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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인문학두드림] 운명과 숙명, 워더링 하이츠
독신작가의 유작(遺作), 기괴하고 음습함, 타락과 절망, 복수의 종착. 이런 표현들을 한 자리에 모은 소설이 있다. 어쩌면 통속적인 멜로 작품으로 쉽게 잊혀질 수도 있었겠지만, 축축하고 어두운 이 독특한 소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두터운 팬덤(fandom)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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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여류작가 에밀리 브론테(Emily Jane Bronte, 1818~1848)의 『폭풍의 언덕(워더링 하이츠, Wuthering Heights) 』은 통속소설이면서도 멜로의 애잔함과 스릴러의 긴장감을 갖춘 희귀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 소설에서는 남녀 사이의 일들을 다루지만 흔한 로맨스가 없는데, 주인공 남녀는 ‘사랑 아닌 연민을 나누고 그 결별이 파탄과 증오로 바뀌는’ 특이한 서사를 이끈다. 어쩌면 주인공들을 둘러싼 여러 비밀은 단지 출생이나 성장의 비밀이라기보다는 사람 간의 근원적인 아픔에 근접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 아픔은 ‘운명’이라 하기엔 가볍고, ‘숙명’이라고 하기엔 비참하다고 할까.
소설로 들어가서, 언쇼 집안(워더링하이츠 저택)과 린튼 집안(스러시크로스 저택)이라는 두 가문을 파멸로 치닫게 하는 남자, ‘히스클리프’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생이 불분명한 히스클리프는 우연히 워더링 하이츠에 들어와서는 언쇼가의 멸시를 지독하게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동정한 캐서린마저 자신을 버리고 에드거 린튼과 정략결혼하자,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집을 떠나 폭풍 속으로 사라진다. 그 후 출처 모를 재산을 모아서 나타난 그는 언쇼 집안과 린튼 집안의 사람들을 차례로 파멸시킨다. 그 후 캐서린 언쇼가 ‘캐시’를 낳다 죽고 이사벨라 린튼 역시 히스클리프의 혈육인 ‘린튼’을 낳고 떠나 버린 후, 히스클리프는 언쇼 집안의 마지막 남자인 헤어튼을 짓밟고 캐시와 린튼을 결혼시키는 것으로 복수를 계속한다. 하지만 증오의 끝은 다시금 희망으로 살아나게 되는데, 병약한 아들 린튼과 히스클리프가 죽자 헤어튼과 캐시가 다시금 양 집안의 유일한 혈육으로서 서로를 의지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감된다. 긴 이야기의 터널을 지나, 양 집안 사이에 끼었던 불길한 구름이 걷히는 마무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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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더링 하이츠』. 짧지 않은 서사임에도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빠르게 전개되는 서술구조 때문에 무척 긴장감 넘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몇 안 되는 주인공들 서로가 얽히는 구조는 물론이고, 이야기 곳곳에 감춰진 ‘멸시와 음모’, ‘증오와 복수’, ‘화해와 해소(카타르시스)’의 변화는, 최근 유행하는 통속드라마(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다. 『워더링 하이츠』는 오래된 소설임에도 세련되고 긴장감 있는 이야기구성으로 싱싱한 생명력을 전하고 있다. 또 특이한 점이 있다. 이러한 비극들은 모두 목격한 것이거나 전해들은 것에서 비롯한다. 화자인 록우드나 전문(傳聞)화자인 딘 부인은 두 집안과 히스클리프의 대립을 목도하면서도 절대 그들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의 시청자처럼 그 드라마를 차분히 관람하고 있을 뿐이다. 독자들마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작가는, 우리 곁에 벌어지는 ‘생각하기 싫지만 생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차갑게 그려내고 있는데, ‘인간사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의 숙명(宿命)을 ‘워더링 하이츠의 드센 바람에 한쪽으로 쏠려 버린 나무’로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무서운 삶의 무게감을 가진 『워더링 하이츠』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통속적인 이야기를 넘어, 뜻하지 않은 환경에 휩쓸려 버리는 인간사의 불운한 운명(運命)과 비극적 숙명(宿命)을 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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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변호사
사법시험 제45회(연수원 35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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