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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수(歌手)의 가벼움

 전 미국인이 열광하는 미식축구의 결승전 슈퍼볼이 열리던 2월 초, 사람들의 관심은 엉뚱하게도 스포츠가 아닌 어느 가수에 쏠렸다. 바로 당대 최고의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를 둘러싼 사연 때문이었다. 그녀의 동갑 남자친구이자 미식축구팀 캔자스시티 치프스 소속의 트래비스 켈시가 슈퍼볼 결승에 진출해서 2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는 과정에 스포츠는 정치에 뒤덮였고, 정치는 어느 팝스타의 인기와 위세에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겼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스위프트가 이번에도 자신의 유명세와 영향력을 앞세워 바이든을 공개적으로 후원할지가 최고 관심사였다. 하필이면, 바이든과 리턴매치를 벌이는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텃밭은 스위프트의 애인이 활약하는 캔자스시티 지역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그들의 엇갈린 운명에 귀추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 11월 공화당 후보로서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스위프트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만큼, 스위프트의 영향력을 극도로 경계하는 트럼프의 초조함과 불안감이 느껴진다. 스위프트는 2000년대 컨트리 음악을 기반으로 하여 혜성같이 미국 음악씬에 등장한 이래, 각종 차트와 시상식을 석권하면서 미국인들의 가슴에 연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상을 4번이나 수상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녀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녀는 단순히 음악이나 인기만으로 화제가 되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의 콘서트는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음원 수익과는 별도로 콘서트 매출만으로 무려 10억 달러(약 1조 3,350억 원)를 올린다. 최근 그녀의 공연 ‘Eras 투어’가 열리는 도시마다 관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며 숙박, 식당, 관광상품 등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면서 한화 5조 7천억 원에서 7조 6천억 원에 해당하는 GDP 상승효과를 일으키니까, 아예 “스위프트노믹스(swiftnomics ·스위프트 경제)”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녀의 음악은 이른바 ‘Z세대(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출생자)’로 하여금 떼창을 유도하면서 마치 복음성가와도 같이 다가간다. 공연장에 운집한 그녀의 팬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뛰다 보니 공연이 열리던 시카고에서는 규모 2.3의 지진이 관측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녀가 그녀의 두터운 팬층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Z세대를 움직인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메시지까지 포함된다. 그러므로, 정치인들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좌불안석하게 되나 보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정치 음모론과 각종 괴롭힘에 휘말리게 된다. ‘바이든의 재선을 위하여 미식축구 선수인 켈시와 쇼윈도 연애를 하고 있다’, ‘테일러는 바이든의 비밀 요원이다’, ‘스위프트의 투어를 미국 국방부가 물심양면 후원한다’ 등 확인되지 아니한 가짜뉴스들이 그녀와 대척점에 있는 정치진영에서 흘러나온다. AI기술을 못되게 악용하는 성 착취 딥페이크 영상까지 스위프트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이 2018년 ‘음악현대화법(Music Modernization Act)’을 시행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디지털 음악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상황을 감안해 미국의 저작권법을 개정하여 작사 ·작곡가들이 스트리밍 등에 따른 저작권료를 수월하게 취득하게 만든 음악현대화법 덕분에 스위프트가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남친 트래비스에 대한 호감까지 드러내며, 스위프트를 교묘하게 압박한다.

 이에 맞서,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도 스위프트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고령의 나이에 공식 석상에서 각종 실수를 연발하는 바이든에게 젊은 층 투표자의 마음이 가지 않아서 지지율이 지지부진하다. ‘바이든 날리면’ 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하지만, 무려 2억 7,90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군단을 이끄는 스위프트가 지난번처럼 바이든을 공개 지지한다면 상황은 완전 달라질 수 있다. 바이든 선거캠프는 극적인 효과를 위하여 바이든이 공연장을 직접 찾아가서 무대에 같이 오르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갖가지 묘수를 짜내고 있지만, 과연 스위프트가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도와줄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대선에서 스위프트는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를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세우는 바람에 공화당 지지자의 거센 비난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을지도...

 우리나라에도 선거의 계절이 슬며시 찾아오고 있다. 선거가 다가오면 진영마다 가수 출신 지지자들의 영향력 대결이 화제를 모은다.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 때는 아예 후보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노래마저 등장했다. 민중가요뿐 아니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으로 대중적 인기까지 점령했던 안치환은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이라는 노래로 당시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에 대한 인신공격을 감행하면서 진영 안팎에서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정상급 가수로 꼽히는 이은미, 박혜경도 소신을 앞세워 직접 유세현장을 찾아가서 당시 민주당 후보를 도왔다. 보수 진영에서는 “호랑나비”를 부른 김흥국 등의 가수가 2000년대부터 꾸준히 유세활동에 나섰고, “애모”, “남행열차”의 김수희는 세종시에서 보수 진영 후보를 지원한 바 있으며, ‘민요의 여왕’ 김세레나는 군소후보 허경영 후보를 적극 지지하여 화제를 모았다.

 뮤지션 등에게도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자유가 있다. 미국, 우리나라 그 어디든지 연예인의 영향력이 정치적 무기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그 영향력을 남용한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치부된다. 잘 참으면서 무겁게 가면 어떨까.

이재경 교수 / 변호사
● 건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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