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회원칼럼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던 해에 한 소설1)에서 아래 단락을 읽은 이래 지금까지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라는 명제는 저의 가장 큰 화두이자 어려운 숙제입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대체로 선량한 사람입니다)는 목사인데 삶의 좌절과 종교적 회의를 견디지 못하고 도박에 빠졌습니다. 큰 빚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처지에 이른 아버지는 교회 설교 시간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두 번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두 번 쫓겨납니다. 여러분은 나와 관련해서 꽤 불쾌한 얘기를 듣게 될 겁니다. 그런 얘기는 아마 다 사실일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할 말은 전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늘 헌신적이고 충직한 일꾼이었음을 알아주십시오. 비록 지금에 와서 이런 표현은 말 같지도 않겠지만요... 비록 여러분이 나를 위해 기도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요.”

 “여러분이 나를 심판하고 단죄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이 말 한마디만 마음에 새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 단순한 말, 우리 아버지께서 사람의 허물을 크게 보지 말라면서 늘 하시던 말씀이지요.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거든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법조인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기 마련’이라고, 또는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일 겁니다. 직업적으로 계속하여, 사실관계를 확정하면서는 ‘평균적 일반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추측하게 되고, 법리를 적용하면서는 ‘합리적 인간’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특정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의 행동이 정당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운지, 또는 범죄가 되는지를, (일방을 대리하거나 누군가의 변호인인 경우에도) 우선은 일반인의 상식에 따라 불편부당하고 보편타당한 기준을 적용해 판단해 보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범죄는 물론이고, 실수, 판단 착오, 관성적 행동들 같은 과오에 대해서도 ‘왜 그랬을까’ 하고 사후적인 부정적 비판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현실 세계에 ‘평균적 일반인’이란 존재는 없습니다. 특정한 상황에 처한 그때 저마다의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살아 숨 쉬는 개개인이 있을 뿐입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성장 환경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관이 달라서, 우리는 모두 다르게 행동합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순간적인 충동과 욕망을 이기지 못해서, 순간의 안일한 방심으로,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하여,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좌절과 실패에 낙담하여 회복할 수 없는 수렁으로 스스로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행들을 별다른 고민 없이 따르기도 합니다.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법관은 ‘should’와 ‘should not’에서 출발하기 마련이고, 출발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합리적 이성의 잣대로 개별자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 평균적 일반인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했는지, 사회 질서와 사회 구성원의 안녕을 위한 한계를 지켰는지를 공적으로 밝혀주는 것. 그리고 민사적으로든 형사적으로든 행동의 결과에 상응하는 책임을 공정하게 묻는 것은 법관의 사명일 것입니다. 

 반면, 변호사는 현실의 ‘may’와 ‘may not’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동의 동기와 배경을 ‘평균적 일반인’이 아닌 ‘행위자’, ‘개별자’의 입장에서 오롯이 이해하는 것. 의뢰인이 한 행동에 대해, 특별한 입장과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특별한 입장, 사정이 무엇인지와 함께 어떤 행동이 그 사람의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음을 판단자에게 최선을 다해 전달하는 것. 이것이 변호사의 사명이 아닐까요.

 의뢰인 앞에서 “(대체..) 왜 그러셨어요”라는 비난 섞인 말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단 말뿐만 아니라, 여전히 나도 모르게 ‘(보통은 이렇게들 하는데), (이렇게 해야 했는데) 왜 그러셨어요’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마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당신이 그렇게 행동한 배경과 사정을 같이 이해하고, 같이 설명해 보려 합니다’하는 마음을 가지려 애써봅니다.

 ‘헌신적이고 충직한 목사이자 도박꾼’을 옹호하기 위해 할 말을 대신 찾아주는 마음, 나만큼은 ‘도박꾼이자 헌신적이고 충직한 목사’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마음 말입니다.

1)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창비, 2020

 

조원경 변호사

조원경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