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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제파니아를 추모하며

Dis poetry is like a riddim dat drops
De tongue fires a riddim dat shoots like shots
Dis poetry is designed fe rantin
Dance hall style, big mouth chanting,
Dis poetry nar put yu to sleep
Preaching follow me
Like yu is blind sheep,
Dis poetry is not Party Political
Not designed fe dose who are critical.
Dis poetry is wid me when I gu to me bed
It gets into me dreadlocks
It lingers around me head
Dis poetry goes wid me as I pedal me bike
I’ve tried Shakespeare, respect due dere
But did is de stuff I like.1)

이 시는 드롭 리듬같아 
혀는 총처럼 리듬을 쏘아내지 
이 시는 시끄럽게 외치기 위해 쓰였어
댄스홀 스타일처럼, 목청 놓아 외치지, 
이 시는 이제 너를 잠재울거야 
내 설교를 따라와 
마치 눈먼 양처럼, 
이 시는 정치적이지 않아
비판적인 이들을 위해 쓴 시가 아냐.
이 시는 내가 잘 때도 나와 함께야
내 머리카락을 파고들어
내 머리속에 남아돌지
이 시는 내가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도 함께해 
나는 셰익스피어도 읽었고, 마땅히 존경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거야

 고등학교 때 일이다. 학교 영어 선생님은 교탁 밖에서는 시인이었는데, 어느날 영국에서 중요한 시인 손님을 초대했다면서 학생들을 대강당으로 부르셨다. 대강당에 가자 ‘시인’이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한 남자가 우리를 맞았다. 그는 키가 크고 비쩍 말랐으며,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흑단처럼 검었고, 머리는 길게 레게형으로 땋았다. 밥 말리를 연상시키는 이 남자는 하얀 이빨이 모두 보이는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으며, 우리 앞에서 그의 시를 읊었다. 그가 읊는 시는 마치 레게 음악처럼 칼립소 리듬이 있었고, 활력이 넘쳤다. 그는 호기심 많은 우리 학생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고, 그의 갈색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제파니아(Benjamin Zepha niah). 그의 강연과 시 낭송은 지루한 수업에 지친 우리 학생들의 마음에 시원한 카리브해의 바람 같은 청량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쌀쌀했던 지난 겨울 어느날 오후, 무심하게 BBC 웹사이트의 스크롤을 내리다가 낯이 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벤자민 제파니아의 부고 소식이었다. 1958년에 태어난 시인은 2023년 12월 7일, 모든 억압에 반대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시와 글들, 노래들, 말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벤자민 제파니아를 ‘시인’이라고 소개했지만, 실은 그는 시를 쓰는 것 외에도 정말 많은 일들을 했다. 그는 소설과 동화책도 집필했고, 가수로서 앨범도 여러 장 냈으며, 심지어 연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인종차별에 반대했고, 비건 활동가였으며,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과 함께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다문화적, 다인종적인 영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그는 문학으로 성공한 후 영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된 후에도 끊임없이 체제를 비판하는 날카로움을 보여주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싶다. 2003년 11월 13일 영국 정부는 제파니아에게 서신을 보내, 영국 문학에 대한 그의 기여를 고려하여 그에게 대영제국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 OBE)을 수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훈장을 수여한다는 소식에 제파니아는 기뻐하기는커녕 격노했다. 당시 가디언(The Guardi an)지 기고를 통해 그는 자신이 OBE 수훈을 거부하는 이유를 신랄하게 썼다.

 “나에게 OBE를 수여한다고? 꺼져, 라고 난 생각했다. 난 그 ‘제국’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단어는 내게 노예제, 수천 년간의 가혹함, 나의 조모들이 강간당하고 나의 조부들이 학대당한 사실을 연상시킨다. 이 제국이라는 개념 때문에 나는 영국 교육을 통해 흑인의 역사는 노예제로 시작했고 우리는 날 때부터 노예였으며, 따라서 우리의 다정한 백인 주인들이 우리에게 자유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다. 이 제국이라는 사상 때문에 나 같은 흑인들은 우리의 진정한 이름이나 혹은 우리의 진정한 문화를 알지도 못한다… 벤자민 제파니아 OBE라고요? 천만에요, 블레어 총리, 천만에, 여왕 폐하. 나는 명백히 제국에 반대한다.” 2)

 제파니아는 1958년 4월 15일, 잉글랜드 버밍엄에서 바베이도스 출신 아버지와 자메이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집배원이었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는데, 이들은 모두 전후 영국의 재건을 위하여 카리브해의 영국 식민지에서 온 수많은 흑인 노동자들, 이른바 ‘윈드러시 세대(Windrush gene ration)’의 일부였다. 제파니아의 소년 시절은 극히 불안정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와 그의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폭행했으며, 결국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한 제파니아의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여성 쉼터를 전전해야만 했다. 또한 그는 유년 시절부터 끔찍한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어릴 때부터 그는 체육에 소질을 보였으며 유소년 육상선수로도 활동했지만, 학교 친구들은 그를 영국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취급했다.

 인종차별과 학습장애로 인해 제파니아는 결국 13세 때 글을 읽거나 쓰는 법을 배우지도 못하고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그는 길거리의 소년들과 어울렸고, 갱단에 가입했다. 그는 절도와 싸움, 공중 소란 등의 각종 범죄로 소년원을 들락날락했고, 여기에서 동료 소년원 재소자들이 간수들의 노리개가 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제파니아는 놀라운 문학적 소양과 시적 감각을 보여주었고, 버밍엄의 흑인 교회에서 시를 낭송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문학적 영재로 평가받았다(그의 필명 제파니아는, 구약성경의 예언자 스바냐의 영어 발음이다).

I am living in de ghetto
trying to do my best
when dis policeman tells me
I’m under damn arrest
Him beat me so badly
I was on the floor
him said if I don’t plead guilty
him gwan kick me more 3)

나는 빈민촌에 살아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는데
이 경찰관이 말하길
내가 체포됐대
그는 나를 심하게 때렸고
나는 바닥에 드러 누웠어
내가 유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를 발로 더 걷어차겠대

 길거리의 폭력과 감옥 생활에 지친 제파니아는 1979년 고향 버밍엄을 떠나 런던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그는 갱단 대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인들과 화가들의 갱단’과 어울리면서 1980년 그의 첫 번째 시집 『펜 리듬(Pen Rhythm)』을 출간했다. 그가 겪었던 빈곤, 인종차별, 경찰의 폭력,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소망을 주제로 하였으며, 죽어 있던 시를 일상 속으로 되돌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런던의 성인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의 유년 시절 학습장애가 지능 때문이 아니라 난독증 때문인 것을 깨닫고, 비로소 스스로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그는 『팔레스타인에서의 라스타(Rasta Time in Palestine, 1990)』, 『너무나 검고, 너무나 강한(Too Black, Too Strong, 2001)』, 『우리가 영국이다!(We Are Britain!, 2002)』 같은 시집을 출간하면서 영국 문학계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의 시들은 자메이카 흑인의 영어 억양(예를 들어 this, they, that, thing 대신 dis, dey, dat, ting)과 덥(dub) 리듬을 활용하며 영국의 유색인종 공동체에게 호소했다. 또한, 그는 다른 시인들처럼 평이하게 시를 낭송하는 대신 랩처럼, 혹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자신의 시를 낭송하면서 청년 세대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시 외에도 그는 1982년 레게 앨범인 라스타(Rasta)를 발표하면서 이 앨범을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권하에서 수감되어 있던 넬슨 만델라에게 헌정했다. 어릴 적부터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제파니아는 남아공의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정책)에 결연히 반대했으며, 이 인연으로 훗날 만델라는 1994년 민주화된 남아공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1996년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제파니아를 만나 악수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영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비판하고 인종 간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했다. 1993년 런던 엘섬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백인 6명에게 피습당해 죽은 흑인 청년 스티븐 로렌스(Stephen Lawrence)를 추모하며 쓴 그의 시는 분노보다, 슬픔과 연민 그리고 공감의 기운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It is now an open secret
Black people do not have
Chips on their shoulders,
They just have injustice on their backs
And justice on their minds,
And now we know that the road to liberty
is as long as the road from slavery.
The death of Stephen Lawrence
Has taught us to love each other
And never to take the tedious task
Of waiting for a bus for granted.4)

이제 우리 모두가 알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은
흑인들은 어떠한 원한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불의를 등에 지고
마음에는 정의를 품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자유로 가는 길은
노예로부터 벗어나는 길만큼 길다는 걸 안다
스티븐 로렌스의 죽음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지루한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걸 가르쳤다.

 제파니아는 만인의 평등을 믿었고, 차별을 반대했다. 그의 제국주의와 일체의 억압에 대한 반대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반대했고, 그의 어머니의 모국 자메이카에서 벌어지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탄압 역시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무정부주의자였으며, 입헌군주제인 영국은 공화국이 되어야 하고 왕실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무정부주의자였던 이유는 모든 억압과 구조적인 폭력은 국가 체계 자체로부터 비롯된다는 그의 믿음, 그리고 과거의 동료들이 권력을 쥐자마자 타락하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실망감에서 나온다.


 나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런던에서 많은 아프리카국민회의(ANC) 망명객들과 함께 살았다. 긴 투쟁 끝에 넬슨 만델라는 풀려났고 망명객들은 귀국했다. 남아공의 첫 민주선거로 집권한 정부 사진을 보니 내각의 2/3가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또한 새롭게 당선된 블레어의 신노동당 내각 사진을 보니 그들 중 1/4은 아는 사람이었고, 두 사건 모두 나를 희망에 부풀게 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머지않아 나는 권력이 각 정부의 너무나 많은 구성원들을 부패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종종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봐, 자네 뭐 하는 거야?”라고 물었고, 그들의 대답은 대체로 “벤자민, 자네는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몰라.”였다. 이제 나는 잘 안다. 권력은 좆까고, 그냥 서로를 보살피고 아끼자.5)


 앞서 제파니아가 비건(vegan)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사랑했고, 차별로 고통받던 유년 시절에도 작고 귀여운 고양이를 보면서 생명에 대한 연민을 키워왔다. 13살 때부터 그가 유지해 왔던 비건 생활은 모든 생명에 대한 그의 연민과 존중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Be nice to yu turkeys dis christmas
Cos' turkeys just wanna hav fun
Turkeys are cool, turkeys are wicked
An every turkey has a Mum.
Be nice to yu turkeys dis christmas,
Don't eat it, keep it alive,
It could be yu mate, an not on your plate
Say, Yo! Turkey I'm on your side.6)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칠면조에게 잘해줘
칠면조는 그냥 재밌게 놀고 싶거든
칠면조들은 멋져, 칠면조들은 짱이야
칠면조들은 모두 엄마가 있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칠면조에게 잘해줘
잡아먹지 말고, 살게 해줘
네 음식 대신 네 친구가 될 수 있어
“이봐 칠면조! 난 네 편이야”라고 말해줘


 제파니아의 삶과 관련하여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가 영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시인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주류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급진적이고 과격한 그의 신념을 주저없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당당하게 설파했다는 것이다.

 그는 런던의 브루넬 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였으며, 2009년 BBC가 선정한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The Nation's Favourite Poet)”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3위를 기록했다. 그는 무려 16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에리트리아 출신 난민을 주제로 다룬 그의 2001년 소설 『난민 소년(Refugee Boy)』은 높은 평가를 받았고 총 88,000부가 팔렸다.

 동시에 제파니아는 BBC, 채널 4, ITV 등 대중매체에 출연하여 인종차별적인 경찰에 대한 비판과 경찰 개혁의 필요성, 백인우월주의자들, 무정부주의와 왕실의 폐지, 테러리즘, 영국의 빈민과 이민자에 대한 복지정책, 많은 빈민들이 희생당한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 화재 사건, 브렉시트 등 민감할 수도 있는 주제에 대해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당연히 그의 입장은 다소 논쟁적이었고,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 또한 많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누구든 그의 하얀 이빨이 보이는 웃음과 먼저 악수를 건네는 그의 손,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무장이 해제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신이 말했듯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타협하진 않았지만, 타인의 의견을 모독하지는 않았다. 이는 정책을 공격하되, 사람을 공격하지 말라는 원로 노동당 정치인 토니 벤(Tony Benn)이 그에게 가르쳐준 지혜였다.

We can all be refugees
Nobody is safe,
All it takes is a mad leader
Or no rain to bring forth food,
We can all be refugees
We can all be told to go,
We can be hated by someone
For being someone.7)

우리는 모두 난민이 될 수 있어
안전한 사람은 없지,
미치광이가 지도자가 되거나
식량을 키우는 비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난민이 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추방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어
단지 우리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 벤자민 제파니아는 65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뒤에 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시들과 노래들은 1970년대와 80년대 인종차별에 신음하던 흑인 청소년부터,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해 외롭게 고립되어 있던 수많은 이들에게까지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또한 그는 영국을 넘어 전 세계에 성공적인 다문화적, 다원주의적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시는 모든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과 공감으로 가득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그의 시의 정신을 잊지 않고, 우리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내일을 오늘보다 조금 더 살만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것이다.


1) Benjamin Zephaniah, “Dis poetry”, 1992.
2) Benjamin Zephaniah, “Me? I thought, OBE me? Up yours, I thought”, The Guardian, Nov 2003.
3) Benjamin Zephaniah, “Dis Policeman Keeps Kicking me to Death”, 1978
4) Benjamin Zephaniah, “What Stephen Lawrence has taught us”, 1999.
5) Benjamin Zephaniah, “Why I am an Anarchist”, 2016.
6) Benjamin Zephaniah, “Talking Turkeys”, 1995.
7) Benjamin Zephaniah, “We Refugee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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