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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대(對) 30분

 펜대 놀리기 외에 별다른 재주가 없었던 탓인지,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나오고도 다시 글로 먹고사는 곳에 돌아왔다. 명함에 달린 간판만 기자에서 변호사로 달라졌다.

 글로 먹고사는 주제에 정작 글줄 뽑는 속도는 느려, 먹고살기가 엥간히 만만찮았다. 신문지면 왼쪽 상단, 시선이 먼저 와닿는 곳에 제일 큼지막하게 배치되는 ‘톱기사’는 길이가 원고지로 약 14매 남짓이다. 어쩌다 이런 장문 기사를 쓰게 되면, 기사에 끼워 넣을 글감 모으는 시간은 전부 빼고 글쓰기에만 서너 시간 걸렸다. 사실상 점심식사 후 남은 오후 내내 글줄 뽑는 데만 몰두해야 마감에 닿을 수 있었기에, 계속되는 시간의 압박을 흡사 생명에 대한 압박처럼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얼마 전 기자 시절 입사 동기들을 만나 서로의 ‘썰’ 보따리를 풀 기회가 있었다. 썰이 종종 그렇듯 약간의 자랑질과 허풍이 으레 섞이지만, 그렇다 해도 어쩌다 들은 한 구절은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야, 난 요즘엔 (취재원) 멘트 같이 쓸거리만 좀 모으면 톱기사 이삼십 분 만에 만들어 던진다.”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원고지 14매짜리 글을 어떻게 30분 만에 쓰냐고 캐물었다. 알고 보니 글쓰기를 진짜로 기계, 그러니까 익히 들었던 생성형 AI한테 맡기면 그런 게 된단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맡기면 결과물이 썩 마땅찮지만, 자기 글 쓰는 스타일을 ‘잘 배운’ AI에게 일을 ‘잘 맡기면’ 진짜로 그게 된다는 거였다.

 법조인은 짐작건대 직역 성격상으로든 구성원이 처한 상황상으로든 여러모로 IT와 가장 거리가 먼 직역 가운데 하나다. 나 자신도 그런 일반적인 이들 중 하나에 속했고, 때문에 세상을 애저녁에 뒤흔든 AI 얘기도 남의 일로만 여겼다. 하지만 ‘3시간 대(對) 30분’이라는 막대한 격차를, 그것도 내가 유달리 힘겨워했던 영역 중 하나에서 마주하니 더 이상 남의 일로만 바라보기 어려웠다.

 AI가 우리 법조시장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AI 때문에 인간변호사가 직을 잃을지 등 무거운 주제를 감히 건드릴 생각은 없다. 현재 AI가 가진 기능적 한계 및 법률 분야의 특성을 감안하면, AI가 ‘단독으로’ 법조시장이라는 큰 공간에 파문을 일으킬 날이 단시일 내 오기는 어려울 듯 보여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AI와 이를 쓰는 사람을 한데 묶어 바라볼 경우, AI를 업무에 사용하는 ‘그 사람 개인’의 신세가 달라질 날은 머지않았을지 모른다. 앞서의 동기에게, AI가 쓴 글은 아무래도 컴퓨터가 쓴 뉘앙스가 물씬 풍길 텐데 괜찮냐고 물었다. 자기가 쓰는 30분이 다름 아닌 그 부분에 쓰는 시간이고 심지어 이것도 길게 잡은 거란다. 과장 좀 덧대어 각 문장에 되풀이되는 어미만 딸깍 바꿔주면 작업 끝이라는 거다.

 AI가 기사 작성에 쓴 원본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낡은 것이고 그 ‘팩트’ 여부도 담보되지 않았는데 괜찮냐고도 물었다. 요즘은 AI에 따라서는 실시간 검색 자료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고, 결과물 출력 시 그 출처를 함께 알려주므로 팩트 여부는 직접 보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만약 출처를 신뢰하기 어렵다면 그 자료를 빼고 다른 걸 넣도록 보정한단다.

 비록 분야는 다를지언정, AI가 조만간 비슷한 방식으로 일선 법률가들의 업무 ‘효율성’을 바꿔놓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당장 증거를 찾는답시고 기나긴 CCTV 영상을 지루하게 돌려본 경험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경험 중 하나다. AI에게 ‘이 영상 속에서 특정 인물이 등장하는 시간대만 뽑아줘’ 라고 명령할 수만 있어도 체감되는 업무 효율 향상은 엄청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숫자가 빼곡히 적힌 엑셀을 두고 이를 분석한답시고 머리를 쥐어싸맨 경험도 갖고 있는데, 이미 ‘매출이 O원 이상인 날짜의 행만 다른 색으로 칠하는’ 작업은 AI에게 명령 몇 마디 하면 처리가 되는 수준이다. AI의 도움을 받는 이런 세부 작업들이 한데 모이면, 종내 법률가들에게도 ‘3시간 대 30분’의 차이가 생길지 모른다.

 문제는 그러한 전환이 법조 일선에 와닿는 그날이 오면, 이미 후발주자가 선두주자를 뒤쫓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초심자에게는 수많은 생성형 AI, 가령 챗GPT 및 빙(Bing)과 제미니(Gemini) 중 무엇을 써야 할지부터 난관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려면 어떤 방식으로 AI에게 명령을 내려야 하는가도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생성형 AI의 특성상 작은 입력값 설정이 결과물에 있어 큰 차이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명령에 숙달된 이들은 반복된 연습을 거쳐 자신만의 검증된 방법, 자신의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구현하는 커스텀 챗봇을 이미 확보했을 것이다. 

 결국 개개인의 효율성이 양극화되며 가뜩이나 커다랗던 3시간 대 30분 간극은 더 벌어진다.

 생각건대 이제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얼마나 정확히 명령하고 물어보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성과 자체가 달라지는 시기가 가까워 보인다. 비록 급속도로 변하는 기술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이를 활용하기 위한 능동적 학습, 즉 AI 발전에 맞춰 개개인이 이를 좀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야 할 듯하다.

문호현 변호사
● 법무법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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