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과 여름 동안 가뭄 피해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날이 적당한 비와 햇빛이 우리에게 골고루 주어진다면 또는 홍수나 가뭄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날씨는 비선형적이며 복합적인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 현상으로 인간이 제어하거나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 컴퓨터로 미분방정식을 풀어서 날씨를 예측하려는 시도는 약 70년 전에 시작되었다. 혁신적인 시도였지만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 하나는 초기 조건의 작은 불균형이 시간 적분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커져서 불균형은 심화되고 비현실적인 예보 결과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2009년 어느날 우연히 BBC 라디오를 인터넷을 통해 듣다가 레너드 믈로디노프가 그 당시 발간했던 책을 소개하기 위해 출연하여 라디오 진행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접하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이야기』(원제: The drunkard’s walk: How randomness rules our lives, 이덕환 옮김) 로 불완전한 정보와 사이먼과 카너먼이 제시한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 등이 불러일으키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을 내리는 방식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살피고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초기 조건의 불확실성이 기상 현상과 같은 역학 시스템의 발달 과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들을 수행하던 터라 라디오 방송을 들은 후 바로 책을 사서 보았었다.
그 책에서 다룬 사례들 중에 오제이 심슨 사건이 있는데, 심슨의 변호인 측이 사용한 추론의 오류에 관해서 논한 부분이 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심슨의 변호인은 심슨이 아내를 구타한 적은 있지만 아내를 구타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 아내를 살해하는 경우는 4퍼센트밖에 되지 않다며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의 가능성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이 사례에 적용된 확률 계산이 타당했는지 저자는 물으면서 베이스 추론을 적절히 소개한다.
18세기 영국의 성직자였던 토마스 베이스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전제하에 추가로 제시되는 근거들을 이용하여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갱신하여 합리적인 추론의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이는 베이스 추론으로 일컬어지는데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의료, 산업, 법조계 등의 많은 영역에서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법정에서 이뤄졌던 확률 추정을 베이스 추론에 따라 다시 검토해 보면 전제가 되는 사실은 남편이 아내를 구타한 사실이 아니라 아내가 살해당한 사건이고 관측된 추가 근거 중의 하나가 남편이 아내를 구타한 사실이다. 즉 아내가 살해당한 경우,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이 아내를 살해할 확률을 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이 베이스 추론의 관점에서는 어떤 현상(예를 들어 주사위 던지기)의 빈도나 경향을 추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믿음이나 가설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것들에 확률을 부여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어진 불완전한 정보와 판단력을 가지고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요구 받는다. 베이스 추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이용하는 도구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그 불확실성을 최대한 측정하고 새로운 근거들을 활용하여 설정한 가설들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점검하는 작업들은 기상 예보 성능 개선을 위한 노력에서도 이루어진다.
날씨 예보는 대기 유체의 상태 변화를 미분방정식을 수치적으로 풀어서 특정 시공간에서의 상태를 추정한 데이터를 이용해서 만들어진다. 수치적으로 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유체가 떠도는 연속적인 공간을 마치 가로등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어진 지점에서 그 상태 변화를 미분방정식을 적분해서 구하는 것이다. 시간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컴퓨터의 지정된 유효숫자 정확도에 준하여 계산되므로 이미 1963년에 에드워드 로렌츠가 발표한 논문에서 밝혀진 것처럼, 미세하게 다른 조건으로 시작하게 되면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조건에 따라 예보는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낼 수 있다. 사실상 우리는 무한한 경우의 수를 갖는 초기 조건을 가정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가정하는 모든 경우의 수의 확률을 알 수 있다면, 즉 확률 밀도 함수를 알 수 있다면 이 함수에 관한 미분방정식을 풀어서 이 함수의 시간적 변화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복잡한 시스템에 적용하기에는 현재 전산 과학 기술의 수준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서로 다른 조건을 갖는 한정된 개수의 실험군을 구성하여 가능한 상태들의 통계적 정보를 정량화는 방법을 이용하여 최대한 근사적으로 최적의 해를 추정하게 된다. 특히 제한적인 숫자의 실험군을 사용하는 것에 따라 발생하는 샘플링 오차와 미분방정식을 적분하는 도구인 수치 모델의 한계성을 보완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베이스 추론을 사용하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수치 모델 적분 해의 통계적 특성과 관측 자료 즉 추가 근거 자료들을 사용하는 자료동화라는 과정을 통해 최적 해를 산출해낸다. 이와 같이 도구의 제한된 성능, 우리 자신의 제한된 해석 능력을 인정하고 제안한 가설들의 가능성을 정량화하고 관측과 추가 정보들을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가설을 다듬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조금은 더 진실 혹은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제한된 경험을 통해 특정 사람들이나 사건의 인과관계에 대한 패턴을 정형화하고 편견을 갖게 된다. 불확실성을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가? 어떻게 인과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에서 우연적인 요소를 분리해낼 수 있을까? 우리는 합리적인 선택과 예측을 위해서 매일 이러한 숙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신설은 책임연구원
재단법인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