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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가족을 잇는 판결을 받기까지

 공익전담변호사가 된 지 아홉 번째 해가 지나가고 있다. 올 한 해를 되짚어보면 감사하게도 소송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가 북한에 있는 어머니를 상대로 제기한 친생자관계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사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무국적자로서 교육, 의료 사각지대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의뢰인과 함께 대리인 모두 열과 성을 다해 다투었던 건이다. 

 의뢰인의 어머니는 탈북 후 중국에서 결혼하여 의뢰인을 낳았다. 의뢰인의 아버지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지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중국 공안을 피해 숨어지내야 하는 불안과 공포의 날들이 이어졌다. 가족들과 한국에서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두 차례 한국행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붙잡혀 북송되는 바람에 어린 딸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의뢰인은 이렇게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지고, 아버지가 재혼한 탈북민 새어머니와 함께 친어머니가 그토록 원했던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삶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낯선 곳에서 정착도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의 힘든 생활 때문인지 새어머니의 학대가 날로 심해졌다. 의뢰인은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말로 다할 수 없는 학대를 견뎌내며 학업을 이어 나갔고, 성인이 되어서는 새어머니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자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였다. 이제는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기대하였으나, 친생자관계 부존재에 따라 국적 박탈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매년 받던 장학금을 신청하지 못하게 되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약으로 참아냈다. 무엇보다 국적 상실로 대학 입학마저 취소될까, 졸업이나 취업의 길이 막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수년간 이어졌다. 

 대한변호사협회, 동천, 태평양 등의 대리인들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머리를 맞대어 얽힌 사건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우선 북한에 있는 어머니를 상대방으로 하여 공시송달로 친생자관계확인 소송을 진행하였다. 어머니의 친척이 탈북해 남한에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소문한 결과 어머니의 고종사촌을 찾게 되어 이제 해결되었다며 환호하였으나, 현재 유전자 검사 기술로는 검사가 불가능한 관계였다.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유전자 검사 방법을 연구 중인 기관을 찾아 검사를 의뢰하였고, 의뢰인과 5 ~ 6촌 관계로 보인다는 결과를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어머니의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없고 생존 여부조차 알 수 없다며 부적법 각하 판결을 하였고, 이에 항소와 동시에 법무부에 국적판정 신청을 진행하였다. 친생자관계확인 항소심에서는 국가정보원 사실조회를 통해 의뢰인 어머니의 인적 사항 관련 조사 자료를 받고, 법무부 국적판정 절차에서는 새로운 유전자 검사의 신뢰성을 설득해 나갔다. 이렇게 보강된 자료를 양쪽에 제출하여 먼저 법무부에서 국적판정 결정을 받게 되었고, 이는 올해 초 항소심 법원의 친생자관계확인 판결로 이어졌다. 남한 주민이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친생자관계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직접 증거를 찾아다니는 드라마 속 주인공을 상상하였지만, 실제로는 사무실과 법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의뢰인이 제공한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건 소송에서 직접 입증 자료를 발굴하고 강화하는 경험을 하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도 탈북민 사건 지원 과정에서 의뢰인에게 같은 상황에 처한 지인들의 연락처를 받아 일일이 연락을 취하는 과정에서 의외로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절대적 시간의 부족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어려운 사건일수록 돌아가야 (직접 발로 뛰어야) 해결의 길이 열린다.

이희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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