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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변호사의 조언] 김영철 변호사 인터뷰
인터뷰/정리 : 최정민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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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법연수원 14기로서 법조경력이 32년이 넘으셨는데, 법조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와 그 과정에 대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법조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법조경력이 32년이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1977년 제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계열별로 학생들을 모집하였는데 사회계열에 법과대학, 경영대학, 사회과학대학 등이 통합되어 있어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한 후 1년 동안 사회계열을 다니면서 앞으로 전공할 학과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사회계열에 입학하였을 때에는 법학보다는 경영학에 관심을 가졌다가,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거창하긴 하지만 추상적인 반면 법학은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이며 사회정의실현에 부합하여 나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면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 1학년을 마치고 전공을 법학과로 선택하고,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후 대학원 때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경영학보다는 법학이 제 적성에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후 1985년 3월 검사로 임용되어 22년간을 검사로 재직하다가 2007년 1월부터 뜻한 바가 있어 새로이 변호사로서 변신하여 10여 년간 변호사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독으로 변호사사무실을 개설하여 변호사업무를 해 오다가 단독사무실의 한계를 느끼던 차에 뜻이 맞는 후배변호사들과 법무법인을 경영해 오고 있는데 소형 법무법인으로 시작해 현재는 약 40여 명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중형 법무법인으로 성장했으니 젊은 시절 한때 해 보고자 했던 경영의 꿈을 법조계에서 실현해 볼 수 있게 되어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2.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셔서 검찰을 거쳐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로서 변호사 업무를 하시는데 법조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사건으로서, 검찰 재직 시 사건과 변호사 재직 시 사건을 각 소개하고자 합니다. 검사로서 인상에 남는 사건 하나는 제가 1996년 부산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로 재직할 당시 처리한 “페스카마호 선상살인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1996. 8. 2. 중국인 선원들이 공해상인 남태평양해상에서 온두라스 국적의 참치어선인 페스카마호 선상에서 칼, 도끼 등으로 한국인 선원 6명, 인도네시아인 선원 3명, 중국인 선원 1명 등 총 11명의 선원을 집단 살해하고 사체를 바다에 유기한 전대미문의 해상강력사건이었습니다. 더욱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국적이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로 다양하고 선박국적은 온두라스, 범죄발생지는 공해상(公涇上)이라는 특성상, 각국의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각국에서 재판권을 주장할 경우 외교적 마찰의 소지가 있는 국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검사시절에 국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아 미국 유학시절에도 국제법에 관해 연구를 하고 귀국해서도 검사생활을 하는 틈틈이 국제형사법에 관한 공부를 하여 ‘국제범죄에 대한 법적규제방안’이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서 제가 이 사건의 주임검사로 지명되어 박사논문을 작성했던 법적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이 사건의 초동단계부터 재판단계까지 약 1년에 걸쳐 국제법과 국내법 절차에 따라 나름 공정하게 수사하고 재판까지 처리가 되었으며 나중에 대법원까지 그대로 원심이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그 수사업무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놓아 나중에라도 유사사건이 발생 시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틈틈이 자료를 만들어 해양범죄백서라는 방대한 자료집을 작성해 놓았는데, 몇 년 전에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유사한 해양범죄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수사방향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고생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변호사를 하게 되면서는, 검찰 재직 시와는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의뢰인의 억울함이 없이 사건을 해결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 사건들 중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사건은, 몇 년 전 지인의 아들이 성범죄 혐의로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를 받고 검찰에서 2번이나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건입니다. 당시 언론에까지 피해자가 억울한 희생자로 부각되고, 피고인이 마치 범죄자인데 영장이 2번이나 기각된 것이 의혹이 있는 것처럼 보도되어 남자인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던 사건을 맡게 된 일입니다. 
요즘 성범죄사건의 대부분은 여성 피해자들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때로는 이러한 경향에 묻혀 피고인들이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초동수사 때부터 무조건 가해자로 몰려 어려움을 겪는 사건들도 꽤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사건 또한 피고인이 언론에서 조차 일방적으로 성폭행자로 몰리고 있는 힘든 사건이었지만, 제가 가진 형사적 실무경험과 지식을 충분히 활용하여 정확한 실체적 진실을 밝혀 2번에 걸쳐 청구된 구속영장도 기각되었고, 이후 형사재판에서도 1심에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으며, 2심 및 3심도 무죄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때 피고인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부모님까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1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법적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궁지에 몰렸던 한 사람의 인생을 제자리로 찾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변호사로서 뿌듯하고 보람된 사건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의뢰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변호사의 역할이야 말로 변호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요인인거 같습니다. 


3.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조사위원장으로서 조사위원회 활동도 꾸준히 하시고 계신데, 조사위원회란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지요? 그리고 그에 대한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조사위원회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변호사에 대한 징계혐의사건의 사실과 증거를 조사하여 그 사실과 증거를 토대로 소속변호사에 대한 징계개시신청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는 역할을 수행하는 위원회로서 저 포함해서 23명의 조사위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통 조사위원회가 소속변호사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것은 “회원에게 징계혐의가 있다고 인정될 때, 대한변호사협회장으로부터 징계혐의사실에 대한 통보나 진정 등이 있을 때, 검찰 기타 국가기관이나 진정인으로부터 징계혐의사실에 대한 통보나 진정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요즘에는 소속변호사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비리 여부에 대한 진실을 밝혀 주어야 할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고, 특히 진정인이 예전에 사건을 수행한 변호사를 상대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사위원회는 국민이 법조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고려하면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소속변호사의 비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징계하고, 또 하나는 그에 못지않게 터무니없는 진정으로부터 진상을 밝혀서 회원인 변호사들을 보호하는 양쪽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현재까지 3년 4개월간 조사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위와 같이 조사위원회가 맡고 있는 사명의 막중함을 인식하여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하여 진실을 밝혀서 억울한 회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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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변호사님께서는 사법연수원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직을 역임하시는 등 후학 양성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법조계에 진입하려는 젊은이들을 가르쳐 보시면서 느낀 점은 어떠신가요? 

평소 후학들을 훌륭한 법조인으로 양성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법연수원과 법학전문대학원은 궁극적으로 좋은 실무 법조인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라 할 것인데 이곳에서는 법률이론뿐만 아니라 생생한 실무경험을 전달함으로써 미래의 훌륭한 실무법조인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사법연수원 교수로서, 2009년부터 현재까지는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서 제가 가진 법조인으로서의 실무지식과 경험을 미래의 법조인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매우 큰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법률 외의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많은 인재들이 법조인의 꿈을 꾸고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법학전문대학원제도는 과거 우리들이 대부분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법조인이 되었던 것과는 많이 달라 일부에서 비법과대학 졸업생들의 법률지식의 부족 등을 이유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직접 교육현장에서 가르쳐 보면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법률가가 될 수 있는 길을 터 놓은 현 교육체계가 가지고 있는 장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법학전문대학원제도의 단점만을 볼 것이 아니라 법조실무가와 교수들이 허심탄회하게 마주 앉아 대세로 자리 잡은 법학전문대학원제도를 보완하여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 변호사로서 사건을 대하는 마음가짐, 원칙, 변호사 업무를 하 는데 있어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평소 갖고 계신 원칙이 있으신지요? 

변호사들 각자가 오랜 기간 동안 변호사생활을 해 오면서 나름대로 정해 놓은 원칙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변호사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선 전문직으로서 요구되는 정확한 법률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해서 내 의뢰인에게 맞는 해결 방안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현재 맡고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깊고 다양하게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또한 변호사는 법률전문가의 본연의 임무 외에도 어떤 면에서는 정신과 의사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변호사를 찾아 온 의뢰인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그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에 변호사들의 역할은 법률전문가로서 정확한 법률자문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차분하게 인내심을 갖고 의뢰인의 심적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상담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겠지요. 이같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미도 정확한 법률지식 못지않게 변호사의 덕목으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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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현재 변호사업계가 많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바라보는 변호사님의 생각과 그에 대한 의견을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주위를 돌아보고 특히 몇 년간 조사위원장을 맡아 변호사들의 애환을 직접 접하다 보니 요즘 변호사로서 품위 유지를 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는 점을 느낍니다. 다른 업계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현재와 같이 변호사들의 수가 매년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변호사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변호사업계의 전망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뢰인의 변호사에 대한 눈높이도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이고, 불황에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변호사들의 심리적 압박감도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러한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사실 우리 변호사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직역의 사람들이 다 품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변호사들이 걱정만 하지 말고 좀 더 노력하여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직역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젊은 변호사들이 전통적인 법률분야 외에 기업이나 사회단체, 정계 등으로 많이 진출하는 경향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변호사들은 전문가로서 다른 직역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변호사들만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에 대해 변호사로서의 전문성, 독립성, 자유로움 등 다른 직역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조금씩이라도 누리시고, 변호사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살려서 슬기롭게 변호사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7. 선배변호사로서, 후배 변호사님들께 꼭 하고 싶으신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는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업군이라 할 것입니다. 처음 변호사생활을 시작할 때 선배변호사께서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사건이 많아지면 경제적 수입이 늘어나는 것을 즐기고 사건이 적어지면 자유가 많아지는 것을 즐기라”고 조언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실제로 변호사생활을 해 보면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죠. 즉 “사건이 많으면 경제적 수입보다는 그 사건의 해결을 위해 받는 과도한 압박에 힘들어 하고 막상 사건이 적으면 일로부터의 해방이나 자유로움보다는 수입이 줄어 사무실 유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 점을 생각해 보면 위와 같은 조언이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실의 어려운 면만을 생각하며 고민하지 말고 가급적 긍정적이고 좋은 면을 생각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고민을 안고 끙끙거리는 것보다는 가급적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의 시간을 많이 가지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또 예기치 않은 해결방안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변호사생활이 바쁘고 해서 쉽지 않겠지만 여유로움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각자가 스트레스를 이길 만한 취미를 하나쯤 가질 것을 권합니다. 그것도 가급적 법률과는 동떨어져 있는 분야에서의 취미를 가져서 잠시라도 법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전혀 다른 세계에 빠져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여행과 미술 쪽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억지로라도 틈을 내서 국내외로 짧은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긴 여행은 변호사생활을 접기 전까지는 희망사항이긴 하겠지만요. 미술을 취미로 가지게 된 경우는 우연한 기회에 미술을 접하게 되었는데 미술 관련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도 갖고 틈틈이 미술품도 접하다 보니 법률가로서의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미술세계로 들어가 나 자신의 마음이 편안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법률가로서 미술과 법의 관련문제에 대해 관심도 생겨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의무감에서가 아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공부를 해 보며 많은 재미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에서 ‘미술과 법’ 과목에 대해서 강의 요청을 받아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 취미로 시작한 것이 뜻하지 않게 새로운 영역으로까지 나아가게 된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법률가들이 나름 개인의 기호에 따라 문화나 예술에 취미를 가지면서 복잡한 법률 업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가지며 자기만의 소소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법조인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가 법조인 생활을 하게 된 지 30년이 지나면서 보니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단기간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서두르지 말고 긴 안목을 보면서 조금씩 천천히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조사위원장을 하면서 새삼 느꼈던 점은 우리 변호사들의 잘못된 일들이 대부분 단기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초조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길게 그리고 느긋하게 그동안 배운 법률지식을 가지고 차분히 노력해 나가는 것이 궁극에 가서는 법조인으로서 더 큰 성과를 이룰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후배변호사님들께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영철 변호사 약력

학력
2001 미국 Columbia University 국제통상과정 이수
1996 경희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법학박사)
1993 미국 Havard University 국제협상과정 이수
1990 미국 S.M.U. 법과대학원 졸업(LL.M.)
1982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77 서울 마포고 졸업

경력
1982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1984 사법연수원 수료(제14기)
1985 청주지검 검사
1991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 검사
1994 서울지검 검사
1996 부산지검 부부장검사
1998 춘천지검 원주지청장
2000 사법연수원 교수(국제형사법연구, 국제인권법연구, 국제기구론)
2002 법무부 법무과장, 법무심의관
2003 서울지검 형사6부장검사
2004 인천지검 부천지청 차장검사
2005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2006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2007 변호사 개업(서울회)
2010-현재 법무법인 정세 대표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조사위원회 위원장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겸임교수
국립현대미술관진흥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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