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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혁 회원이 추천하는 이 달의 책
 


징비록
유성룡 지음 , 김홍식 옮김, 서해문집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책표지에 적힌 문구가 이상하리만치 뇌리에 박힌다. 작년 영화 <명량>은 한껏 영화적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외세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뿔뿔이 흩어진 마음을 다시금 모으는 모양새를 넘어 영화에 대한 비판을 매국으로 호도하는 이상한 신드롬을 빚었다. 전쟁이 없는 지금, 흩어진 마음은 이렇게 영화만이 모을 수 있는 것일까?
'징비'라 함은 <<시경>> 소비편(小毖篇)에 나오는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에서 유래한단다. 탤런트 김상중이 맡은 유성룡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 번의 환란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이를 겪은 이후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엮어 환란 전후의 조선의 상황과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 환란의 처참한 모습 그리고 이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담고 있다. 
류성룡은 눈앞에 위험이 펼쳐지는 데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험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혹은 인지를 하였음에도 이를 덮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낱낱이 기록하는 것부터 자신의 반성을 시작한다. 일본에 다녀온 사신은 일본의 근황이 심상치 않음을 전하려 하지만, 번번이 정치적인 이유로 의사전달이 왜곡된다. 유성룡 스스로도 조정의 신료로서 이러한 잘못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은 처참했고, 그 피해는 사실 백성에게 전부 돌아갔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명은 쇠락했고, 일본은 도요토미 정권이 붕괴하고 에도시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조선만큼은 전쟁의 당사자이자 최대의 피해자이면서도 그 정권이 이어졌다. 지배층이 유지되었다는 것은 결국 피지배층의 입장에서는 더 깊은 고난이 이어졌음을 시사한다. 또 징비록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모든 백성이 환란 앞에서 합심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곳간을 노리는 이들이 많았다는 진술은 간접적으로나마 이를 보여 준다.
징비록이 가지는 가치는 4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각자의 생존을 우선하고 엄습하는 위험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일침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얼마 후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1년이 된다. 21세기에 아이들이 300명이 넘게 죽는 일이 일어났는데도 우리는 영화로는 하나가 되었을지언정 그 아픔에서 하나가 되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 지옥 같은 참사를 기록하고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징비록의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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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애니멀
조너선 갓설 지음, 노승영 옮김, 민음사 펴냄
 
아침 "막장 드라마" 한 편을 본다. 한 편으로 벌써 이미 지나간 40여 회의 이야기와 앞으로 남은 20여 회의 이야기가 정리된다. 그래도 내일도 뻔한 얘기인 줄 알면서도, 누군가를 욕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동정하기 위해 텔레비전을 튼다. 
저자는 스토리텔링을 우리 인간에게 내재된 능력이자 욕구로 파악한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시작은 표류하던 선박에 대한 묘사를 소설의 원문을 원용해서 보여 준다. 단 두 문단을 원용했을 뿐인데, 이미 독자는 표류하던 선박에 썩은 물이 고여있고 먼저 죽은 이들을 뜯어먹고 생존한 이들의 쾡한 눈과 진동하는 썩은 고기냄새를 느낀다. 돌이켜 보면 소설의 저자는 이런 구체적인 묘사를 한 적이 없다. 소설가의 몇몇 문장에서 독자는 이미 들려 준 것을 넘어 처참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결국 변호사 역시 스토리텔링 애니멀이기 때문이다. 나는 의뢰인이 들려 주는 몇몇 가지의 것들과 남은 자료를 바탕으로, 상대방 변호사 역시 그의 의뢰인이 들려 주는 몇몇 가지를 가지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간혹 겹치는 것이 많다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가지고 유죄인 사람이 무죄가 되기도 하고 억울한 사람이 더 억울해질 수도 있다. 누구의 이야기가 법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더 설득력 있는 것인지가 관건인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이야기에 탐닉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본다. 원시인이 동굴에서 손바닥으로 벽화를 남기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 것이다. 조그만 들짐승 하나 놓쳤을 따름이지만 동굴의 벽화에는 큰 들소를 잡은 것으로 그린 조상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람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면서 진화를 해 왔고, 그래서 더더욱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서의 대립적 구조가 긴장감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에 탐닉해 온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요즘의 콘텐츠 경쟁의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 상당한 설득력을 준다. 아무리 특수효과와 비쥬얼이 뛰어난 영화라 하더라도 담고 있는 이야기가 시시하면 사랑을 받지 못한다. <트랜스포머>는 회를 거듭할수록 나락에 빠졌다. 게임도 마찬가지고 연예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같은 가수 지망생이라 하더라도 스토리가 있는 인물에 더 열광하는 것이다. 
동시에 저자는 이러한 본성이 가지는 추악함도 언급한다. 이야기를 만들려는 욕구가 탐욕이 되었을 때 혹은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는 쾌락에 너무 심취하게 될 때 사람들은 찌라시를 만들어내고 탐닉하며 다른 누군가를 파괴하며 음모론을 확대하고 재생산한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야기꾼이 될 것을 조언하는 단순하고 다소 기운 빠지는 결말로 나아가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특히 변호사로서 서면 하나하나에 담는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수십만 년을 두고 진화된 만큼의 글은 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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