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지구멸망 후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교감이 빛나는 대서사시 - 영화 〈핀치〉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들은 한결같이 배우의 존재감이나 연기를 믿고 보는 영화에 속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로는 1994년도 전 세계를 걷기 열풍에 빠뜨린 〈포레스트 검프〉, 1998년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00년도 〈캐스트 어웨이〉 등이 있다. 특히 비행기 사고로 태평양의 무인도에 표류해 배구공 윌슨을 친구로 삼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톰 행크스의 1인 영화로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무인도를 탈출하는 데 실패하고 망망대해에서 윌슨을 떠나보내며 오열하던 톰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핀치〉에서도 톰 행크스는 또다시 혼자다. 영화 〈핀치〉는 지구 종말을 뜻하는 ‘아포칼립스’의 지구인이 로봇과 반려견을 데리고 유일하게 보존된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가면서 벌어지는 긴 여정을 그린 ‘SF 로드’ 영화다. 인류의 문명은 고도로 발전하였으나, 환경오염과 전쟁 등으로 인해 지구의 대기 오존층이 파괴돼 모든 생명체가 순식간에 타버리고 사라졌다. 주인공 핀치(톰 행크스)는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인간 중 하나로 반려견 굿이어와 강아지 로봇 듀이와 함께 생필품을 찾아 파괴된 도시를 헤맨다. 우주복처럼 보이는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그는 미국 팝가수인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며 오늘도 익숙하게 폐건물 잔재 속에서 각종 필요한 살림살이와 생필품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주제곡도 아니면서 영화 내내 자주 흘러나오는 노래가 이 ‘아메리칸 파이’다. 20세기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묵시록 같은 노래로, ‘아주 오래전/ 난 여전히 기억한다/ 그 음악이 얼마나 나를 웃게 했는지/ …/ 그러나 2월 난 몸서리 쳤다/ 끔찍한 뉴스들로 도배된 신문을/ 문 앞 계단까지 배달해야 한다니/ 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라는 가사에서 미국을 상징하는 파이와 이별을 고하며 지구 문명의 절정에 서 있는 미국의 불운한 미래를 비추고 그 이별의 날을 ‘음악이 죽은 날(The day the music died)’로 묘사하여 비장미를 더한다. 

 오늘도 ‘아메리칸 파이’를 흥얼거리며 어느 버려진 창고에 들어가는 주인공 핀치.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앞장서서 찾고, 그 뒤를 강아지 로봇 듀이가 따라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탐색을 끝내고 나오면 건물 입구에다 깨끗이 다 털었다는 ‘clear’ 표시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모래폭풍이 갑자기 또 몰려오기 시작한다. 오존층이 파괴된 지구에서 흔히 발생하는 모습이다.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삶의 터전이 아니다. 평균 온도가 60도를 상회하며 햇볕에 노출되면 너무 강한 자외선에 살이 까맣게 타버린다. 밤에 움직이면 그나마 안전하지만, 더 큰 적은 같은 인간들이다. 얼마 안 되는 생존자들은 좁은 공간에서 작은 생필품을 두고 살인과 강도를 서슴지 않는다.

 주인공 핀치는 TAE 테크놀로지라는 회사에 소속된 엔지니어로 반려견 굿이어, 로봇 강아지 듀이와 함께 이동용 캠핑카에 산다. 그는 시한부 인생인 자신이 사망한 후 홀로 남겨질 반려견 굿이어를 돌봐줄 로봇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사람처럼 걸을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한 로봇을 만든다. 영화 속에서 핀치가 도서관 같은 곳에서 책을 골라 제본하고 컴퓨터로 스캔 후 데이터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책이 캠핑, 개 사육 등에 관련된 것이다. 노력 끝에 강아지 로봇 듀이의 카메라 눈을 이식하고, 그가 직접 모은 학습자료가 담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탑재한 로봇이 완성된다. 핀치는 그에게 말과 걷는 것을 가르치고,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 주며 4가지 원칙도 주입하였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없을 때 반려견 굿이어를 잘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슈퍼컴퓨터 탑재로 지구의 역사와 문화를 꿰뚫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로봇은 인간의 삶이 처음이고, 철부지여서 실수도 연발한다. 얼마 후 이제 로봇에게도 이름이 필요해 졌다. ‘아인슈타인’이 좋다는 인공지능 로봇에게 핀치는 ‘제프’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제프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로봇은 핀치에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어떠냐고 제안한다. 이에 핀치는 “그 사람은 너무 작아. 넌 크잖아. 그냥 ‘제프’로 해.”라며 이름은 제프로 정한다. 〈캐스트 어웨이〉의 반려 배구공, ‘윌슨’의 이름을 지을 때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샌프란시스코를 향하는 여정 중 제프와 핀치는 더욱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간다. 그러던 중 자외선 과다 노출로 불치병에 걸린 핀치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그들은 제프의 운전으로 어느 작은 도시에 도착한다. 끙끙 앓는 핀치를 보고, 제프는 주도적으로 행동하라는 프로그래밍대로 식량을 구한다며 핀치의 허락 없이 강아지 로봇 듀이를 데리고 탐색에 나선다. 제프가 한 병원건물에서 의료품 창고를 발견하고 아픈 핀치를 생각하며 환호하는 순간 악당들이 만든 덫에 걸려 듀이가 파괴되고 만다. 핀치가 황급히 제프를 구해 도망치는 과정에서 고가도로 밑으로 차를 몰아 숨는 것에 성공하지만, 차 윗부분의 태양 전지판이 모두 망가지는 상황을 마주하며 핀치와 제프의 갈등은 깊어진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힘들게 샌프란시스코를 향하는 여정은 계속되고 핀치는 점점 쇠약해져 간다. 그러던 중 자외선 감지기에서 자외선 수치가 낮아진다는 메시지와 함께 차 앞 유리에 한 마리 날파리가 날아와 박힌다. 제프는 누워있던 핀치를 황급히 깨워 이 사실을 알려 준다. 직사광선에 닿아도 화상을 입지 않고, 나비가 날고 꽃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핀치의 모습이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탈출에 성공한 톰의 모습과 판박이다. 오랜만에 아껴뒀던 멋진 정장을 꺼내 입고 대낮에 태양을 쬐며 푸른 잔디밭에서 소풍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이고 살짝 부럽기까지 하다. 제프가 지난밤 일행 셋이 금문교에 서 있는 장면을 생각했다는 얘길 하는데 그걸 들은 핀치는 로봇이 꿈을 꿨다며 매우 놀라워하고, 자신의 사후에 개 굿이어를 잘 돌봐달라는 말(유언)과 함께 제프에게 공던지기 연습을 시키며 굿이어와 친해지게 하려 한다. 그러나 제프가 던진 공을 줍긴 하지만 막상 그 공을 핀치에게 가지고 오는 반려견 굿이어의 모습이 걱정도 된다. 아직은 제프와 굿이어는 서로 서먹한 사이인 것이다. 

 그러다가 또다시 피를 토하는 핀치의 모습이 나오며 작별 준비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 비장함과 슬픔이 감돈다. 곧 숨이 넘어가려 하는 핀치를 침대에 편안히 눕히고 밖에 나와 조용히 앉는 제프. 주인을 잃는 슬픔에 크게 짖어대는 반려견 굿이어. 이윽고 핀치는 마지막으로 굿이어를 힘들게 쓰다듬고는 죽음을 맞이한다. 제프는 죽은 핀치를 정성스레 화장한 후 잠시 상실감에 빠지지만, 곧이어 뭔가를 결심한 듯 강아지 밥부터 줘야겠다고 소리친다. 식사를 마친 굿이어가 공을 던져달라며 공을 물고 오고 로봇과 반려견의 공 던지기 놀이가 시작된다. 그 후 ‘굿이어와 제프에게 사랑받았던 핀치 와인버그’라고 쓰인 묘비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입구에 보이고, 핀치가 말했던 금문교의 아름다움에 대해 실감하는 제프는 핀치, 제프, 굿이어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벽에 끼우고 난 후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찾아가 보자는 이야기를 굿이어에게 하며 다시 긴 여정을 떠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영화 첫 장면에 나오던 아메리칸 파이가 흐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처럼 영화 핀치는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교감을 마치 아버지와 아들의 긴 여정의 서사시로 그려내고 있다. 

 이제 제프는 굳건한 로봇의 육체로 굿이어를 돌보는 어엿한 존재가 되었다. 제프가 끊임없이 말썽과 실수를 저지르며 호기심 많은 유아기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고, 또 인간적이다. 인간의 교감 대상이 생명체가 아닌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것과, 로봇 또한 인간처럼 자아와 감정을 갖는 것이 색다르면서도 잔잔한 감동과 감응에 젖게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절절한 고독감 또한 느껴진다. 마치 지구의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말이다.

 인류 멸망의 절망과 그로 인한 고독, 그리고 그 이면에 인공지능 로봇과 교감하는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영화 〈핀치〉를 이 추운 겨울에 꼭 한번 감상하기를 권해 본다.

성중탁 교수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성중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