 딱딱한 나무껍질에 덮이고, 땅을 짚고 달렸던 그녀의 두 다리는 나무뿌리가 되어 땅속에 박히게 된다. 마침내 나무가 되어 그녀는 아폴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작가도 그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말하고, 이탈리아어로 된 글을 써 내려간다. 소설을 쓰며 등장인물들 속에 숨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언어를 통해 기존의 정체성을 탈피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작가가 계속해서 변화를 꾀하고,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인지, 그냥 주어진 모습으로 머물면 안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왜’에 대한 뚜렷하고 납득 가능한 설명은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저 이탈리아어를 말하고 쓸 때 작가가 느낄 안락함을 독자로서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별다른 노력 없이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작가에게는 그것이 ‘언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출신 대학이 될 수도 있고, 인생을 걸고 시도하는 원대한 목표, 종교적 신념이 될 수도 있다. 또는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매일 들르는 장소나 내가 좋아하는 예술작품에 나를 뿌리 내릴 수도 있다. 한편 누군가는 (비록 자기파괴적이라 하더라도) 어떤 것을 향한 증오를 통해 삶에 안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무언가로부터 달아나는 것을 멈추고 나를 수용할 수 있는 그 작은 집, 언제나 나보다 ‘큰’ 무언가에 들어가 머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표경민 변호사
● 법무법인 디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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