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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위로, 사법부의 사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6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장은 지난해 12월 21일 선고를 하기 앞서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의 한정석 부장판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강제수용돼서 그 기간에 고통과 또 아주 어려운 시간 보내신 원고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재판부로서 먼저 드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법원이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은 30 ~ 40년 전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해 시설에 강제수용되고 노역, 폭행, 가혹 행위, 살해 등 인권 유린을 당했습니다. 1975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수용자가 3만 8,000여 명에 달하고 밝혀진 사망자 수만 667명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방청석에 있던 피해자는 “판사님이 판결문을 읽기에 앞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신 순간부터 위자료 금액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고맙다는 생각, 이겼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감격했습니다.

 한 부장판사의 ‘위로’는 사법부의 과거 판결에 대한 ‘사과’가 될 수 있을까요. 형제복지원 사건이 1987년 세상에 알려진 후 법원, 특히 대법원은 인권유린을 자행한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릴 기회를 네 번 가졌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법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해 박인근 원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부산지법 울산지원은 1987년 1심에서 특수감금,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원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지만, 대구고법은 항소심에서 “사회사업가로서 정상을 참작한다”며 징역 4년으로 감형했습니다. 상고심을 심리한 대법원은 1988년 “원생들의 야간도주를 막기 위해 출입문을 잠가 놓은 것은 법령에 의한 정당행위로서 형법상 특수감금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법령에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20조가 근거였습니다.

 파기환송심을 심리한 대구고법은 대법원의 취지와 다르게 “(울주 작업장은) 적법한 허가를 받은 사회복지시설로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강제수용한 것은 특수감금죄에 해당한다”며 박 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금 박 원장의 특수감금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2심을 맡은 대구고법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 6개월을 결정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습니다.

 31년 후 대법원은 네 번째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심리하게 됩니다. 검찰은 2018년 박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를 무죄로 확정한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다시 심리해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습니다. 형제복지원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을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한 근거인 내무부 훈령이 위헌이기에 이를 근거로 특수감금 행위를 정당행위로 봐 무죄를 선고한 판결은 법령 위반이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대법원은 2020년 재판을 시작했고 이듬해 검찰의 비상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박 원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근거는 내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령에 의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형법 20조여서 무죄 판결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 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는 당시 SNS에 “대법관들은 유죄를 인정하면 사과를 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기 때문에 무죄를 유지한 것”이라며 “대법관들의 집단무결주의 때문”이라고 질타했습니다.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주범 박인근 원장에 무죄를 확정하며 진상을 규명하는 데 끝내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사법부는 국가의 법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법리를 엄격하고 일관되게 적용해야 할 의무가 있고 예외는 지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공권력이 법체계를 부당하게 이용해 국민의 인권을 침해했다면, 법체계의 정의를 회복할 책임을 진 사법부가 인권 침해를 적극적으로 구제하는 데 주저해선 안 됩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는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피해자가 구제받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와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피해자에게 배ㆍ보상을 할 임무는 입법부와 행정부에 있습니다. 사법부 역시 진상 규명과 피해 구제를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과 한 부장판사의 ‘위로’가 축적돼 사법부의 과거 판결에 대한 ‘사과’로 인정받길 기대합니다.

박기석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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