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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주도할 변화는 빠르고 폭넓을 것, 굳은 심지와 섬세한 지적 감각 요구돼”윤재윤 변호사 인터뷰

Q.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의 간단한 약력 및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보의 ‘선배법조인의 조언’에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저는 제11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81년도 처음 수원지법 판사 임용을 시작으로 서울가정법원, 서울지법, 부산고법, 서울고법의 각 부장판사를 거쳐 춘천지방법원장으로 공직을 마친 뒤 2012년부터 현재까지 법무법인(유) 세종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1981년에 판사로 법조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으시고 30년이 넘는 기간의 판사 생활을 지내셨는데요, 바람직한 판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판사는 첫째도, 둘째도 성실해야 하고, 다음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법관이 담당하게 되는 사건은 어느 당사자라도 일생에 한 번 겪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진실 파악을 위하여 사건기록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성실해야 합니다. 또한 판결을 선고할 때 나에게 편견이 없는지 매번 불안함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내가 항상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반대의 측면 또한 늘 고려하는 것이 겸손함이지요. 끝으로 원활한 사건 진행을 위하여서라도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경 쓰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신뢰받는 판사가 된다는 것은 거의 예술가적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2012년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로 개업하셨는데요, 특별히 세종과 연을 맺으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저는 오랜 기간 법관직을 맡아왔지만 평소에도 재판은 판사만 주체가 아니라, 변호사도 다른 한 축이라고 생각해 왔고, 언젠가 변호사 생활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법관은 무대 위에 펼쳐진 증거를 보게 되지만, 무대 뒤에서 이 무대를 준비하는 변호사의 역할을 경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춘천지방법원장 때 세종에 있는 친한 후배로부터 제의를 받았고, 세종의 색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여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Q. 길었던 법원 생활을 자평하면 어떤 법관이셨습니까?

 저는 뛰어난 판단력을 가진 법관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성실하게 애를 쓰면서 옳은 판결을 하려고 노력했다고는 생각합니다.그리고 저는 제도 개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정법원 판사로 재직할 때는 소년사건에서 소년을 돌봐줄 보호자를 두도록 하는 소년자원보호자제도를 정립시키기도 하였고요. 재판을 받은 소년이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기존과 동일한 환경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그 소년에게 꾸준히 관심을 두고 연락할 수 있는 멘토를 연결해 주었고, 이러한 멘토제도가 그 이후 소년자원보호자제도로 발전했습니다. 예전엔 형사재판을 하면서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의 환경기재부분을 보고 양형을 할 정도로 양형자료가 빈약했는데 양형진술서를 도입한다거나, 양형에 관한 정신감정을 최초로 시도하였지요. 2001년에 중앙지법에서 건설감정인 세미나를 최초로 열어 건설감정 매뉴얼을 작성하기도 하였습니다. 100여 명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400명이 넘게 올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돌이켜 보면 법관으로서 문제 있는 제도를 조금이나마 개선해 왔다는 점에 지금도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Q. 건설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계신데, 해당 분야를 전문으로 하신 이유가 있으시다면?

 제가 2000년에 서울중앙지법 건설전문재판부를 맡았는데 당시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는 거예요. 공부해 가며 재판을 했죠. 그리고 대한변협에서 2002년에 변호사연수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40쪽짜리 강의록을 만들어서 강의를 했는데 그게 공전의 히트를 친 겁니다. 워낙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던 때여서요. 그걸 썩히기는 아깝고 해서 재판을 하면서 2년 동안 휴일 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 『건설분쟁관계법』이라는 책으로 냈어요. 그래서 초판은 끔찍하도록 부실합니다. 그런데도 하도 반응이 좋아 계속 8판까지 개정판을 내었고 개정판을 내면서 점차 책 같아졌습니다. 보니까 여름 휴가철에 좀 여유 있게 쓴 부분은 읽을 만하고 평일 야근하며 쓴 부분은 대충대충 쓴 티가 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쓴 책이 대우받는 거 보면 우리나라 전문성이 약한 거 같아요. 그래서 연수나 강의 나가면 그래요. 한 10년만 한 분야를 파고들어 공부하고 1년에 논문 1편씩만 발표하면 전문가 된다고요.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택해 꼭 그렇게 해보라고 후배들에게 권고합니다.


Q. 후배변호사들에게 법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점들을 조언해 주신다면?

 수명 100세가 현실화 되고, 예측 못할 일들이 계속 생기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통찰력과 강건함을 가진 정신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쁜 일에 쫓기지만 한 단계 높은 시야를 갖도록 애써야 할 것같아요. 유튜브로 교양을 얻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사유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아주 좋은 책을 골라서 3번씩 읽으면 어떨까요. 

 그리고 요즘 AI와 관련하여 법조시장에도 많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저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향후 20년 뒤가 예측 불가능한 최초의 시대라고 합니다. 아마도 AI가 주도할 변화는 현재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넓을 것 같아요. 이런 변화추세에도 관심 갖고 살펴야 할 것입니다. 굳은 심지와 섬세한 지적 감각이 요구되는 어려운 시대를 맞는 것이지요. 


Q. 법조인이 아닌 ‘인간 윤재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선, 저는 좀 심약하고, 생각 많고, 고민이 많은 성격같습니다. 낙천적인 사람이 참 부럽지요. 또 하나는 저는 무언가 개선하는 측면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잘 내는 편이에요. 제도의 운용과 개선에 항상 흥미를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인간과 자연에 관한 지적 호기심이 아주 큰 편입니다. 책을 읽고 알아가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


Q. 변호사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취미가 인물의 전기와 자서전을 읽는 것인데요. 우리나라에 좋은 전기물이 너무 적어서 안타깝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뛰어난 인물들의 삶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요즈음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조지 마셜장군의 전기를 읽고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현대사에서 공적 생활과 자신의 내면생활을 조화시킨 거의 유일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온갖 복잡한 일을 하면서도 정직한 사람이라고 존경받았지요. 미국 군대를 현대화 시킨 장본인이고요. 이 사람을 알게 되면서 저 자신이 해온 일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것인가요?

 단호하게 ‘노’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원래 사회학과를 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부모님들께서 너무 원하셔서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다음 삶에 법조인이 되라고 하면 아버지와 싸울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Q. 끝으로 향후 변호사께서 꼭 이루자 하시는 것이 있나요?

 제가 42년간의 긴 법조생활을 해왔는데요. 제가 그동안 알고,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후배들과 나누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적지 않은 경험들을 토대로 성실함과 정직함을 갖추라고 조언해 주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보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겪은 일을 편하게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져야 겠다고 마음 먹고 있습니다.

 

● 인터뷰/정리 : 이윤우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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