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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추억

 6살이었던 1987년,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유치원에 갔다. 당시 내가 갔던 유치원의 정확한 이름은 “새마을 유아원”이었는데 정부 보조로 다른 곳보다 원비가 저렴했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종일반(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당시 ○○생명 보험아줌마(요즘 말로는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따로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5살까지는 회사에 나를 데리고 다니다가(그래서 서울 및 경기 지역 곳곳을 어머니 손 잡고 지인들 보험 가입하러 다녔다), 6살이 돼 종일반 유아원 입학이 가능해지자 나를 입학시킨 것이었다.

 아침 8시 30분경 집 앞에서 유아원 셔틀버스를 타면, 온 동네를 돌아 아이들을 태우고 9시경 유아원에 도착, 간식과 점심을 유아원에서 먹고, 낮잠도 자며 온종일 놀다가 어머니가 늦은 오후 무렵 퇴근해서 나를 데려가는 일상이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 하나가 있는데, 이건 지금까지도 어머니가 내게 미안하다고 종종 이야기하는 일이다.

 12월 23일인가 24일인가 당시 유아원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했는데, 아이들이 연극도 하고 웅변도 하고 부모님과 어울려 게임도 하는 그런 날이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회사에 출근했다가 행사 느지막이 유아원에 도착했는데, 다른 아이 어머니들이 전부 포장된 선물을 하나씩 들고 있더란다. 그래서 어머니가 다른 아이 어머니에게 “아이고, 유아원에서 아이들 선물도 이렇게 챙겨줬나 보죠? 정말 감사하네요” 했더니, 질문을 받은 아이 어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아, 영민 어머니 연락 못 받으셨어요? 오늘 아이들에게 나눠줄 거라고 엄마들더러 선물 준비해 오라고 했거든요. 회사 일 때문에 바쁘셔서 전달을 못 받으셨나 보다”라고 답을 하더란다.

 즉, 아이 부모들이 자기 아이에게 줄 선물을 포장해서 가지고 오면, 행사 마지막 시간에 산타 분장을 한 셔틀 운전기사 아저씨가 선물을 나눠주는 것이었는데, 당시는 요즘처럼 온라인 키즈노트 알림장도 없고, 엄마들끼리 알음알음 전달을 하거나 유치원 종이 알림장에 적어주는 것이 전부였던 터라, 어머니가 깜빡 이를 놓쳤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부리나케 유아원 건물 1층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 손에 잡히는 대로 과자 한 봉지를 산 다음 옆 문방구에서 포장까지 한 후, 무사히 전달까지 마쳤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산타할아버지 선물 시간.

 친구들이 하나둘씩 선물을 받아 신나게 포장지를 뜯는데, 당시 유행하던 킹라이온 합체 로봇 세트, 레고 선물 세트, 영 플레이모빌 선물 세트, 공주 주방 놀이 세트 등 아이들이 정말로 받고 싶어 하는 선물들이 줄줄이 나와 모두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산타할아버지가 착하다며 선물을 주시는데, 모양부터 다른 친구들 것과 다르다. 친구들은 일단 큰 상자에 화려한 포장지로 싸여 리본 띠도 둘리어 있는데, 내건 크기도 작고 쭈글쭈글하다. 그래도 기대에 가득 차 신나게 포장지를 뜯었는데, 이런. 평소 먹기는 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눈곱만큼도 기대하지 않았던 ‘스카치 캔디’ 한 봉지가 바로 내 선물이 아닌가.

 당시 어머니가 내 표정을 살폈더니, 6살밖에 안 된 작은 아이인데도 그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너무 역력하더란다.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을 살펴보는데 내 얼굴에 가득 차 보이던 그 부러움과 실망감이란...하늘에 반짝반짝 별이 가득했던 그 겨울밤을 손잡고 걸어오면서,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가지고 싶은 선물이 안 나왔어? 산타할아버지가 조만간 더 좋은 걸로 다시 주실 거야”

 “응. 근데 난 이것도 좋아.”

 불효자인 내가 당시 저렇게 말했을 리가 없는데, 어머니 기억으론 분명히 내가 저렇게 말했단다. 그래서 내가 사춘기 때 ‘어디서 저런 게 내 배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화를 내고 나서도, 어릴 때 위 크리스마스 사건만 떠올리면 금세 화가 가라앉았단다. 아무리 봐도 내가 천사 맞다나. 

 아무튼 위 일이 있고 며칠 뒤 나는 밤새 산타할아버지가 새로 놓고 갔다면서 당시 제일 인기 있었던 ‘제다이 광선검 무전기’를 선물로 또 받았다. 그리고 장롱 구석구석 이불 위에 올라가 아버지와 신나게 무전기 놀이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작년 12월 23일. 이제 3살이 된 나의 딸 다원이의 어린이집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부모가 준비한 선물 증정식 순서가 있었는데...

 선물을 준비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너무 큰 것을 준비하지 말고, 선물을 받더라도 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벗겨 확인하지 말라’고 당부해 두었다. 혹시라도 부모님이 바빠서 선물을 준비 못 한 아이가 있거나 자기 선물보다 더 좋은 선물을 보고 실망하는 아이가 나올까 봐 한 말이었다. 

 다행히 위와 같은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다원이 어린이집 크리스마스 행사는 모든 아이의 보호자가 참석하여 선물을 주고받고,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선물을 뜯지 않은 채 집에 가서 확인했단다. 혹시라도 내가 어릴 때 겪었던 그 실망감을 막기 위한 어린이집의 배려였을까?

 다원이의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콩콩이 병원 놀이 세트’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까지 모두 모여 따로 또 선물을 나눠주는 시간까지 있었다. 

 이제 80이 다 된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코로나가 의심되는 심한 기침 감기로 함께 하지 못해 영상통화만 하였는데, 전화기 너머로 손녀의 재롱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맘속 상처가 이제는 말끔히 아문 것 같았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고, 이제 더 이상 어머니가 내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스카치 캔디의 달콤한 추억과 함께 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

김영민 변호사
● 법무법인 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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