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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마음 버리고 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 돼야”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 인터뷰

Q.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변호사님의 간단한 약력 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법연수원을 19기로 수료하고 1990년에 검사로 임관하여 평검사 때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 등 특별수사부서에서 주로 근무하였습니다. 부장검사, 차장검사 때는 법무부 검찰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 수원지검 안산지청장 등을 거쳤습니다. 2012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후에는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전주지검장, 서울북부지검장 등으로 근무하다가 2017년 5월 법무부 차관으로 공직을 마쳤고 현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법조 직역 중 검사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물론 판사, 변호사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법조인의 직역이지만 범죄를 직접 수사하여 그 진상을 밝히고 적극적, 능동적으로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는 검사가 제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사법연수원 시절 검사 시보를 하면서 검찰조직의 끈끈한 동료애를 느낀 것도 제가 검사 임관 신청을 하는 데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Q. 1997년에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으로 검사 연수를 가셨던데 주로 어떤 분야를 공부하셨나요?

 LL.M.(법학석사) 과정으로 유학을 가서 만 1년 동안 공부하며 국제법, 국제형사법 분야를 특히 많이 공부하였고 그 인연인지는 몰라도 귀국 직후 범죄인인도, 국제형사사법 공조 등을 주된 업무로 하는 법무부 검찰4과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1997년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UN 외교회의에 정부 대표로 5주간 참석하며 재판소 설립을 위한 국제협약인 로마규정(Rome Statute) 채택 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였던 것을 보람있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Q.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법무부 정책기획단 부장검사로 일하실 때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는 어떤 것이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를 2가지만 말씀드리면, 첫째, 당시 범죄피해자 보호라는 개념 자체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범죄피해자 보호, 지원을 위한 종합 대책’을 기안하여 발표하였는데 범죄피해자에 대한 보상 및 피해 회복, 2차 피해 방지, 피해자의 절차 참여권 보장 등 3가지 방향에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이를 토대로 하여 그 후에 범죄피해자보호법이 국회에서 제정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둘째, 법무부의 발전을 위한 변화, 전략계획서로서 『희망을 여는 약속』이라는 책을 만들어서 법무부의 미래 청사진을 그 책에 상세히 기재하였습니다.


Q.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으로 일하실 때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는 어떤 것이었나요?

 법무부 형사기획과에서는 전국 검찰청의 수사상황을 보고받아서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하고 법무부의 국회 업무를 총괄하여 국회 개원 시 국회의원이 법무부장관에게 질의할 사항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기본 현안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바쁜 상황이었지만 정책 업무의 발전을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검찰의 “인권보호수사준칙”을 전면 개정하였고,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들이 인권감독보고를 반기마다 법무부장관에게 제출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각 검찰청의 인권상황을 평가하여 우수 기관을 포상하는 인권평가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하였습니다. 모 사건에서 수사 검사와 피의자 간의 조사과정 녹취록이 폭로되면서 허위진술을 종용한 것 아니냐는 이슈가 제기되었고, 이로 인해 검찰의 인권 시스템 개선 요구가 높아졌던 것이 그 계기입니다. 당시 저는 제도만 아름답게 만들고 못 지키는 것보다는 있는 제도를 잘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위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였던 것입니다.


Q.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검사라면 누구나 가장 선호하는 법무부 검찰과장으로 일하실 때는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는 어떤 것이었나요?

 검찰과는 검찰의 인사, 조직, 예산을 담당하는 중요부서라서 업무량이 대단하였고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는 검사들이 임관할 때 하는 ‘검사 선서’를 제정한 일입니다. 종전에는 검사들이 ‘공무원 임용 선서’를 하며 임관하였는데, 검사만을 위한 선서를 새로 만들어 대통령령으로 제정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검사 선서’ 문안을 만드는 과정이 지난하였습니다. 먼저 대검찰청에서 위원회까지 만들어 논의한 끝에 초안을 보내왔지만 장관님께서 그 내용이 밋밋하다고 마음에 안 들어 하셨습니다. 할 수 없이 법무부에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어서 여러 차례 초안을 다듬어 보았지만 장관님은 거듭 퇴짜를 놓으시며 나중에는 역정까지 내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문학성이 필요한 문장은 여러 사람이 협의해서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장관님께 꾸지람까지 받으니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뒤척이게 됐는데,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새벽, 문안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작성한 것이 현재의 ‘검사 선서’가 되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서예가의 글씨를 받아 위 선서를 액자로 만들었고, 지금도 각 검찰청의 로비 등 잘 보이는 곳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직접 검사 선서 내용까지 작성하고 나니 그 이후 제가 물의를 일으켜서는 정말 안 되겠구나 생각하고 조금 더 신중하게 검사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Q.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전주지방검찰청,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의 각 검사장을 역임하시면서 주로 어떤 업무를 챙기셨나요? 검사장 근무 기간 중 가장 큰 업적으로 생각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검사장의 역할은 검사들이 외압을 받지 아니하고 소신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혹시라도 수사 검사가 의욕이 지나쳐서 과열된 수사를 진행할 경우 이를 자제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검사장 때도 기억에 남는 사건도 많고 자랑스러운 일도 많지만, 그것을 마치 나의 공적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사 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일은 첫째,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시절 관내 법학전문대학원 4곳(고려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과 업무 협조하여 형사법을 주제로 교수, 검사 등이 발표 및 토론자로 참여하고 법학전문대학원생, 검사, 검찰청 직원 등이 방청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인데 이를 통하여 관내 법학전문대학원과 검찰청 간의 학술교류 및 관계 증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제가 검사장으로 부임한 직후 대검찰청에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을 “재정, 조세범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대검찰청에서 일단 특별수사팀을 꾸려서 수사를 진행하여 보라는 연락을 받고 “재정, 조세범죄 중점 수사팀”을 만들어서 주로 조세포탈, 보조금 부정수급 및 횡령 등 범죄에 대한 수사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최근에 실제로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이 “재정, 조세범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Q. 1990년부터 약 25년간 검사로 재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이 있었던 사건이 있다면 어떤 사건이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직 국회의원 수사, 언론사 탈세 사건 수사 등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제가 2003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 부부장검사로 재직하면서 당시 현직 대통령 친형의 부패 범죄를 적발하여 기소한 일입니다. 대통령께서 공개 사과까지 하셔서, 사실 저는 좌천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 직후 인사 결과가 그렇지 않아 정부에 감사하게 생각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1991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특수부에서 당시 제2의 장영자 사건으로 불렸던 대규모 주택조합사기 사건을 수사하여 기소하였던 일이 기억납니다. 피의자가 주택조합의 분양 가능 세대수보다 무려 400여 세대 이상을 초과 분양하여 400억 원 이상을 편취한 대형경제사건이었습니다. 그때 약 2주간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면서 열심히 수사하였는데 초임검사로서 어려운 사건을 잘 마무리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Q. 2015년 12월부터 2017년까지 법무부 차관으로 재직하실 때 법무부장관의 사직으로 인하여 상당 기간 동안 장관 직무대행을 하셨는데 이러한 장관 업무 수행은 일반 법조인들로서는 매우 경험하기 힘든 일입니다. 당시 장관 업무를 대행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 및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법무부 차관으로서 법무부장관 직무대행을 한 시기는 2016년 11월부터 2017년 5월까지 6개월이었습니다. 당시 검찰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K-스포츠재단, 미르 재단 등 관련 수사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2016년 11월 29일 모시던 장관께서 용퇴하시는 바람에 제가 장관 직무대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였고, 이에 따라 대통령의 직무집행이 정지되면서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3월 10일에는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렸고, 급기야는 3월 31일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기까지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격동의 시절이었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법무부는 국법질서를 책임지는 부서인데 이와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장관 직무대행을 하는 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였고, 평소보다 더 당당하고 의연하게 처신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업무도 더욱 적극적으로 수행하고자 법무행정의 최일선인 인천국제공항의 출입국관리현장, 일선 교도소 등도 자주 방문하며 직원들이 흔들림 없이 열심히 근무하도록 독려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큰 혼란 없이 2017년 5월 9일의 대통령선거까지 마치게 되었고, 다음 날부터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 정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5월 22일에 소명을 다하고 차관직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장관 직무대행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엊그제까지 대통령으로 모시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던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웠던 일이었지만 수감 중에 불상사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정 직원들로부터 수시로 보고 받고, 잘 챙겨보려고 노력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Q. 법조 원로로서 후배법조인에게 조언하여 주시고 싶은 사항은 무엇인가요?

 과거보다 법조 환경이나 법조인에 대한 대우 등이 안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기회는 있는 법입니다. 처음 법조인 생활을 시작하시는 분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조급하게 움직이지 말고 꾸준히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외국어 구사 능력 향상에도 노력하시고, 리걸테크에 대한 이해 및 활용에도 관심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제가 최근 미국 대형 로펌의 AI 담당 파트너변호사들과 대화하면서 “미래에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자 미국변호사는 “아니다. 미래에는 AI로 무장한 변호사가 AI로 무장하지 못한 변호사들을 대체할 것이다”라고 답하였는데 나름 의미가 있는 답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재 지방검찰청의 일선 검사를 바라보시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현재도 대부분의 검사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계시고 도덕성도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간혹 수사에 대한 열정이 너무 과다한 검사도 있고 정반대로 너무 소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검사들도 보입니다. 중용이 중요해 보입니다.


Q. 법조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요?

 정의감, 인권을 존중하는 신사다운 자세, 그리고 의뢰인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인격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Q. 변호사님의 향후 계획은 어떠한가요?

 저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변호사, 후배들을 격려해 주고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변호사가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요즘 포퓰리즘(Populism)으로 인하여 민주주의가 흔들린다는 염려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상현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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