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어머, 이런 책이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미술관에 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를 다닐 적 교외활동의 일환으로 전시 작품들을 선생님의 가이드에 따라 관람하거나, 꼭 전시 공간이 아니더라도 미술관 앞 널따란 조경 공간을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산책한 기억들이 저 멀리 아득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대해 색다른 시각에서의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이 책은 미술관에서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방문객이 아닌, 매일 같은 공간에서 상주하는 경비원으로서의 저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 외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는 공간에서, 그는 경비원으로서의 일과를 묵묵히 수행하면서 겪은 일들, 스쳐 지나간 생각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경비원으로서 저자에게 주어진 특권은 매일 배정된 전시실에서 같은 작품을 업무 시간 내내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크게 감동을 주지 못한 예술 작품도, 또 누군가에게는 발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 정도로 인상 깊었던 예술 작품도 저자 앞에서는 평등하다. 저자는 매일매일 어떠한 의도나 목적 없이 예술 작품들을 대하고, 저자의 순수한 시각 속에서 예술 작품들은 그에게 평소와는 다른 떨림을 준다.

 미술관에서 저자의 시선은 비단 오래된 작품들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미술관에 방문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스케치하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방문한 어느 어머니, 수많은 데이트 장소 중 하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에게도 그는 따스한 시선을 건넨다. 그리고 그에게 미술관은 이제 이 방문객들까지도 하나의 교감하는 요소가 되어 입체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방문객들이 미술관을 관람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대표적인 유형은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람 구경도 할수록 는다(책 p.140)’. 옆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정숙하여야 하고, 휴대용 이어폰을 통해 주입되는 나지막한 내레이션만이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공간에서, 방문객들의 사소한 질의(“그럼 이것들은.. 사제가 그린 건가요?”)와 그들과의 대화로 정적인 공간이 채워지는 경험은 8시간 내내 대리석 또는 나무 바닥의 견고함을 딛고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일 것이다.

 사실 저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기 전 모두가 부러워하는 잡지사 ‘The New Yorker’에 다니던 성공한 직장인이었다. 백인, 중산층, 번듯한 직장까지, 그가 누리던 특권들은 번잡한 도시의 삶에서 빛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할 6월에 사랑하는 형의 죽음을 목도한 후,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책 p.69)’.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이제 삶을 가장 고요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채워나가기로 한다. 뉴욕의 마천루에서 그가 키보드와 씨름하며 보냈을 일분일초는, 이제 그가 겪었던 상실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다. ‘나는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시간이 한가히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구식의, 어쩌면 귀족적이기까지 한 삶에 적응해 버렸다(책 p.63)’.

 저자의 일상 속 단순한 연대(連帶)는 매일 말을 건네는 작품, 교감하는 관람객들, 초연히 흐르는 시간을 넘어서 푸른 근무복을 입은 동료들에게로 확장된다. 경비원들이 입장객들의 표를 검수하는 ‘포인트’에서 근무할 때는 두 명의 경비원들이 일부러 좁게 만들어놓은 입구 양 옆에 상당히 가까이 마주 보고 서서 온종일 수다를 떨 수 있다(책 p.181). 전시실을 배경으로 잔잔히 흐르던 이 책 속의 운율이 나자닌, 조셉, 트로이 등 다른 인물과 화음을 이루면서 독자들도 어느 순간 경비원들 각자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 일은 어쩌다 하게 되었냐는 저자의 질문에 동료 트로이는 “보험회사에서 20년 동안 일했어. 그런데 어느 날 상사가 직업 적성 검사를 하라는 거야. 어떤 일이 각자에게 제일 잘 맞는지 보여주는 검사라나 뭐라나… (중략) 내가 유일하게 되고 싶었던 건 개인적으로 예술을 후원하는 부자였다고. 이게 그 꿈에 제일 가까워(책 p.186)”. 경비원 각자가 품고 있는 여러 사연과 해결되지 않은 삶의 의문들은 메트로폴리탄의 수백 개 전시실에서 나란히 미술품들과 관람객들을 지켜볼 뿐이다.

 이 잔잔한 이야기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책의 마지막은 어느덧 그가 10년 근무 끝에 마지막으로 푸른색 근무복을 입는 날로 독자들을 이끈다. 인간은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그 순간들이 모인 미술관에서 종종 길을 잃곤 한다. 현실을 잠시 망각한 채로, 또는 상념에 깊이 빠져든 채로 고요하게 방황한다. 이렇듯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곳이기도 하다(책 p.325).

유승연 변호사

유승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