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법률판례 나의 소송이야기
[나의 소송이야기] 어느 국제형사사법공조 사건에 관한 기억
2012년 12월, 사기혐의로 구속 수감되어 독일법원의 재판을 받고 있는 한국인 A의 미국 내 대리인이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독일법원의 법관들이 A의 사건에 관한 한국 내 증인들을 신문하기 위하여 방한 예정인데, 그 증인신문절차에 A가 참석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탄원서 내지 의견서를 독일법원에 제출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A의 독일변호사로부터 서류들을 받아 보니, 독일 법원이 『형사사법공조에 관한 유럽협약(우리나라에서는 2011. 12. 29. 발효되었다)』에 따라 우리나라에 A의 사건에 관한 증인신문 협조요청을 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형사사법공조법』에 따라 국내법원이 증인신문을 수행해 주기로 되어 있었고, 국내법원이 지정한 증인신문기일은 불과 1주일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A는 독일 옥중에서 증인신문절차에 관한 국내법원의 통지를 받고 독일법원에 그 절차 참석을 청하였으나 독일 법원은 이를 불허하였다. 독일법관들은 신문기일 중 국내에서 진행되는 증인신문절차를 직접 참관할 예정이라 하였다. 독일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이미 기일이 지정된 국내법원의 증인신문절차 진행을 막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사건번호 1번의 아주 특이한 사건을 하나 맡게 되었다. 

A의 미국대리인의 설명에 의하면, A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미국 시민권자로, 독일에서 대규모 국제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사기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1심 재판이 계속되는 동안 불구속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독일법원에 수차례 간곡히 요청하였으나, 외국인이므로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1년이 넘도록 구속되어 있었다. 한국 내 증인신문절차 참석을 청하였을 때에도, 독일법원은 한국인이므로 한국에서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다. 도주가 염려된다면 독일법원이 호송, 감시를 하여 달라 하였지만 독일법원은 증인신문절차 참석을 위하여 피고인을 호송을 해 줄 의무는 없다고 하였다. 

나는 국내법원의 증인신문절차를 저지하기 위하여 담당재판부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하였다. “『형사사법공조에 관한 유럽협약』 제3조는 ‘피요청국은 요청국의 사법당국이 증거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형사문제와 관련된 의뢰서를 보내오는 경우, 자국법에 규정된 방식에 따라 이를 집행한다’고 하며, 국제형사사법공조법 제13조는 ‘요청국에 대한 공조는 대한민국의 법률에서 정하는 방식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A에 대한 국내 증인신문절차는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는데, 우리법상 A가 그 출석 및 반대신문권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강력한 참여의사를 보이고 있는 이상, 피고인이 배제된 증인신문절차는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신문기일 첫날, 나는 다른 파트너 변호사님 한 분과 법정에 출석하여 변호인석에 번갈아 서서 피고인의 의사에 반하여 피고인이 배제된 절차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열변하였다. 그런데 증인신문을 위하여 출석한 우리 검사의 대응은, “미국시민권자를 독일법원에서 재판하는데 한국변호사가 변론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법원에서 한국법에 따라 진행하는 사법 절차에 한국변호사가 변론을 하지 못한다면 어느 나라 변호사가 하여야 하느냐”고 응수하였다. 담당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고, 검사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담당 판사의 결정은 맥이 확 풀리는 것이었다. 

“증인신문절차를 피고인에게 통지한 이상 법원은 의무를 다한 것이고, 피고인의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외국정부의 협조요청에 따라 제공하는 협조절차를 이런 이유로 중단할 수는 없다. 증인신문절차는 그대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즉시 일어서서 “한국인인 피고인이, 한국법원에, 한국법이 정하는 권리를 보호해 달라고 청하고 있다. 피고인이 이 절차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피고인의 개인사정이 아니라, 바로 이 절차를 요청한 독일법원의 고의적인 저지 때문이다. 법원은 통지의무를 다하였을지 모르지만 피고인의 증인신문절차 참여권은 피고인의 권리이며, 피고인은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피고인이 법률상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면 법원은 이를 보장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통지의무와 피고인의 권리 보호가 같은 것인가.”하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묵살하였고, 증인신문절차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항의의 의미에서 그대로 법정을 나왔다. 

법정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A의 가족들과 A의 독일변호사는, 최선을 다하였으니 괜찮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날, 아마도 A 이상으로 낙담하였다. “미국 시민권자를 한국변호사가 변호할 자격이 있느냐”던 검사와 “외국정부의 협조요청에 따라 제공하는 협조절차를 이런 이유로 중단할 수는 없다”고 하였던 판사의 말에, 통역까지 대동하고 감독처럼 앉아있던 독일법관들이 보여 준 만족스럽고 오만한 얼굴을 떠올리며 말할 수 없이 자존심이 상했다. 만약 입장을 바꾸어(독일과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상 관련규정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독일인을 1년씩 구속하여 재판을 하던 한국법원이 독일에 증인신문을 요청하면서 피고인의 참석을 불허하였다면, 그래서 그 피고인이 독일법원에 이의를 하였다면, 독일법원도 우리 법원과 같은 결정을 하였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의 왜곡된 열등감일까? 

변호사가 감정적으로 일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해 왔었지만, 나는 그날 증인신문 이의신청을 기각한 결정에 대하여 즉시항고가 가능한 규정이 없음을 알면서도 바로 즉시항고를 하였다. 이 항고는 근거규정이 없어 당연히 기각되었지만, 그 결정문은 그래도 “피고인의 증인신문절차 참여권이 실제로 보장되지 않았다고 볼 사정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뿐, A는 여전히 독일에 구속된 상태에서 알 수도 없고 반박할 수도 없는 증인신문을 염려하며 애를 태웠을 것이다. 

우리 법원의 결정은 과연 논리필연적인 것이었을까? “독일법원이 요청한 증인신문도 한국에서 한국법에 따라 행해지는 것인데, 피고인이 증인신문 참여를 희망하는 이상 한국법원은 피고인 없는 증인신문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정말 이런 결정을 해 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수_프로필1489(작은사진2).jpg

채정원 변호사
사법시험 제41회(연수원 31기)

채정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