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홈리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잡지 「빅이슈」를 발행하고 있는 사단법인 빅이슈코리아(서울시 우수 사회적기업)의 대외협력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홈리스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것이 저의 일상입니다. 저는 혼자서 빠른 성장을 하는 삶을 살지는 못하고 있지만, 홈리스와 느리지만 함께 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 인생이 매 순간의 점들이 연결되어 선이 된 것이라고 했지요. 그러나 그 선은 나중에 회고하면서 연결할 수 있을 뿐, 우리 모두는 각각의 점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거라고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2008년, 저는 지금까지 연결될지 알 수 없었던 점들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나아가다가 돌아보면 연결되어져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었던 제 점들은 서로 연결되었고, 모두가 실패할 것이라고 했던 홈리스 자립 사업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응원을 받으며 현실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가치 있는 일이었고, 보람도 느꼈으며, 행복했습니다.
대학에서 언론영상을 전공한 저는 2008년 봄에 다큐 촬영차 일본 도쿄로 갔었습니다. 재판이 여러 번 이어지는 동안 일본인 친구의 안내로 우연히 일본의 ‘홈리스전국궐기대회’을 보게 되었고 얼떨결에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홈리스들이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대체 무엇이 가족?사회와 단절된 홈리스들을 저렇게 단결하도록 하였을까, 과연 홈리스가 된 것이 단지 개인의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의 문제였을까, 누군들 따뜻한 방에서 생활하며 가족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을까, 누군들 직장생활하며 돈을 벌어 원하는 것을 사고 싶지 않을까, 홈리스도 처음부터 거리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들이 거리에서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후에 홈리스를 만나 보았을 때, 홈리스들은 빈곤과 불우한 성장배경, 산업재해, 장기실업, 인신매매와 착취, 가정해체 등 여러 가지 사회적 결핍 요소가 중복되어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전국홈리스궐기대회’를 안내했던 친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질문했습니다. 그 친구는 일본에서는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하나의 방법으로 ‘빅이슈 재팬’이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며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빅이슈」를 알게 되었습니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 잡지입니다. 사회구조로 인한 빈곤 문제를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해결하는 데 목적이 있고, 이를 위해서 홈리스에게만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잡지 판매 수익의 50%를 제공하여 경제적으로 자활의 계기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폴 매카트니, 베네딕트 컴버배치, 데이비드 베컴, 조앤 K. 롤링 등 유명인들의 재능기부 참여로 만들어지며 현재 11개국에서 15종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소개로 빅이슈 재팬의 대표인 사노 쇼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사노 쇼지는 ‘「빅이슈」는 만드는 사람도, 판매하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정부도, 사회도 그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사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저의 가슴이 크게 뛰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일본에서 「빅이슈」를 처음 접했던 저처럼 영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해외에서 「빅이슈」나 홈리스 자립을 돕는 스트리트 페이퍼를 접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 「빅이슈」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모임을 막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온라인 카페의 카페지기를 맡으며 몇몇 뜻을 함께한 사람과 준비한 끝에 2010년 7월 5일에 빅이슈코리아를 창간호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빅이슈」는 다양한 분야의 재능기부자들의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권당 5,000원에 판매되며, 이 가운데 2,500원(50%)이 판매원에게 돌아갑니다. 빅이슈 판매원이 되기로 결심한 홈리스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2주간의 임시 판매원 기간을 거친 후 정식 빅이슈 판매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후 6개월 이상 판매하고 꾸준히 저축을 하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주어지는데, 지금까지 40여 명이 임대주택에 입주했고, 20여 명의 빅이슈 판매원이 빅이슈코리아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했으며, 다수의 홈리스가 가족 관계를 회복하거나 사회로 복귀했습니다. 어러운 상황에서도 큰 용기를 내어 매년 100여 명의 홈리스가 빅이슈 판매원을 통한 자립에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빅이슈 판매원들은 명절 시기를 가장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명절에 판매원들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 여행에서 어떤 판매원이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쓰러져도 의지할 곳이나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는 당신들이 있다’고. 저는 그 말을 듣고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보람을 느꼈습니다. 생면부지임에도 그런 신뢰를 가지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2010년 12월 어느 날에는 홍대 앞, 빅이슈 판매원이었던 배윤식 씨가 갑자기 판매지에서 사라진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빅이슈 판매원을 하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홈리스월드컵까지 다녀왔으며, 잡지 판매 수익을 꾸준히 저축하여 서울시에서 주는 ‘노숙인 저축왕’을 수상하고, 임대주택에도 입주한 매우 성실한 분이셨습니다. 그날은 저와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고,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기에 연락이 닿지 않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근처 자선냄비모금을 하던 봉사자에게 물으니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몇 시간 동안이나 있다가 나오더니 지하철 쪽으로 휘청거리며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당시 빅이슈코리아의 사무실이 있던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에서 배윤식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초점이 없는 멍한 눈빛으로 다가오더니 제 앞에서 철퍼덕 쓰러졌습니다. 구급차를 불러 그를 병원으로 옮기고 보니 이미 뇌종양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쓰러지게 되면 무연고 행려자로 처리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의식을 잃어가는 상태에서도 도움을 구하고자 사무실 근처 역까지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를 병원에 데려갔지만 수술은 급한데 수술비가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사신 분이라 연락할 보호자도 없었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막막해서 눈물이 펑펑 났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의 사연을 트위터로 소식을 알렸는데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후원해 주어서 수술비가 기적같이 마련되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배윤식 씨는 수술의 결과가 좋았고 잘 회복되었습니다.
매일같이 거리 노숙을 하시는 분들이 겨울에 동사하지 않도록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거리를 살피는 사람들도 있고, 홈리스뿐만 아니라 여러 소외계층 이웃들이 굶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형태의 어려움이나 불우함을 돕는 사람들이나 단체도 많습니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세상에 촘촘히 그물을 걸어 놓으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는 것이죠. 비록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져서 그 안전망을 이용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런 사회적 안전망이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도 이득이 될 것입니다. 사회에 대한 적대감이 범죄를 만들 수 있고, 구조적인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편, 우리 모두 어떤 때에는 조금만 손을 잡아 주면 일어날 수 있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홈리스,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빅이슈」 외에도 홈리스들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이나 시스템들이 생겨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빅이슈」에서 일을 하며 세상에는 기적과 같은 일도 있고,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모두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안병훈 대외협력국장
사단법인 빅이슈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