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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는 안 멋져

 법과 증거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법원이지만, 이따금 ‘카더라’에 귀를 기울이는 시기는 찾아옵니다.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대법관, 헌재 재판관 등 법원과 헌재의 고위직 인사가 이뤄질 무렵입니다. 그즈음의 모임에서는 거론되는 후보자들의 하마평과 평판 등이 주요 대화 주제가 됩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후임 대법원장 지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는 유독 많은 후보군이 거론됐고, 또 ‘고사했다’는 얘기가 많이 들려왔습니다. 대통령실에서 후보자가 없어 인물난으로 골머리를 앓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수많은 법관들의 존경을 받았던 전직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 후배들의 존경을 두루 받는 전현직 법원장과 부장판사 등의 고사 소식이 연거푸 들려왔습니다. 법원을 떠난 이후 주요 기업사건을 대리했다거나 재산이 좀 많다, 기수가 너무 높아서 부담을 느낀다 등등. 전임 대법원장 시기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렸다는 이유만으로 무수한 엘리트 법관들이 법원을 떠나야 했고, 이들이 후보군에 다시 이름을 올리는데 스스로조차 부담을 가지는 점도 분명 원인이었습니다. 

 70일 넘는 사법부 수장 공백 끝에 임명된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수차례 고사의 뜻을 밝혔었다고 합니다. 후보자로 지명된 뒤 처음 대법원을 찾은 날 기자들 앞에서 서서 내놓은 말, “수천, 수만 번 고사하고 싶은 심정, 사법부는 물론 우리나라와 국민들에게 혹시 누를 끼치지 않을까 두렵고 떨리는 심정”이라는 표현엔 진심이 묻어났습니다.

 속사정은 본인들만 알겠지만, 일련의 고사 사례를 접하며 안타깝고 아쉬웠습니다. 법조계 안팎에서 두루 칭송받는 유능한 법조계 인물들이 고사하면 사법부 소는 누가 키우지? 싶었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분들이 엉뚱하게 후보가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결국 그 피해는 사법부와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일 테니까요.

 결과적으로 조 대법원장이 고사의 마음을 거두고 대법원장 후보자가 되자, 청문회는 모처럼 청문회다웠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개인 신상보다 사법정책 위주의 질의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청문회에서는 야당 의원들조차 “후보자는 인품도 훌륭하고 (과거 대법관 인사청문회 때) 국회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얻어 대법관이 되셨다(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라며 덕담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고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장 공백은 채워졌지만, 끝은 아닙니다. 내년에는 당장 6명의 대법관과 3명의 헌재 재판관이 임기를 마치고 교체됩니다. 대법원이든 헌재든 방향성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규모의 변화가 찾아오는 셈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전현직 법관들 가운데는 후보 추천 동의조차 망설이는 분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용산(대통령실)과 연이 없는데 들러리 서고 싶지 않다”거나 “자리에 욕심이 없다”, “후배들에게 양보하겠다” 등 이유도 비슷합니다.그렇지만 대법관이 될 만한 분으로 여겨지던 분이 대법원에 있을 때 대법원 판결이 더욱 납득 가능하고 권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헌재도 마찬가지이고요. 물론 임명권자 역시 그런 부분들을 고려해 반박의 여지가 없는 분들에게 자리가 갈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 어쨌건 유능한 법관들이 ‘설령 안될지라도’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 추천이 들어올 때 고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사하지 않는 마음이 대법관이란 고위직에 대한 탐욕이 아니라 사법부와 국민을 위한 봉사 정신이나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면, 고사는 더욱 신중해야합니다. 판사는 직업인이기에 앞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라는 사명감 말입니다. 그런 선배 법관들이 법원에 많으면 후배 법관들도 언젠가 대법관, 헌재 재판관이 될 각오쯤은 품고 성실하게 재판하고 자기관리에 힘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즌 10〉에 찬조 출연했던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며 한국 힙합에 일갈해 화제가 됐던 가사를 빌려봅니다. ‘사법부 신뢰 회복’이 지상과제로 거론되고, 재판지연과 형사사법절차 개선 등 각종 사법 현안들이 산적한 상황입니다. 내년에 바뀌는 9명의 자리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어느새부터 고사는 안 멋집니다.
 

김자현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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