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언
『전태일 평전』은 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는 사무실 책상에 꽂혀 있다. 그 이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책을 들었다. 노동자를 위하여 변호를 시작하셨고 대한민국 노동자를 위해 한 평생 변호를 하신 김선수 변호사님의 책이다. 수십 년 동안 한길, 그것도 힘들고 아플 수밖에 없는 ‘노’를 위한 같은 길을 가셨다는 것 자체에서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
2. 민주 사회에서의 노동자
가. 현실
극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 우리의 신분은 노동자의 삶을 거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네 삶은 노동자 스스로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고도 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체제, 성장에 따른 부작용에 대하여는 외면한 채 대기업 중심의 외연 확장 정책, 성장 이후에도 노동자의 삶은 팍팍했다. 자신의 급여를 위해 남을 위해 사는 삶. 그것이 노동자가 아닌가. 헌법상의 근로기본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노동조합의 설립 자체가 힘들었고, 근로기준법의 준수라는 이야기가 이상한 말이었으며, 파업이라도 하려고 하면 구사대가 등장하고 손해배상에 업무방해죄가 적용되어 노조 집행부는 구속이 되고 민사소송에 시달리던 경우가 비일비재하던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나. 현실 극복을 위한 노력
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노동사건에서 ‘노’를 맡게 되는 경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실제 경험을 생각해 보면 노 측의 변호를 하는 경우 변호사는 매우 지친다. 적은 수임료, 노동자 사이의 갈등, 사 측의 회유, 법원의 지속적인 조정 이야기, 생각보다 노동법을 잘 알지 못하는 재판부, 사 측에서의 잇따른 민사와 형사고소 등 정말 끝없는 다툼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책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의 10년 가까이 시일이 소요되는 사건도 있을 수밖에 없다. 글을 읽으면서 “지치지 않으셨을까? 내 의뢰인 자체도 지겹지 않았을까? 저 분을 수십 년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한길을 간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책에 나오는 몇몇 변호사는 정치의 길로 갔고 그 정치의 길에서 다시 변호사의 업무로 돌아오는 것 같지는 않은 상황에서, 과연 흔들리지 않으셨냐고 묻고 싶었다.
3. 투쟁의 한계
가. 90년대 중반 학번의 시각
90년대 중반 학번인 필자의 시각에서는 과연 이제 ‘노사관계’가 계속적으로 투쟁 일변도로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물론 그 동안 많은 분들의 노력과 희생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투쟁 일변도의 노동법에 대한 시각은 변화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고, 나아가 사 측의 고민도 함께 생각하는 ‘노’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방향으로 노사관계의 시각이 변화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80년대 이전의 시각으로 노사를 대립적인 시각으로 보고 투쟁의 상대로 서로를 설정하게 되면 더 이상 노사관계의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노동조합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 권리가 신장되다 보니 노조 집행부 스스로 타락하는 경우도 요즘에는 볼 수 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어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분쟁이 발생하기 전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책에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투쟁의 역사와 투쟁에 따른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쾌감은 느낄 수 있었으나 현재의 한계와 미래의 노사관계 정립에 대하여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사건으로 세상과 마주치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한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국가와 국민은 대립하여야 하고 노와 사는 대립하여야 하는가
법으로 먹고살면서 아직까지도 ‘민주화라는 것이 국가와 국민, 노와 사를 대립관계로 설정하여야 하는 것인가’라는 점이 의문이다. 어느 사회나 문제는 존재하지만 역사는 발전하여 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국가와 국민의 관계, 노와 사의 관계를 좀 더 협력적인 시각을 가지고 상생할 수 있는 관계로 바꾸어 가는 것이 보다 민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즉 국가의 권력에서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고 사용자의 착취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민주화에 대한 하나의 시각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위와 같은 시각에서 투쟁을 전개한 분들의 노고를 발판 삼아 이제는 투쟁에서 발생하는 소모적인 힘의 분산을 막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도 그런 일들은 보다 젊은 사람들이 이루어 놓아야 할 역사 발전의 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4. 결어
변호사가 신념을 가지고 오랜 기간 일을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판결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분의 내공 깊은 책을 읽었다. 이제 이것을 이어 받아 세상을 발전시키는 일은 더 젊은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김형준 변호사
사법시험 제45회(연수원 35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