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시인의 마음
[시인의 마음] 벚나무를 읽다

벚나무를 읽다

해와 달과 별을 품고 반짝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서 있기를
작은 바람에도 귀 기울일 줄 알기를
바람의 여린 속삭임에도 꽃 피울 수 있기를
그리하여 환하게 서 있기를
꽃잎을 날려 보내며 서러워하지 않기를
서러워하지 않고 더욱 푸르러지기를
푸르름 속에서 둥지를 들이고
새의 지저귐을 바람에 실어 보내기를
그늘을 키우는 것도 사랑임을 알기를
그늘 속에 지친 마음들을 앉혀두고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다시 사랑이기를
시든 잎을 날려 보내며 안타까워하지 않기를
모든 걸 비우고 하늘을 보여 줄 수 있기를
눈밭을 어루만지는 보름달의 환함을 깨우치기를
그리하여 긴 빗금을 그리며 별이 지는 것을 바라보기를
거기, 소원처럼 서 있기를

그녀를 처음 만난 건 J출판사 출판기념회에서였다. 그녀는 J출판사 편집자였고 나는 출판기념회에 초대된 손님이었다. 그녀는 예뻤다. 잘 웃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녀의 밝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늘에 지쳐 있던 시기였다. 그녀와 시답잖은 농담이 몇 차례 오가고 출판기념회는 끝이 났다. 두 번째 만난 것도 J출판사 출판기념회에서였다. 그녀는 나를 기억했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캐치볼 하자더니 왜 연락도 안 해요?” 나는 좀 당황스러워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래요, 캐치볼 한번 해요. 공을 주고받다 보면 혹시 알아요? 마음도 주고받을지.” 그녀가 웃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같이 가난한 시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괜히 마음을 주었다가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이 주일 정도가 지난 후 출판기념회에 초대했던 C소설가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와 소개팅을 한번 해 보지 않겠냐고. 나는 그러겠다고 말하고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오해했다. 그녀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그래서 약속한 날 술 마시느라 가지 않았다). 훗날 알게 된 실상은 이랬다. 술이 많이 취한 내가 C소설가에게 그녀를 소개시켜 달라고 조르다 쓰러졌다고 한다. 필름이 끊긴 내가 기억을 못 해 일어난 오해였다. 어떤 일들은 그런 오해에서 시작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런 오해가 나의 자신감을 키웠다. 그녀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무렵 결혼을 앞둔 동생에게 축시를 부탁 받았는데 축시가 써지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세 번째 만난 이후 축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다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녀를 다섯 번째 만나기 전 나는 동생에게 줄 축시를 그녀에게 먼저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만나면 시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2011년 10월 22일 토요일 오후 두 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 시가 좋다고 말했다. 

“낮술 좋아해요?” 대낮의 호프집에서 닭을 한 마리 시켜놓고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에요. 연애를 못 해 본 건 아니지만 제대로 해 보진 못 했어요. 핑계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시가 모든 일의 우선이어서 그랬어요. 여행 가 본 적도 없고, 놀이공원에 가 본 적도 없고, 패밀리레스토랑 같은 데도 가 본 적이 없어요. 저 좀 가르쳐 주실래요? 열심히 배워 볼게요.” 그녀가 말했다. “도대체 그런 것도 안 해 보고 연애는 어떻게 한 거예요? 우선 남은 맥주 마시고 놀이공원부터 가요.” 

자리에서 일어나 롯데월드로 향했다 놀이기구를 타기 전 그녀가 말했다. “무섭다고 이 손 놓으면 나한테 맞을 줄 알아요!” 그렇게 그녀는 내 시의 첫 독자가 되었다. 가끔 무섭다고 손을 놓았다가 맞기도 하면서, 별이 지는 걸 바라보며 소원처럼 서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박찬세.png


박찬세 시인
200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박찬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